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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체온 39.1도'…그래도 출근해 일했습니다"

[취재파일] "'체온 39.1도'…그래도 출근해 일했습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한 글이 화제가 됐습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이 누리꾼은 몸이 아파 조퇴를 보고하기 위해 회사에 나왔는데 "나왔으면 살만한 거야"라는 말을 듣고 그냥 근무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39.1도라고 표시된 체온계 사진도 같이 올렸지요. 곧바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상사도 그런다', '그냥 엎드려 자라'는 등 다양한 의견이었지요. 특히 한 누리꾼은 '조퇴할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점심시간에 병원에 가서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신종플루에 걸렸다고 회사에 말하라는 '조언'도 남겼습니다.

이 글의 작성자를 만나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누리꾼들의 반응은 우리나라 직장의 군대 문화를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유난히 상하 관계를 강조하는 수직적 조직문화 탓에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입 밖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지요.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재작년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기업문화가 100점이라면 자사의 기업문화는 몇 점이냐'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평균 59.2점이라는 수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수치의 이유로는 '상명하복의 경직된 의사소통 체계'가 61.8%로 가장 많이 지적됐습니다.
취파


대기업 직장인 5명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이들은 군대식 조직 문화에 대해 '상명하복', '까라면 깐다', '개인 희생이 따라야 한다'고 정의했습니다. "윗사람의 말이면 무조건 맞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맞지 않다는 것을 알더라도 어느 지점이 되면 포기하게 된다"고도 말했지요. 상사의 지시는 불합리한 것이라도 무조건 따라야 해서 상사가 주도하는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교사로 이직한 한 남성은 "가고 싶지도 않은 술자리에 가는 게 너무 싫어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습니다. 특히, 일 자체는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불합리한 회식 문화가 맞지 않아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지요.

윗사람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는 종종 인격모독이나 폭언, 심지어 폭행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취재 중 만난 한 40대 남성은 지난 12월 31일 연말 송년회에서 회사 임원에게 맥주잔으로 얼굴을 맞아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크게 다쳤습니다. 가게 주인이 소방서에 신고했지만, 임원이 구급차를 돌려보냈지요. 가해 임원은 "회사에 계속 다니고 싶으면 신고하지 말라"며 겨우 합의를 해줬습니다. 피해자의 거부로 끝내 방송에 사연을 소개할 순 없었지만, 군대식 문화가 빚어낸 분한 사연이었습니다.

남성 대부분이 사회생활의 처음을 군대에서 경험하는 데다 분단과 오랜 군사정권이라는 역사적 배경까지 더해 조직 내 군대 문화는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워낙 그 뿌리가 깊은 탓에 군대식 조직 문화에 피해를 보고도 똑같이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인들은 "내가 당한 게 군대 문화인 줄 몰랐다"거나 "내가 막내일 때 했던 일들을 새로 들어온 후배가 하지 않으면 짜증이 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군대식 문화를 쉽게 뿌리 뽑을 수 없는 이유이지요.

군대식 조직 문화가 창의성을 떨어트리고 업무 효율성도 저해한다는 것은 이미 기업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직책을 부르지 않고 이름에 '님'이나 '프로' 등을 붙여 부르는 식으로 호칭을 바꾸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조치만으로 군대식 조직 문화의 폐해를 모두 없앨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은 오래된 해법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후배를 내가 가르쳐야 할 교육대상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라고 인정하고 예의만큼이나 개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해줘야 하지요. 직장 내 배려는 역시 상사가 바뀌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 회식도 업무의 연장?…직장에 뿌리박힌 '군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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