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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표창원 "황산 테러 비극, 선진국처럼 공소시효 없애야"

대담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표창원 소장

▷ 한수진/사회자:

지난 화요일,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에 대해 피해자 고 김태완 군의 부모가 법원에 제기한 '재정신청'이 기각됐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재항고를 하지 않거나 대법원에서 기각을 한다면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완료돼, 영구미제 사건이 됩니다.

이 사건 말고도, 곧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미제사건들이 여러 건 있다고 하는데요. 잔인하고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완전범죄'가 가능하다는 건,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입니다. 오늘 '표창원의 사건과 사람들'에서 이 문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장님, 어서 오세요.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어려운 법률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일단 대구 황산테러 사건, 알기 쉽게 정리 좀 부탁드릴게요.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네, 1999년 5월, 지금으로부터 약 16년 전이죠. 대구시 동구 한 골목길에서 6살 김태완 군이 길을 가다 갑자기 누군가 황산을 맞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김 군은 결국 49일 만인 7월 8일 사망했고요, 입원치료 중에 부모님께 이웃집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이 이웃집 아저씨를 범인으로 지목을 하고 당시 내용도 녹음을 했죠. 그런데 사건 초기 경찰은, 김 군과 김 군 친구가 검은 비닐봉지 안에 황산을 담은 아저씨를 이야기 했다는 이유로, 검은 비닐봉지 안에 황산을 담으면 녹는다, 이런 상식적인 판단을 한 거죠. 나중엔 그건 상식이 아닌 것으로, 검은 비닐봉지 안에 황산은 녹지 않는다고 밝혀졌죠.

어쨌든 초기에 압수수색 등을 실시하지 않아 물증 확보에 실패합니다. 시간은 흘러갔죠. 결국 피해자 부모는 그 아저씨를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합니다. 공소시효 완료를 3일 앞둔 지난해 7월 4일, 피해자 부모님은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심판을 청구하는 '재정신청'을 했던 것이죠.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법원은 이유 없다며 재정신청을 기각한 거죠?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그렇습니다. 증거의 문제인데요. 피해자인 6살 어린이와 그 친구의 진술을 피해자 부모님이 녹음해두셨는데, 사건발생 당시 경찰이 어린이 진술이고, 친구의 경우 청각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신빙성을 부정했었구요. 지능은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요. 이번 재정신청 판결에서도 판사가 마찬가지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은 절차는 이런 법원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대법원에 재항고 하는 마지막 절차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추가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법률 적용 오류 여부만 판단하는 대법원 재항고가 받아들여질 지는 의문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한데요.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용의자가 실제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가요?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글쎄요. 일단 반반이라고 밖에 말씀 드릴 수밖에 없는데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분이 범인이라고 믿을 근거는 충분히 있습니다. 사건 초기부터 유일하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고, 피해자인 김 군이 목소릴 들었다고 하고, 친구도 지목했구요. 태완 군을 안고 병원으로 데려간 분이기도 합니다.

초기에는 황산이 묻는데도 어린이를 구한 의인이라고 경찰은 생각했었고, 그래서 수사를 제대로 안 했었는데. 이분에게 묻은 황산에 대한 감정을 본인이 의뢰를 해서, 사건 발생 한 달 후에 옷이 국과수에 보내지고, 그리고 세달 후에 운동화가 보내집니다.

그런데 국과수에서는 너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그리고 황산이 어린이를 운반 중에 데려가다가 묻은 건지, 범행 중에 묻은 건지, 판단할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까 용의자에 대한 의심은 있지만 확실하게 증거가 충분한 상태는 아니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경찰은 왜 이 용의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지 않았죠?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사건 발생 직후엔 좀 혼돈과 혼란이 있었고. 어린이가 다쳤으니까 치료가 우선이었고. 부모님도 누가 범인인가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었죠. 경찰에서도 이웃집 아저씨를 범인으로 의심하지 않았고. 부모님이 태완이와 친구에게서 아저씨 이야기를 듣고 경찰에 수사를 요청한 뒤엔 이미 증거인멸이 가능한 시간이 흐른 뒤였고, 집안에 황산이 있는지 혹시나 살펴봐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확보하지 못하게 됐고요.

