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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책연구원장님이 이태리 가죽 '황제 소파'를 고집한 이유

[취재파일] 국책연구원장님이 이태리 가죽 '황제 소파'를 고집한 이유
● 공공기관의 신종 혈세낭비 수법

국회에서 공공기관들의 혈세 낭비와 관련해 자주 지적되는 게 법인카드 사용 내역입니다. 연구 활동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내역을 올렸는데 알고 보니 주점에서 카드를 사용한 경우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해마다 지적이 나오지만, 계속 반복되는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국회 정무위에서 공공기관의 신종 혈세 낭비 수법이 공개됐습니다. 새정치연합 김기식 의원의 질의 과정에서 나왔는데, 공공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과정을 틈타서 살림살이를 최고급으로 사들이는 수법이었습니다.

● 원장님 '황제 소파' 가격은 135만 원
[취재파일] 김수형
[취재파일] 김수형
은은한 아이보리 색의 가죽 소파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원장실에 있는 겁니다. 철제 프레임으로 튼튼하게 지지돼 있고, 최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평소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최고급 '황제 소파'입니다. 가격은 135만 원, 이런 소파가 원장과 부원장방에는 합쳐서10개나 있습니다. 소파를 사들이는데만 1천350만 원이나 들었습니다.

● '수제 원목' 직원 식당 의자는 55만 6천 원
[취재파일] 김수형
[취재파일] 김수형
이 의자는 직원 식당에 비치된 겁니다. 수제 원목 가구인데, 튼튼한 건 기본이고 고급스러운 느낌에 호텔 레스토랑 의자와 동급이라고 합니다. 가격은 55만 6천 원입니다. 이런 의자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식당에는 130개나 놓여있습니다. 모두 합치면 가격은 7천228만 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94만 원짜리 4인용 식탁, 98만 원짜리 6인용 식탁도 구입했습니다. 바 테이블도 있었는데 190만 원입니다. 식당과 원장실의 의자, 식탁 구입비 등을 포함해 집기 구매비를 모두 합쳐보니 7억 5430만 원이었습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직원 숫자가 183명이니까 1인당 4백만 원씩 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예산 없다던 연구기관의 과감한 가구 구입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지난해 6월 충북 진천으로 이전을 마쳤습니다. 세종시로 간 다른 연구기관들과는 달리 혼자 진천으로 이전을 했는데, 통근버스가 없다며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예산을 달라고 주장해 통근버스비로만 2억 97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인건비도 부족했나 봅니다. 혼자 진천으로 이사 간 것도 억울한데 다른 기관보다 인건비가 적으니 증액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산 10억 원이 증액됐습니다. 이렇게 예산이 부족하다고 울던 기관이 가구를 사들이는 데는 과감했던 겁니다. 관련 자료를 준비해 폭로했던 김기식 의원은 "내년 예산에서는 기본 경비를 대폭 삭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 KISDI "직원 사기 진작 위해 고가 가구 구입"

국회 정무위에 출석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은 지적이 나오자 발언을 자청했습니다. 감사를 통해서 조사를 하고 있다며, 송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가구제작) 중소기업이 설계를 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습니다.

의원실에 보내온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답변은 가관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이전한 충북 진천은 다른 혁신 도시에 비해 주거, 교육, 문화 환경이 훨씬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데, 이를 진작시키기 위해 고가 가구를 구입했다는 겁니다. 또한 이전을 하면서 제작업체가 자재를 조달하고, 특근을 하는 등 원가 상승 요인이 있어 비싸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 가구제작업체 "목록에 없는 최고급 요구"

가구를 납품한 업체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꽤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업체에 물어보니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납품한 가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가격대를 책정한 소파 가운데 최고가는 126만 원이었는데, 원장실에 납품한 소파(135만 원)는 이보다 비쌌습니다. 이유가 있었는데, 연구원에서 검정색 소파가 마음에 안 든다고 아이보리 색으로 특별 주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가죽도 요구사항이 까다로워서 이태리에서 최고급을 수입해서 만들어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최고급 사양으로 주문을 한다고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이 설명한 대로 제작업체가 설계를 하고 디자인을 한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연구원에서 직접 설계와 디자인을 지시했던 겁니다. 이런 까다로운 요구 때문에 업체가 자재를 특별 조달하고 특근을 하는 바람에 가격이 올랐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 나랏돈으로 사들인 '황제 소파' 용서받을 수 있나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들이 질 낮은 가구만 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가격의 가구를 사면 누가 시비를 걸겠습니까. 가구 사양을 최고급으로 하고, 까다로운 요구사항까지 넣어서 목록에도 없는 가구를 사들이는 것은 분명 정상은 아닙니다. 내 돈 아니라고 나랏돈을 주머니 쌈짓돈처럼 꺼내 쓰는 공공기관의 행태를 용서할 국민은 없습니다. 다른 공공기관들은 이런 예산 낭비 사례가 없는지 국회 차원의 철저한 점검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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