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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역전 승부사 김세영…"덤불 로브샷, 저도 놀랐어요"

[취재파일] 역전 승부사 김세영…"덤불 로브샷, 저도 놀랐어요"
"16번홀 덤불에서 친 샷은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아직 우승했다는 게 실감이 안나요. 설마 진짜 할까? 했는데 마음 비우고 치니까 샷이 딱딱 붙더라고요."

미국 LPGA투어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데뷔 후 두 경기만에 첫 우승을 신고한 루키 김세영은 필드에서 보여주는 두둑한 배짱 못지 않게 입담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김세영과 보이스톡 인터뷰를 통해 우승 뒷얘기를 들어봤습니다.

● 한국에서도 역전 우승만 하더니 미국에서 첫 승도 역전승이네요?

"앞에서 쫓기는 것 보다 뒤에서 쫓아가는 기분이 더 좋잖아요. 부담도 없고. 저는 이번에 정말 우승은 생각도 안했어요. 박인비 언니에게 한 수 배운다는 생각으로 덤비지 않고 욕심 안내고 치다 보니 공이 저절로 핀을 찾아 가는 기분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버디 찬스가 오고 타수가 점점 줄더라고요. 나중에 선두와 1타 차가 되니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 걱정이라뇨?

"이러다 덜컥 우승하는거 아닌가? 난 아직 영어도 서툰데 중계방송에서 영어 인터뷰를 어떻게 하나? 뭐 이런 걱정이죠.(웃음) 15번 홀부터는 샷에 대한 걱정보다 영어에 대한 생각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아요. '아이 우드 라이크 투..' 이렇게 시작할까? 뭐라고 말하지? (웃음)

일주일에 3~4일, 백인 선생님한테 하루 1시간씩 영어 배우고 있는데 생각만큼 빨리 늘지는 않아서 아직 말하는 게 많이 불편해요. 이렇게 기자님하고 한국말로 하니까 아주 시원~하네요. 말 문이 탁 트이잖아요. 하하."


사실 김세영은 우승 직후 현지 중계방송에서 조금 더듬거리긴 했지만 침착하게 영어로 인터뷰를 해냈습니다.

"Feel great. I was very nervous. But just focused on my game. I can't find this word. I can't describe... I'm very happy. Thank you." (아주 떨렸지만 경기에만 집중했다. 이 기분을 설명할 단어가 안 떠오른다. 아주 기쁘다.)

미국에 간 지 고작 두 달 만에 미국의 라이브 중계 방송에서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이 정도 말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건 그녀의 배짱과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16번 홀에서 세컨 샷이 워터 해저드 옆 덤불에 들어갔을 때 기가 막힌 로브 샷으로 파 세이브를 했고 현지 중계진도 극찬을 했는데 당시 어떤 느낌으로 쳤나요?
 
"사실 그런 덤불에서 샷을 해 보는 건 태어나서 진짜 처음이었어요. 정말 당황했죠. 일단 56도 웨지를 뽑아들긴 했는데 어떻게 쳐야할 지 전혀 감이 안 오더라고요, 약하게 치면 공이 안 빠질 것이고 너무 강하게 치면 핀까지 거리가 가까워서 훌쩍 지나갈 것 같더라고요.

캐디를 멍하니 쳐다봤죠. 그랬더니 캐디가 이렇게 해보라고 팔로 빈 스윙 시범을 보였어요. '백 스윙은 반만하고, 다운스윙은 빠르게~' 캐디 말대로 덤불 밖에서 연습 스윙을 20번 쯤하고 샷을 날렸는데 공이 거짓말처럼 높이 떠서 핀 옆에 붙는 거에요. 저도 놀랐어요. 캐디랑 하이파이브를 하며 한국말로 '헐~' 이라고 했어요. (웃음) 거기서 파 세이브 한 게 컸죠."


● 캐디 덕을 봤다는 말인가요?

"그럼요. 제 캐디는 20년도 넘게 유명 프로선수들 백을 멘 베테랑이에요. 이름은 콜 퓨스코. 최나연 언니랑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리 웨스트우드, 비제이 싱, 폴 케이시 같은 유명 PGA 선수들의 캐디로 활동하면서 투어 경험이 아주 많죠. 저와는 지난해 12월 퀄리파잉스쿨 치르기 직전에 만났어요. 미국 생활 초보자인 저에게 도움이 많이 돼요."

● 연장전 첫 홀(파5, 18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이 아주 공격적이었는데 바로 핀을 노린 건가요?

"그 때 뒷바람이 불어서 드라이버 샷이 280야드 이상 날아왔고 세컨 샷은 핀까지 남은 거리가 210야드쯤 됐어요. 유선영 언니와 주타누간의 세컨 샷이 짧아서 그린에 미치지 못한 걸 보고 저는 핀을 바로 노려 승부를 걸었죠. 저는 그래요. 그동안 타수 지키려다 망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후회 없이 공격적으로 치는게 제 스타일이에요. 21도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쳤는데 핀을 지나 그린 에지까지 가더라고요."

● 첫 우승 도전이었는데 그린에 올라가서 안 떨렸어요?

"왜 안떨렸겠어요? 속으로 무지하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떨렸죠. 영어 인터뷰도 신경 쓰이고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그린 에지에서 세 번째 샷(칩샷) 하는데 오픈 스탠스로 할까 스퀘어로 할까 복잡한 생각 끝에 스퀘어 스탠스로 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짧았어요. 1.5m 부담스러운 버디 퍼팅을 남겨 놓았죠. 다행히 홀까지 경사가 없는 스트레이트 라인이어서 홀 한가운데 보고 툭 쳤는데 들어갔어요. 순간 머릿 속이 하얗게 백지가 됐어요."

● 라이벌인 장하나 선수가 개막전 데뷔 무대를 준우승으로 장식할 때 김세영 선수는 컷 탈락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는데 바로 한 주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반전을 만들어냈네요. 아무래도 장하나 선수가 의식이 됐던 건가요?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서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사이니까요. 개막전 컷 탈락하고 저는 바로 짐 싸서 연습장으로 가 미친듯이 연습했어요."
LPGA 김세영 캡

● 우승 상금(2억 1,400만원) 으로 가장 먼저 뭘 사고 싶어요?

"특별히 사고 싶은 건 없고 지금 너무 피곤해서 스파에 가서 마사지나 좀 받고 싶어요. 뭉친 근육도 풀고 까맣게 탄 얼굴 관리도 좀 해야죠.(웃음)"

● 생각보다 첫 우승이 빨리 나왔는데 올해 목표는 몇승으로 잡았나요?

"욕심 내면 3승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김)효주도 투어에 합류하고 (백)규정이도 페이스 올라오면 루키들끼리 경쟁도 더 치열하고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 저는 신인왕 욕심은 없는데 롤렉스 랭킹은 좀 욕심이 나요. 2016년 리우 올림픽에 나가려면 세계랭킹이 일단 높아야 하잖아요."

● 다음 대회는 어디로 가나요?

"다음 주 호주에서 열리는 ISPS 한다여자오픈은 건너 뛰고 이달 마지막 주 태국에서 열리는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에 나갈 거에요. 그 대회에 효주도 나오는 거 맞죠?"

태권도 공인 3단. 배짱과 체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태극마크를 꿈꾸는 '역전의 여왕' 김세영의 세계 정상 도전은 서둘러 찾아온 LPGA 첫 우승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 LPGA 투어 첫 승 김세영, 세계랭킹 23위로 상승
▶ '역전의 여왕' 김세영, LPGA 데뷔 첫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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