▷ 한수진/사회자:

그러니까 범죄 수사에서 초동수사 정말 중요하죠?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그렇습니다. 처음에 신고를 받고 경찰이 얼마나 빠른 조치를 취하느냐가 수사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거죠.

▷ 한수진/사회자:

참 안타깝습니다. 말씀 듣고 보니까, 용의자로 지목된 이웃집 아저씨도 만약 범인이 아니라면, 참 억울하고 마음이 아팠을 테구요. 범인이라면, 공소시효가 지나면서 처벌받지 않게 된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될 테고 태완군 부모님 입장에서는 고통 속에서 숨진 어린 아들의 한도 풀어주지 못한 참담한 심정으로 살아가셔야 하고 범죄 사건의 초동 수사,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 말고도 곧 공소시효가 완료되는 사건들이 있죠?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화성연쇄살인사건이나 이형호 군 유괴살인사건처럼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들도 무척 많죠. 그리고 2003년 포천에서 발생한 여중생 엄 양 피살사건, 2004년 화성에서 발생한 여대생 노 양 성폭행 살인 사건, 2006년 서울 노들길 진 양 살인사건 등이 공소시효 15년이 적용되는 사건들이고요. 2007년 12월 법 개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어난 이후 발생한 미제사건들은 2008년 대구 11살 허 양 납치살해 사건, 2009년 제주 여교사 납치 살해사건 등 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공소시효 제도, 꼭 필요한 건가요?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도입된 당시에는 필요가 있었습니다.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 '법적 안정성'인데요, 너무 오래 전 사건들을 또 다시 고소하고 기소하면 상당히 혼란이 온다. 두 번째는 증거의 휘발성, 시간이 지나면서 물적증거는 변질되고 사람의 기억은 왜곡될 것이기 때문에 일정 기간 내에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는 취지죠. 세 번째는 '사실상의 처벌 효과'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범죄를 저지르고 숨어 지내면 괴롭고 힘들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의 감옥생활'일 테니 일정기간이 지나면 처벌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자는 취지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일리가 있긴 한데요. 하지만, 대구 황산테러나 중요 미제사건 같은 특별한 경우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그렇습니다. 우선 말씀드린 공소시효 도입의 이유들도 다 반론의 여지가 있는데요. 우선 법적 안정성의 경우, 살인이나 유괴 등 아동대상 범죄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진실을 밝혀야 할 문제지, 현재의 지위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묻어둘 사안은 아니죠. 아울러 증거의 휘발성 문제도 DNA나 냉장냉동기술, 녹음과 녹화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시간이 오래 지난다고 해서 증거 가치가 줄어들지 않게 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처벌효과 역시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나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이론의 등장으로 설득력을 잃게 됐고요,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일반범죄들의 공소시효는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살인이나 성폭력, 그리고 아동대상 범죄 등 특정반인륜 범죄의 공소시효는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죠.

▷ 한수진/사회자:

소장님은 어떤 생각이신가요?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저는 특정범죄 살인 성폭행 아동 대상 범죄에 대해서는 폐지해야 한다, 다른 범죄는 유지해서 법적안전성을 지켜야 하지만, 이런 특정범죄에 대해서는 결코 적용되면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외국을 꼭 따라할 필요는 없겠지만, 참고할 필요는 있을 텐데요, 외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 표창원 소장 /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영국과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영미권 국가는 살인 등 강력범죄는 처음부터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았구요. 독일, 일본 같은 경우 공소시효를 적용하다가 살인이나 고문 학살 등 이런 범죄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게 됐죠. 결국 세계적인 선진 형사사법 제도라고 한다면 살인이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게 추세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피해 유가족 입장에서는 범인이 잡혀서 처벌을 받을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거나 잊을 수 없는데, 국가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려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소장님 고맙습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표창원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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