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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죄 없는 자 이 '점원'에게 돌을 던지라

[취재파일] 죄 없는 자 이 '점원'에게 돌을 던지라
밝히건대, 'VIP'와 '목사'를 굳이 언급한 것은 선정성으로 주목을 끌기 위함이 아닙니다. 특정 종교를 비하려는 의도는 더더욱 없습니다. 이번 사건 자체가 'VIP 목사님'이 아니었다면 애초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 목사님 옷 구매한 후 '도난 신고'

목사님은 한 백화점의 VIP였습니다. 이 목사님은 백화점에서도 특히 즐겨찾는 의류점이 있었는데, A브랜드의 매장이었다고 합니다. 올해 초 그날도 목사님은 이 A브랜드 매장에서 옷 수십 벌을 구매했습니다. 라면 박스 크기 상자 4개에 나눠 담아야 할 만큼이었습니다. 이 정도 양이면 원래는 백화점에서 배달을 해주지만, 이 날은 목사님이 교회 직원을 보내 직접 물건을 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결제를 하고 떠난 잠시 뒤, 교회 직원 두 명이 물건을 받으러 왔습니다. A브랜드 매장 점원은 목사님이 계산하고 간 옷 상자 4개를 수레에 담아줬습니다. 교회 직원들은 이 수레를 끌고 주차장으로 나갔습니다.
 
문제는 주차장에서 생겼습니다. 교회 직원들은 자신들이 끌고 온 승합차에 목사님의 옷 4상자를 모두 실었습니다. 물건을 다 실은 교회 직원들, 그런데 느닷없이 근처 바닥에 놓여있던 전혀 다른 B브랜드 매장의 옷 한상자를 함께 실어버린 겁니다. 실수였습니다. 주차장에는 창고가 있는데, 마침 B브랜드 점원이 창고에서 물건정리를 하다가 잠시 내놓은 옷상자였습니다. 교회 직원들이 이 B브랜드의 옷상자를 차에 싣는 장면을 창고에서 정리를 하고있던 B브랜드 매장의 점원과 주차요원이 직접 목격을 했습니다. B브랜드 점원이 제지를 하려 했지만 차는 그대로 떠나버렸습니다. 자연스레 도난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B브랜드 점원은 곧바로 경찰에 도난신고를 했습니다.

● 옷을 반납하기는 했는데…

이틀이 지났습니다. 목사님이 자신이 옷을 샀던 A브랜드 매장으로 웬 옷 상자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자신들이 사지도 않은 옷이 딸려왔다며 반납을 하러 왔다는 겁니다. 바로 교회 직원 들이 실수로 가져간 B브랜드의 옷 상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A브랜드 매장 점원은 이게 무슨 옷상자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 단골인 A브랜드 매장과, 도난 신고를 한 B브랜드 매장은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던 데다, 매장 점원들끼리 알고지내던 사이도 아니기 때문에 상대 매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도난신고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A브랜드 점원은 뭔지 모를 그 옷상자를 받아서 그냥 창고에 넣어놨습니다.

하지만 B브랜드 매장에서는 잃어버린 자신들의 옷 상자가 이렇게 창고로 돌아왔단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경찰 수사는 계속 진행이 됐습니다. 경찰이 B브랜드의 옷 상자를 싣고 떠난 승합차를 CCTV에서 찾아내 조회를 했더니 목사님 아들의 차였습니다. 경찰은 차주인 목사 아들과, 당시 옷을 싣고 간 교회 직원 두 명에게 절도 혐의로 신고가 들어왔으니 경찰서로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습니다.

