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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韓 축구 '역사가 된 2002, 다시 시작하는 2015'

[이은혜의 풋볼프리즘] 韓 축구 '역사가 된 2002, 다시 시작하는 2015'
'먹먹하다'는 단어를 알게된 것은 최근 몇 년 들어서다. 아마도 그 전까지는 그런 감정이 존재하는지 몰랐기 때문일 거다. 우승 같은 준우승으로, 강요하지도 않은 희망이 스스로 한국 축구를 흔들어 깨운 새해 벽두. 쏟아지는 기사들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다 문득 먹먹했다. 이제 정말 2002 세대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은 볼 수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이런 저런 가능성들을 머리 속으로 되짚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권리나 계급, 자유나 정의, 자본이나 사상의 논리는 때론 잔혹할 정도로 불공평 해 인간을 슬프게 한다. 하지만 시간만은 공평하다.

시간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되돌릴 수도 없다. 그리고 인간은 시간을 받아들일줄 아는 만큼 어른이 된다. 한때 공보다 빨라 전성기도 모르고 지나쳤다는 차두리마저 시간의 흐름은 거스르지 못했다. 그리고 차두리의 대표팀 은퇴를 끝으로 2002 세대는 정말 역사 속 한 페이지가 됐다.

이제, 아니 벌써 2015년이다. 앞으로 기성용, 손흥민이 이끌어 갈 대표팀은 홍명보, 박지성이 이끌었던 대표팀과는 아마도 많이 다를 것이다. '다른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그 대표팀은 자의였던, 타의였든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많았다.

거침 없는 88년생을 G세대라고 했던가. 1990년 이후 태어난 세대도 화제가 됐다. 2002 월드컵 당시 초등학생이었을 그들. 손흥민, 김진수에게 차두리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브라운관 안의 영웅으로만 존재했을 차두리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렸는지는, 아마도 알 방법이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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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아시안컵이 감동적이었던 건 그래서였다. 2002 대표팀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렸던 의미를, 2015 대표팀 모두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목격했다. 그것도 480분 간의 무실점이나 결승전 종료 직전 터진 동점골 같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드라마틱한 방법들로 말이다.

물론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아이들은 골을 넣으면 감독 곁이 아니라 관중석으로 달려갔다. 벤치에는 거스 히딩크 대신 울리 슈틸리케가 있다. 이정협이라는 공격수를 발탁했고, 4개월 만에 한국 축구를 부활시킨 독일 출신의 아주 실용적인 감독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학연도, 지연도 볼 줄 몰라 오히려 한국 사람들을 슬프게 만든 이방인이라는 점뿐이다.

시간이 공평하듯,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2015년부터 새 역사를 시작하는 이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들 역시 완벽하지 않았던 선배들의 희생을 밟고 성장했다. 98년 차범근 감독의 고통, 2002년 히딩크 감독의 결단, 2014년 한국 축구가 잃어야 했던 홍명보라는 인재까지. 앞선 역사가 없었다면 한국 축구의 지금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혹시 달라서, 틀리다는 말로 속단해 버리고 싶은 순간이 오면 잠시만 숨을 골라 주시기를. 다시 희망을 찾기 까지는 12년이 걸렸다. 2002 월드컵을 TV로 보던 아이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세상에 나왔다. 러시아까지 4년은 더 길고 험난하다. 다만 아이는 잊지 않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사람이 승자다. 두리형이 알려주고 떠난 그것. 그렇게 어른이 된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SBS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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