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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교육감님, 꼭 이명춘 변호사여야만 했나요?

[취재파일] 교육감님, 꼭 이명춘 변호사여야만 했나요?
만약 대통령이 자신이 피의자 신분이였던 형사 사건에서 변호 활동을 했던 '개인 변호사'를 감사원장에 내정한다면, 국회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요? 그 전에 여론의 검증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만약 임명된다면, 감사원장은 자신과 특수 관계인 대통령의 정부를 공정한 잣대로 감사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만약에..'라는 가정입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현재 23대 감사원장까지 이런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사원장은 대통령이 후보자를 내정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임명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전력이 있다면, 국회의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법규정에 저촉되지 않더라도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크고, 국민의 법감정을 크게 거스를 수 있는 일이니까요.
취파

이런 일이 서울시교육청에서 일어났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내정자인 이명춘 변호사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검찰 수사 단계에서 변호 활동을 했던 것으로 취재됐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의 개인 형사 사건에 변호 활동을 했던 개인변호사가 감사관에 내정된 겁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말 조희연 교육감에게 소환을 통보했지만, 조 교육감은 '정치 검찰의 진보 교육감 흔들기'라는 이유로 끝내 소환에 불응했습니다.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검찰은 12월 3일 조 교육감 조사 없이 불구속기소했습니다. 해당 사건은 현재 재판 준비 중에 있습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11월 29일부터 12월 2일까지 여러번 출석 요구를 했으며 출석 일자는 4번 제시했고 그 과정에서 출석 요구 관련 연락을 참모진에게 3번, '변호인'에게 10번, 비서실장과 수행비서에게 각각 3번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이 변호인이 바로 이명춘 변호사입니다.
정혜진 취재파일용
 
서울시교육청은 11월 28일에 개방형 직위 감사관 공개모집을 발표했습니다. 조 교육감은 12월 3일에 기소됐고, 이 변호사는 이후 지원원서를 제출하고 12월 23일에 다른 지원자 5명과 함께 면접을 본 뒤 30일에 감사관으로 최종 내정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 교육감과 이 변호사의 특수 관계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감사관에 내정된 직후 기자는 이명춘 변호사에게 관련 내용에 대해 전화로 문의했습니다. 당시 이명춘 변호사의 얘기를 최대한 워딩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조 교육감이 수사하러 다닐 때 제가 옆에서 좀 도와드렸고 기소된 사건은 제가 맡지 않았습니다. 조 교육감님이 출석을 하면 제가 같이 입회하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일정을 검찰과 조율을 했는데 검찰에서 출석 사실이 언론에 나가는 바람에 그래서 조 교육감님께서 출석을 안 하게 돼서 제가 위임장을 내지 않았죠. 출석을 하려고 했는데, 그 출석 날짜를 제가 다 조율을 했죠. 그 날짜가 새어 나갔어요. 언론에 보도가 되어버리니까. 검찰이 이미 기소 방침 정해놓고 언론플레이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의심을 가졌어요. 교육감님이 출석을 하면 그때 변호사로 출석을 해서 위임장을 내려고 했는데 그게 무산이 되었어요. 이후 저는 감사관 가고 교육감님 기소 사건은 민변 000 변호사가 맡게 됐죠."

조희연 교육감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지난 교육감 선거 캠프에서 법률 문제 관련해서 제가 담당했고, 선거 과정에서 조 교육감님의 옛날 논문을 갖고 사상논쟁을 벌일 것 같아서, 제가 예전에 과거사 사건을 했었잖아요. 교육감 님이 논문에서 지적한 과거사 사건에 대한 어떤 대비를 하는 그런 것을 했어요." 

이 변호사는 "검찰 출석 조율하는 과정을 내가 맡았던 건 맞지만 조 교육감의 사건을 수임한 건 아니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검찰 출석 조율은 변호 활동이 아니고, 기소되고 나서 법원 사건엔 수임계를 내지 않았고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전직 법조출입기자로서 제 생각엔 수임계 제출 여부와는 별론으로 '전화를 통한 소환조사 조율, 피의자의 입장 전달' 등은 변호인으로서의 법률적 조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관 변호사가 수임계를 내지 않고 수사기관에 '전화 변론'을 하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비난받는 것이겠지요) 

이명춘 변호사는 어제 '과거사 사건 부정 수임'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또 감사관에 내정된 직후부터 조희연 교육감의 고향 후배이자 최측근이다, 통진당 해산 심판 변호인단에 속해 있어 부적절한 인사라는 기사도 여럿 나왔습니다.

저는 이런 사실들이 감사관 임명의 부적절성과 직접 연결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임명권자와 특수 관계라는 점은 곱씹어 볼 대목입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응시자격 요건에 명시된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률과 공무원 행동강령 등은 '이해관계 직무 회피'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조희연 교육감의 이명춘 변호사 감사관 선임과 관련해 국민권익위나 법조인들에게 물어봤을때 '김영란법이 통과된다면 '이해충돌 방지' 차원에서 다투어볼 여지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정혜진 취재파일용
▲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응시자격


조희연 교육감과 이명춘 변호사의 오랜 인연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선거 기간 함께 했던 정책적 동반자를 교육청 업무에 기용하는 것도 선출직 교육감 시대니까 가능하다고 봅니다. 비서실장이나 대변인 등 교육감의 업무 보좌를 주된 기능으로 하는 자리라면 더더욱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감사관'이라는 자리는 다르지 않을까요. 개방형 고위직인 감사관은 예산 7조원에 이르는 서울시교육청 행정 전반과 소속 공무원의 비위를 감사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감사원장이 대통령 소속기관이지만 정치적 독립과 임기를 보장받는 것처럼, 감사관도 교육감 이하 소속 공무원들의 공직기강을 점검하기 위해 독립적 임기가 보장된 자리입니다. 만약 이 변호사가 지원 의사를 밝혔다 하더라도 조 교육감이 완곡히 말렸어야 할 일입니다.

지난 19일 이명춘 변호사가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문화일보의 최초 보도가 있던 날, 서울시교육청은 출입 기자들에게 "이명춘 감사관 내정자가 본인의 입장을 아래와 같이 알려왔기에, 전달해드립니다"라며 이 변호사의 입장이 담긴 메일을 보냈습니다.

요즘 회자되는 '유체이탈 화법'이 떠올랐습니다. 감사관으로 내정된 사람의 신변에 특이사항이 생겼는데, 이에 대해 "우리가 알아보니 이렇고 그래서 앞으로 지켜보겠다거나 결과를 기다리겠다" 등의 교육청의 입장이 아니라, "이런 일이 있다니 전달해요"라는 건 공공기관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명춘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내정자는 오는 2월 1일자로 취임할 예정입니다. 오늘 있을 조희연 교육감의 신년 업무계획 기자회견에서 어떤 입장표명이 있을지 주목됩니다. 

(기자회견 이후 추가된 내용입니다.)

조희연 교육감은 오늘 오전 신년 기자회견에서 최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내정자인 이명춘 변호사에 대해 기소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임용을 보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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