● VIP 목사 앞에 무릎 꿇은 점원
취파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경찰 연락을 받은 목사님 측이 백화점 A브랜드 매장에 전화를 한 겁니다. 단순한 항의 수준을 넘어 분노에 찬 전화였습니다. 도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길래 이런 일이 생기게 하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심지어 거친 욕설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목사가 이렇게 화를 내는지 전화를 받으면서도 도통 알수 없었던 A브랜드 점원, 뒤늦게 사태파악에 나섰고 그제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부랴부랴 B브랜드를 찾아가 자신이 옷 상자를 돌려받아 창고에 넣어놨단 사실을 알렸습니다. 도난신고를 했던 B브랜드 매니저는 경찰을 직접 찾아가 고소를 취하했고, 경찰은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그냥 종결되지 않았고, 경찰은 끝내 승합차 주인인 목사의 아들과 물건을 날랐던 교회 직원 두 명을 경찰서로 불렀습니다.

신고가 된 것도 모자라 실제로 아들이 경찰에 불려가 조서까지 꾸미자 목사는 폭발했습니다. 백화점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사건이 시작된 A브랜드의 점원과 백화점 직원들을 불러놓고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아들이 도둑으로 몰렸다며 거친 말과 행동이 폭발했고 분위기는 거칠수 없이 험악해져 직원이 말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경찰 조사로 받은 수치심을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는 목사 측 요구에, A브랜드 점원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했습니다. 눈물의 사과는 그렇게 1시간을 이어졌다고 합니다. 목사 측은 자신들을 절도 죄로 신고한 B브랜드 점원 역시 사과를 할 것을 요구하고 돌아갔습니다.

● "함부로 신고해서 죄송합니다"
취파

무릎을 꿇고 사죄한 A브랜드 점원은 사태를 봉합하기 위해 B브랜드 점원에게 사과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B브랜드 매장 점원은 사실 억울했습니다. 자기네 옷상자를 무단으로 싣고가는 승합차를 직접 목격을 했고, 그래서 신고를 한 것이고, 오해였음을 알고 난 뒤엔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취하까지 했는데, 뭘 잘못했다는 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목사에게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함부로 신고를 해서 죄송하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당 사건은 마무리가 되는 듯 싶었습니다.

● 매장 점원 사비로 20만 원 보상까지

일이 꼬이려면 이렇게도 되나 봅니다. 며칠 뒤 다시 한번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분명히 신고를 취하했고, 그럼에도 끝끝내 경찰 소환조사까지 다 이뤄졌는데, 그래서 백화점에서 한바탕 소동까지 벌어졌는데, 경찰이 목사 측에 다시 한번 경찰서로 나오라고 요구한 겁니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습니다. 담당 형사가 실수를 해서 서류 작업을 다시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경을 쳤던 A브랜드 점원은 이 소식에 경찰서로 달려가 담당 형사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경찰의 실수로 발생된 문제이니 제발 고객(목사) 소환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어쩔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결국 목사의 아들과 옷을 날랐던 교회직원 두 명은 또 다시 경찰서에 나와야 했습니다. 이들이 조사를 받는 동안 경찰서 로비에서 기다린 A브랜드 점원은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목사 측 일행에게 90도로 사죄의 인사를 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경찰 조사를 받느라 입은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하라는 요구가 돌아왔습니다. 백화점 VIP인데 이런 불편을 겪게 했으니,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A매장 점원은 지갑에서 자기 돈 20만 원을 꺼내 죄송하다며 건넸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일이 끝났습니다.

● 모두가 피해자, 책임 추궁은 점원에게만…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참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복잡한 사건의 조각을 퍼즐처럼 맞춰보니 사실 모두가 봉변을 당한 피해자라고 여길 수 있는 '해프닝'이었습니다. 

