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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음주운전 '도로를 달리는 묻지마 흉기'

습관적 음주운전은 심리치료 병행해야 할 '질병'

[취재파일] 음주운전 '도로를 달리는 묻지마 흉기'
크림빵을 사러 갔다 음주운전 차량에 목숨을 잃은 30대 가장 사건 ( ▶ [카드뉴스] "크림빵 사서 미안해…" 안타까운 마지막 통화) 주유소에 돌진해 주유소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든 음주운전 차량 ( ▶ 음주 차량, 주유소 사무실 돌진…7명 부상) 경차를 들이받아 고교생 3명과 선생님의 목숨을 앗아간 음주 외제차량 ( ▶ 구미서 음주 외제차, 경차 들이받아…경차 4명 숨져)... 최근 한달새 일어난 음주운전 차량 사고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 외에도 많은 음주사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하루 평균 음주단속에 적발되는 사람만 73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흔히 음주차량은 '도로위 흉기'라고 하는데 적어도 하루 평균 730개의 도로위 흉기가 내달리는 게 우리나라 도로의 현실입니다.

● 최악의 음주운전 사망 사건

지난해 6월 퇴근시간대에 강원도 철원의 한 소도시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직진하려던 차를 신호를 위반하고 좌회전하며 달려온 차가 들이받은 겁니다. 이 사고로 피해차량 조수석에 타고 있던 30대 남성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희생자는 36살 소방관 홍 모씨였습니다. 카풀을 하던 동료 차를 타고 퇴근을 하던 길이었습니다.

가해차량 운전자는 40대 여성이었습니다. 가해 운전자는 사고 직후 상대방 차가 역주행을 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경찰의 신원확인과 음주측정을 두 시간 가량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끈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때 당시 혈중 알콜농도 0.08% 이상의 음주상태였고, 음주로 이미 면허가 취소된, 이른바 무면허 음주운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가해자는 자신도 다쳤다며 바로 병원에 가겠다고 했고, 경찰의 구속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통상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가해자가 바로 '구속'됩니다) 그런데 사건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 한번 없던 가해자가 갑자기 피해 유족들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다짜고짜 합의금 얘기부터 꺼냈습니다. 유족 휴대전화에 녹음된 가해자의 말입니다.

"저기..돈이 한푼도 없고 마이너스 통장 2천만 원하고 빚이 5천만 원 있거든요. 그래서 좀 선처를 봐주시면 안될까요? 아니면 제가 벌어서 저기 공장이라도 가서 벌어서 드릴게요"

이 말을 들은 유가족들은 황당 그 자체였을 겁니다. 끝내 본인이 직접 찾아와 사과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피해 유족들을 더 화나게 한 것은 가해자 SNS 내용이었습니다. (가해자의 전화번호를 등록하자 가해자의 SNS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병원에 입원하겠다며 구속을 피한 가해자는 사고 직후 자신의 SNS에 친구와 농담하는 글,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음식 사진을 계속 올렸습니다. 피해자를 울린 것은 교통 사고에 대해 가해자가 '재수가 없었다. 별일이 다 있다. 어떡하지? 정말 재수가 없다'라고 올린 글이었습니다. 유가족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사고 4일 뒤 가해자가 술병 사진을 띄워놓고 술을 마시고 있다고 적은 글이었습니다.


●월등히 높은 음주운전 재범률

일반적으로 많은 범죄 가운데 한번 하게 되면 또 하게 되는 범죄로 '절도'를 꼽고 있습니다. 실제 절도 재범률은 26.4%입니다. 강력범죄 10%, 폭력 17.9% 인데 비하면 상당히 재범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절도보다 재범률이 더 높은 범죄가 있습니다. 바로 음주운전입니다. 음주운전 재범률은 42%나 되는 것으로 경찰청 자료에 올라 있습니다.

도로교통공단 정월영 교수의 말입니다. "한잔 먹고 운전했는데 괜찮았어요. 안 걸리고..두잔 먹고 운전했는데 괜찮았어요. 그러면 음주 운전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는 거죠. 둔감해지고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음주운전에 관대한 사회적 인식에다, 걸리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 없다는 사고방식이 음주운전 재범률을 높이면서 '습관'으로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픽_소주음주
●음주운전이 범죄?

문제는 음주운전을 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이에 대한 죄의식이 점차 낮아진다는 겁니다. 실제 도로교통공단에 취재를 간 날, 1백여명의 음주 운전적발자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는 강의실에서 간단한 질문을 해 봤습니다.

음주운전을 하기 직전에 음주운전이 '범죄'이므로 단속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손을 들어보도록 했더니 고작 8명만 손을 들었습니다. 나머지는 음주운전으로 단속될 거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 질문을 했습니다. 적발된 뒤 교육을 받으면서 죄의식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과는 절반 정도였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음주로 적발되고도 죄의식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도로교통공단 정월영 교수의 말입니다. "본인들이 하지 말아야 할 음주운전을 해서 왔다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재수가 없어서, 약간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오시는 분이 많습니다. 많은 음주 적발자들이 예상 외로 곤혹감이나 죄의식을 덜 느낀다는 겁니다."

● 피해 유족들이 받는 또 다른 2차 피해

음주운전자들의 죄의식이 낮다보니 피해자들은 2차 피해를 보기 쉽습니다. 크림빵 사건 가해자도 자수하는 데 19일이나 걸렸습니다. 사고 초기에 범죄차가 외제차로 특정될 때는 본인이 직접 차 부품을 사서 수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윈스톰 차량으로 특정되면서 수사망이 좁혀오자 부인의 설득으로 자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크림빵을 사가던 30대 가장이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는 그의 말은 유족들에게 대못을 박았습니다. 단순히 '뺑소니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둘러대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해자가 잡혔기 때문에 크림빵 아빠의 유족들은 보상이나마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 설명한 소방관의 가족들의 경우는 더 안타깝습니다. 가해자가 무면허 음주운전이었기 때문에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합니다. 책임보험에서 보장하는 최고 1억원이 한도액입니다. 가해자는 어차피 구속을 각오한 상태라며 공탁금을 걸고 합의에도 제대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동승한 동료 차량의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음주운전은 살인미수

음주 운전 차에 치이는 것은, 길을 걷다 모르는 사람이 휘두르는 흉기에 당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살인 미수범'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끔은 무용담처럼 음주운전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음주운전은 분명히 범죄입니다. 특히 죄의식 없이 반복하는 상습 음주운전은 전문적인 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질병'이라는 말을 이곳 저곳에서 들었습니다.

죄의식 없이 음주운전을 하는 운전자 역시 길을 걷다보면 음주운전에 희생될 수 있습니다.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도 아무 이유없이 '묻지마 살인'과 다름없는 '묻지마 음주운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곱씹어 본다면 음주운전에 대한 관대함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까요?  

▶ "음주운전 적발 셋 중 하나는 금·토요일"
▶ 뺑소니 사고 3건 중 1건은 음주운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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