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인 2010년, 최 군은 형기를 모두 채우고 25살의 청년이 됐습니다. 취재를 위해 만난 저에게 “방송이 나가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그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린다 해도 살인범이라는 법적인 낙인이 지워질 리 없습니다. 이 사건을 함께 파헤친 변호사님의 도움으로 지난 2013년 재심청구를 냈고, 내일 재심 청구 결정을 위한 첫 심리기일이 잡혔습니다.
사건이 발생한지 15년 만에 작게나마 ‘달라지는 것’이 생길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혹시 이 가능성이 물거품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취재파일로 이 사건을 정리했습니다.
1. 사형수에게 위로를 받다
최 씨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이다. 누구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 그를 설득하는데 석 달 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엉켜버린 과거를 다시 꺼내지 않는 게 그가 현실을 참고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15년 형의 1심 선고가 내려진 날, 그는 만 15살이었다.
먼저 살인 사건이 일어난 2000년 8월의 신문기사를 살펴보자.
5차례의 최 군에 대한 경찰 신문조서를 통해 살인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복기해 보자.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최 군은 택시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택시에서 내린 기사가 자신에게 욕을 하고 따귀를 때리자 오토바이 공구함에서 흉기를 꺼내 오른손으로 택시기사의 옆구리를 세 번 찌른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상처는 왼쪽 옆구리에 생겨야 하는데, 피해자 상처는 오른쪽에 있다.
최 군은 택시기사를 좇아 조수석으로 들어가 추가로 찔렀다고 진술하다가 다음 조서엔 뒷좌석으로 들어가 찔렀다고 진술을 바꾼다. 마지막엔 택시기사가 아예 택시에서 내린 적이 없다는 식으로 정리된다.
범행에 사용했다는 흉기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다. 처음엔 쇠창살을 구해 날카롭게 흉기를 만들었다는 진술이었는데, 나중엔 자신이 일하던 다방 주방에서 쓰던 칼이라고 진술한다. 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도 마찬가지다. 하수구에 갖다 버렸다고 했지만 그곳에서 흉기가 발견되지 않자, 오토바이 공구함에 칼을 넣고 다방 주방에 갖다 놓았다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최 군의 진술 조서를 받아 낸 경찰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국과수 감식 결과 칼에서도, 그의 옷에서도, 오토바이 공구함 어디에서도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진술조서를 분석한 ‘허위 자백의 이론과 실제’의 저자 이기수 박사는 최 군에 대한 경찰 신문조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기수 박사는 무엇보다 범행에 사용한 칼을 다른 사람이 훤히 볼 수 있게 한 손에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 한다는 내용은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박준영 변호사는 사건의 정황에 맞춰 진술을 변경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최 군 수사에 대한 결정적인 허점은 목격자 진술에 담겨 있다. 길 건너편 차량에서 우연히 당시 상황을 지켜본 목격자가 있었던 것이다. 목격자는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택시 주변에서 오토바이를 보거나 택시기사가 누군가 다투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의 진술조서와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취재진은 이 목격자를 겨우 찾아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무한테나 뒤집어 씌우면 안 되죠. 전 분명히 오토바이 같은 거 보지도 못했어요. 그냥 택시 문이 슬쩍 열리고 택시기사가 신음소리를 내는 것 같았고.. 좀 이따가 경찰차들이 몰려 오고.. ”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진술을 경찰은 재판엔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범행에 사용됐다던 칼 역시 재판에 증거자료로 제출되지 않았다. 칼의 크기와 형태가 피해자의 상처와 일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범행 직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최 군이 범행 현장을 지나가다 경찰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먼저 묻는 상황이다. 경찰은 ‘범인은 나중에 범행 현장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라는 이론을 근거로 최 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기수 박사는 최 군의 행동은 범인의 일반적인 행동과 상이한 패턴이라고 말한다.
최 군의 자백을 바탕으로 한 이 허술한 진술조서만이 최 군이 범인이라는 유일한 증거였다. 혈흔, 흉기 등 어떤 물적 증거도 없이 기소된 최 군은 1심에서 범행을 부인하지만 15년 형을 선고받는다. 국선변호인은 최 군에게 범행을 인정해 형기라도 낮추라고 조언하고 최 군은 범행을 인정하고 2심에서 10년 형으로 감형 받고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다.
이 사건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3년 후다. 사건 발생 3년 뒤인 2003년의 신문 기사를 살펴보자.
2010년 취재 당시 군산경찰서 수사기록을 찾기 위해 경찰, 검찰, 법원 등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3년 뒤인 2013년 국가기록원에 묻혀 있던 ‘군산경찰서 수사 기록’을 찾아 낼 수 있었고, 당시 수사를 주도적으로 맡았던 수사 팀장을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