사실 목사님도 화가 날 법 합니다. 솔직히 억울합니다. 그런데 목사가 이렇게까지 화를 낸 데엔 단순히 억울하다는 감정 그 이상의 이유가 있습니다. 목사는 '성직자'입니다. 높은 도덕성을 요하는 직업이며, 그게 바탕이 됐을 때에만 사람들에게 성경의 뜻을 전파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얼토당토 않은 오해 때문에 아들이 절도범으로 몰려 경찰서를 들락거리며 조서까지 꾸몄습니다. 진짜 '절도'도 아닌 단순한 실수였을 뿐인데다가, 이 실수를 확인하자마자 목사가 직접 백화점을 찾아가 옷상자를 반납 했음에도 경찰서에 불려갔으니, 이건 그 누구였어도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목사는 이 백화점의 VIP입니다. 평소에도 많은 혜택이 있는 것이 VIP인데, 이런 어이없는 해프닝에 휩싸이도록 일을 방치한 백화점 측의 일처리도 분노의 요인이 됐을 겁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점원은 말할 것도 없이 억울합니다. A브랜드 점원은 애초 목사가 구매한 옷 4상자를 제대로 챙겨 줬습니다. 교회 직원들이 주차장에서 다른 매장 옷을 가져갔는지 어쨌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B매장이 도난신고를 한 사실도 전혀 몰랐고, 목사에게 옷상자를 돌려받았을 때에도 이게 무슨 물건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목사님이 가져온 옷상자는 다른 백화점의 테이프로 포장이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봉변을 당한 겁니다. 영문도 모르고 1시간을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고 빌었고, 사비를 털어 보상까지 했습니다.

백화점도 그렇습니다. 화가 난 목사가 백화점 측에 보상을 하라고 요구했지만, 백화점 측에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CCTV에 교회 직원들이 물건을 잘못싣고 가는 정황이 고스란히 찍혔고, 이를 목격한 목격자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기에 인정을 할 실수가 없다고 판단을 한 겁니다.

그러나 결론은 참 씁쓸합니다. 목사도, 점원도, 백화점도 모두 봉변을 당한 건 맞는데, 결국 모든 책임을 지고 눈물을 흘린 건 가장 힘없는 약자인 약자인 의류매장 점원 혼자였습니다. 심지어 보상까지도 개인 사비로 했으니까요.

● '배려'가 아쉬운 사건
취파

저희는 이 사건을 SBS 연중캠페인인 '배려,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보도를 통해 전해 드렸습니다. '배려'의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크게 진노한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백화점 측의 대응이 미숙했던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실수와 잘잘못을 잠시 떠나 의류매장 점원의 입장을 조금만 '배려'해 줄수는 없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성직자'이기에 '절도 사건'에 휘말린 것이 더 화가 났을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성직자'이기에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점원을 품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목사는 그냥 고객도 아닌 VIP 고객입니다. 항의 한 마디에 점원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강자'입니다. 역시 아이러니하게, 강자이기 때문에 이처럼 크게 점원을 꾸짖을 수 있었을 테지만, 반대로 강자이기 때문에 한번 더 상대를 배려해 줄 여유를 가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웠습니다. 따지고 보면 애초 교회 직원들의 실수로 시작된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 일본식 사과 '도게자(土下座)' 문화가 한국에도?

최근 무릎 꿇었다는 뉴스 참 많았습니다. '땅콩회항' 사건부터, 백화점 지하주차장 모녀사건에, 이번 일까지.  서비스업 종사자가 이렇게 고객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사연이 툭하면 소개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인터넷엔 이런 게시물도 떠돕니다. 일본 특유의 사과방법인 '도게자'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식의 사과가 '갑'의 위치에 있는 강자에겐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릎을 꿇는 '을' 위치의 약자는 평생 씻지못할 상처를 받게 됩니다. '고객'이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화를 내는 경우는 대부분 '서비스 미흡' 때문입니다. 살짝 다른 관점으로 틀어 보면 '체면 구김'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고객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해 '체면이 구겨졌다'는 것이지요.

전문가들은 이 구겨진 체면을 다시 세우려는 과정에서 이른바 '갑의 횡포'가 나온다고 합니다. 나보다 약한 누군가, 그러니까 점원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막 대함으로서 내 영향력을 과시하고, 그로 인해 묘한 보상심리를 느끼면서 '체면치레 했다'고 여긴다는 겁니다. 사실 이런 식의 '체면치레'는 그저 한번 양보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별 대수롭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 당하는 약자의 입장에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손석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자신의 실수에 비해 너무나 가혹한 처분을 받게 됐을 때 (무릎을 꿇고 읊조리는 사과도 그 중 하나) 이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돼 적응 장애를 불러올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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