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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독일 토너먼트 DNA, 한국형 '늪축구'로 새 역사

[아시안컵] 독일 토너먼트 DNA, 한국형 '늪축구'로 새 역사
한국 축구가 새 역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이다. 결승서도 무실점을 기록할 경우 1976년 이란 이후 처음으로 전 경기 무실점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26일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 이라크와의 준결승에서 2-0 완승을 기록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 오만전부터 준결승까지 5경기 연속 무실점. 이번 아시안컵은 독일 축구의 '토너먼트 유전자'와 한국 축구와 만났을 때 어떤 작품이 나올 수 있는지 보여준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독일에는 자국 축구 대표팀을 부르는 말 중에 '투르니에르만샤프트(turniermannschaft)'라는 단어가 있다. '투르니에르만샤프트(turniermannschaft)'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토너먼트 유전자를 가진 팀' 즉, 토너먼트 대회에 강한 팀이라는 의미다. 전차군단 독일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통산 네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02 월드컵 준우승 이후 12년 만에, 서독이 아닌 통일 독일로서는 처음 이룬 성과였다.

독일 대표팀이 월드컵 우승 문턱까지 간 횟수는 더 엄청나다. 우승 4회, 준우승 4회, 3위 4회, 4위 1회, 8강 진출만 4회이고 역대 최저 성적은 1938년 3회 대회에서 거둔 16강이다. 참가하지 않은 1회와 4회 대회를 제외하곤 모두 본선 진출에 성공한 셈이다. 독일 대표팀이 토너먼트 대회 예선에서 탈락하는 일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독일 출신 슈틸리케 감독이 태생적으로 '토너먼트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란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그 유전자가 만개한 적은 없었다. 독일 20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했던 2001년 FIFA U-20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에 그쳤고, 2003년 대회는 조별탈락 했다. 2008년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을 맡아 다시 기회가 왔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중도 사임해야 했다.

그런데 그 유전자가 한국 대표팀과 만나 드디어 만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대축구에는 "공격을 하는 팀은 승리하지만 수비를 하는 팀은 우승한다"는 말이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와 서독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던 현역 시절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던 수비수다. 수비 축구는 때론 지독한 안티 전술로 비난 받기도 하지만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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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은 무실점 '늪축구'로 결승까지 올라갔다. 매 경기 내용은 공수 양면에 걸쳐 완벽하지는 못했다. 특히 수비 조직력은 오히려 불안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데 슈틸리케호의 골문은 선방을 이어 온 골키퍼 김진현의 활약을 보태 90분 내내 열릴 듯, 열릴 듯 하면서도 절대 열리지 않았다. 이라크전에서도 김진현이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수비진이 몸을 던지는 육탄 방어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토너먼트 유전자를 입증한 슈틸리케 감독의 또 다른 성과는 여러 교체카드로 활용, 8강 이전까지 선수 전원의 경기 감각을 끌어 올린 점이다. 준결승이라는 중요한 경기에서도 공격진에 한교원을 깜짝 카드로 활용하며 지금이 아닌 다음을 생각하는 '노림수'를 선보였다. 그것이 결승전이든, 한국 축구의 미래든 분명히 높이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일례로 일본은 8강까지 거의 동일한 명단을 유지해 선수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지나친 흥분은 곤란하다. 슈틸리케호는 이제 막 첫 걸음을 떼었을 뿐이고 더 중요한 것은 남은 결승전 그리고 오는 6월부터 시작되는 2018 러시아월드컵 예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축구의 토너먼트 유전자 '투르니에르만샤프트(turniermannschaft)'와 '투혼'으로 대표되는 한국 축구의 성공적인 만남은, 조금 답답하면서도 이상한 힘을 가진 늪축구를 탄생시켰다. 이번 아시안컵의 최대 성과이다.

그 주역은 슈틸리케 감독과, 독일축구과 한국 축구를 모두 내제한 차두리,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베테랑 곽태휘와 주장 기성용, 어린 손흥민과 김진수 같이 앞으로 대표팀을 이끌어 갈 선수들이다. 이근호나 이정협처럼 K리그가 키워낸 선수들은 물론 부상으로 일찍 팀을 떠나야 했던 구자철 이청용까지. 모두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대표팀의 새 출발이다. '늪축구'로 다시 시작한 한국 축구가 55년 만의 아시아 정상까지 이제 단 한 경기만을 남겨 두게 됐다.

[사진=SBS 중계화면 캡처]

(SBS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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