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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께 추천하는 영화 한 편…'내 심장을 쏴라'

[취재파일] 대통령께 추천하는 영화 한 편…'내 심장을 쏴라'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퉈 화제의 영화 '국제시장'을 보러 가더니 어제(28일)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극장을 찾으셨더군요. 벌써 국민의 1/4이 본 화제의 작품이니 대통령이 국민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기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영화라고 판단하신 모양입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애국심"을 강조하기도 하셨으니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룬 세대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국제시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기도 하고요. 이미 박 대통령께선 관객 1,800만을 동원한 '명량'도 극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관람하셨던 걸 돌이켜 보면 국민적 여가 생활이라 할 만한 영화를 통해 최근 논란이 계속돼 온 소통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으리라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이왕 이렇게 국민들과 소통하러 극장을 찾기도 하셨다면 저도 영화 한 편 추천해 드립니다. 여러 모로 '국제시장'과는 대비되는 작품입니다. 이번 주에 개봉한 영화 '내 심장을 쏴라'입니다.
내 심장을 쏴라

● "부모님에 대한 헌사" vs "청춘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성문"

많은 분들이 보신 것처럼 '국제시장'은 한국전쟁의 폐허를 맨 몸으로 딛고 일어서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부모님 세대의 삶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독일로, 월남으로 목숨을 걸고 떠나야 했던 그 분들의 희생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해체된 가족들의 아픔에 많은 분이 공감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대통령께선 “젊은 세대들에 윗 세대의 희생을 알게 하고 소통에 도움을 줬다”고 이 영화의 사회적, 교훈적 의미를 한껏 강조하셨죠.

그렇다면 이제 요즘 젊은이들 얘기에도 한 번 귀기울여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 심장을 쏴라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에 갇힌 두 젊은이가 주인공입니다. 한 사람은 소심하고 수동적이고 다른 한 친구는 늘 탈출을 꿈꾸며 좌충우돌합니다. 그리고 정신병원 직원들은 그들을 틀 안에 가두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영화를 만든 신인 감독 문제용씨는 정신병원이라는 배경설정이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없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속에 갇힌 젊은 두 청년은 끊임없이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고요.

영화 속에서 두 젊은이들을 돕는 남자 간호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 유오성 씨는 이 영화가 "젊은 청춘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성문"같은 영화라고 평가했습니다.

다소 과한 비유일 수도 있겠지만 '국제시장'의 '덕수' 같은 어른들이 평생을 바쳐 이룩한 자랑스런 조국이 누군가에게는 '정신병원'이라는 배경으로 설정해야 할 만큼 곪아서 그 안의 젊은이들이 꿈꿀 수 없게 만드는 곳일 수도 있다고 '내 심장을 쏴라'는 말하고 있습니다.

엊그제도 한창 꿈꿀 20대 청춘이 '이제 지쳤다'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또 다른 부지기수의 젊은이들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정신병원의 담장 같은 우리 사회 속 유무형의 장벽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똑같은 대한민국 하늘을 이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간극을 만들었는 지, 영화를 소통의 통로로 활용하시는 대통령이라면 궁금해 하실 만 할 것 같습니다. 최근 수석비서관들과 새로 임명한 특보들, 장관들과는 스탠딩 티타임도 갖고 하시던데, 이 영화 보시고 젊은 관객들과 맥주라도 한 잔 하시면서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신다면 최근 여론조사에서 저조하게 나타나고 있는 20~30대의 지지를 회복하는 데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대기업 계열사의 배급 vs 독립 배급사의 영화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지난해 이후 박 대통령께서 극장을 찾은 작품 두 편이 모두 CJ 그룹 계열사가 배급한 영화이더군요. 워낙 많은 국민들이 본 작품들이니 대통령께서 보러 가시는 게 당연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명량'과 '국제시장' 모두 작품성이나 흥행과는 별개로 우리 영화산업의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작품들입니다.

1,800만 관객과 1,200만 관객이라는 숫자는 4,500만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영화 개봉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국민적 갈증이 맞물리면서 상승효과를 일으킨 점도 분명하지만 많은 영화평론가들과 영화산업 관계자들은 영화 제작과 배급, 극장까지 수직 계열화해 놓은 CJ가 아니면 가능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요즘 천만 영화는 관객이 아니라 CJ가 결정한다'는 극단적 표현까지 쓰더군요. 국민적 관심을 받는 영화를 보시는 것도 좋지만 취임 이래 거듭 강조해 오신 '상생'과 '문화융성'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살아갈 만 한 이런 대기업들 말고 맨 손으로 고군분투하는 힘없고 작은 영화인들을 좀 격려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면에서도 '내 심장을 쏴라'가 좋을 것 같습니다.

다름 아니라 이 작품 역시 지난해 연말 개봉했다가 대기업 계열 극장들이 상영관을 내주지 않는 바람에 흥행에 참패했던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배급했던 독립 배급사 '리틀빅 픽쳐스'가 배급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영화계에서 안목있는 투자로 명성이 높은 '이수창투'라는 회사가 공동으로 배급을 맡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이번 '내 심장을 쏴라'마저 대기업 계열 극장들의 외면을 받는다면 가뜩이나 심각한 영화계의 양극화와 대기업 쏠림 현상이 더욱 심각해 지지 않겠습니까?

마침 얼마 전 이 리틀빅 픽쳐스의 전 대표였던 엄용훈 씨가 대통령께 장문의 편지와 함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보러 오시라고 초대를 하셨더군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상영관을 제대로 얻지 못해 고전하던 와중에 엄용훈 전 대표는 '왕따 당한 아이의 공포감'이 뭔 지 알겠다고 했습니다.
취파

엄 전 대표는 이미 대기업들이 완벽히 장악한 영화시장에서 작은 틈새라도 뚫고 영화적 다양성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 지를 토로하며 작은 영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지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내 심장을 쏴라' 같은 독립배급사의 영화에 대통령의 격려가 전해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상생’과 '문화융성'의 메시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 인심 날 곳간 없는 영화판…표준계약 이전의 문제들

박 대통령이 관람한 '국제시장'은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모든 스텝들과 표준근로계약을 맺고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열정페이'라는 이름의 노동착취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당한 땀의 대가를 치르고 만든 작품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 또한 분명합니다. CJ라는 든든한 배급망과 이 작품 이전에 '천만 감독' 대열에 올라선 윤제균 감독의 흥행성을 믿은 투자자들이 없었다면 과연 '열정페이'가 난무하고 있는 영화계에서 표준 근로 계약이 가능했겠느냐는 점입니다.

아직도 대다수의 영화인들은 뛰어난 시나리오와 연출력을 갖고도 넉넉치 못한 제작비와 씨름하면서 자식 같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장들마다 표준 근로 계약을 맺고 제대로 된 대접받으며 영화를 찍으면 좋겠지만 일부 대기업들이 제작과 배급, 상영을 모두 독점하고 수익이 한 쪽으로 극단적으로 쏠리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표준 근로 계약의 확대는 커녕 영화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너무도 큰 상황입니다.

가득 찬 곳간에선 인심도 나고 생색도 내겠지만, 곳간은 커녕 끼니를 때울 쌀 한 줌이 아쉬운 게 영화계 일반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문화융성을 강조하고, 영화를 포함한 콘텐츠 산업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평가하는 대통령이시니만큼 '소통'과 '상생'의 메시지를 동시에 담은, 아울러 오늘의 우리를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영화 한 편 젊은이들과 함께 보실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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