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교복 어디서?…시험대 오른 학교 주관구매제

탈락 업체 마케팅에 '흔들'…학생들 "개별 구매, 다 방법이 있죠."

[취재파일] 교복 어디서?…시험대 오른 학교 주관구매제
교복 값, ‘사악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비쌌습니다. 학기 초, 교복구매 때문에 학부모 허리가 휘청한다는 뉴스도 자주 등장했죠. 그래서 교육부가 내놓은 해법이 있습니다. ‘학교 주관구매제’입니다. 중고생 자녀를 두지 않았다면, 굉장히 생소하게 들리실 겁니다.

예전 공동구매와 비슷한데, 경쟁 입찰을 통해 ‘학교’에서 교복을 일괄 구매하는 방식입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교복 값 인하 효과는 확실히 있었습니다. 최대 34%까지 낮아졌다고 합니다. 교육부 보도자료도 나왔습니다. 매해 반복되던 교복 값 문제가 생각보다 아주 쉽게 풀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 높던 교복비가 하루 아침에 낮아지는데 잡음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제보가 왔습니다. 경기도 한 도시의 A학교에 교복 대리점이 낙찰을 받았고, 신청을 받았는데 그 결과가 황당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동복 교복 세트 가격은 지난해 22만원보다 8만원 정도 내려간 14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청한 학생들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40% 남짓한 학생들만 신청을 했다는 겁니다. 인근 학교에서도 신청율은 50%를 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신해 일괄적으로 계약을 진행했고, 그러니 70%는 신청할 것이라고 믿었던 대리점 사장은 낭패를 봤단 입장입니다. 혹시 물건이 모자랄까봐 본사를 통해 미리 주문을 했는데, 고스란히 안 팔린 물건들을 손해로 떠안게 됐다는 겁니다. 본사에선 대리점 형편을 봐줄리 없다며 울상이 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 학교에선 신청율이 거의 100%에 달한다는 곳도 있답니다. 지역에 따라서 제도가 다르게 적용되는 것은 아닌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각보다, 답이 간단했습니다.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신청하도록 학생들에게 요구했느냐, 안했느냐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학교를 통해 교복을 구매하지 않은 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 교복을 구했을까요? 학교 인근에서 만난 학생들은 교육부의 ‘주관구매제’에 코웃음을 쳤습니다. 학교에서 정한 업체에서 사라는 방식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중학교 때 구매했던 업체에서 고등학교 교복도 사고 싶은데, 학교가 정한 교복 업체가 자신이 좋아하던 그 곳이 아니라면? 꾀를 쓰면 된다고 했습니다. 학교에는 ‘교복을 물려받는다’거나 ‘중고 교복 장터’에서 구매할 예정이라고 한 뒤, 개인적으로 구매하면 된다는 것이죠. 실제로 이런 학생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 마땅히 없는 형편입니다.
교복 캡쳐_640
여기에 입찰에서 떨어진 경쟁 업체, 대형 교복 업체 대리점들의 마케팅도 거셉니다. ‘학교 주관구매제’가 시행됐더라도 개인 구매는 소비자의 권리라는 주장입니다. 전단지를 뿌려가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기도 하고, 매장 전면에 현수막을 걸어 놓기도 합니다. 학교를 통해서만 교복을 사는 것으로 알고 있던 입학생이나 학부모들도 이런 역 마케팅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덤'도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선정한 업체의 교복 가격과 똑같은 가격에 교복을 판매하고, 덤으로 셔츠나 블라우스를 하나 끼워서 주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입찰에 탈락한 한 업체는 9만원 교복 한 벌을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대리점을 정리할 계획이어서 싸게 판다고는 했습니다. 어쨌든 9만원짜리 교복을 시중에서 판매한다면 굳이 학교에서 정한 업체를 통해 교복을 사야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디자인 요소를 배제하고 가격적인 부분만 고려했을 때 말입니다.) 취재내내 씁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학교 주관구매제 이전만해도 20-30만원에 팔던 교복이 순식간에 9만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입니다.

사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선, 손해보는 게임이 아닙니다. 업체들의 출혈 경쟁 여부와는 상관없이, 교복값 거품이 사라진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경쟁 업체들의 역마케팅과 학생들의 낮은 호응 속에서, 제도가 유지될 수 있느냐입니다. 올해의 교복 인하 효과는 제도 자체가 불러온 효과인 만큼, 단점을 보완해 유지되는 게 필요하다고 학부모 단체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학교 구매제의 인하 효과를 홍보하던 교육부는, 뜻밖의 상황에 당혹스러운 표정입니다. 교복을 물려 입거나, 중고 교복을 사는 경우 정도로 아주 제한적인 경우에만 개별 구매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이었는데 생각대로 시장이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교복 구매 선택지는 '주관구매' '개별구매'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런데 개별구매 아래에는 '교복물려입기 등'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등'이라는 표현 속에 수많은 예외 상황이 포함된 셈이죠.) 교육부 관계자는 제도 시행 전 대형 교복 업체들로부터 협조하겠다는 내용의 업무 협약도 체결했었다면서, 탈락 매장들의 끼워팔기 덤핑 행위가 심각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교육부 뿐 아니라 일선 학교들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한 학교에선 생각보다 낮은 참여율에 교복 대리점주들을 불러서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교육부는 법적 조치까지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진 엄포에 그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학교 지정 업체 아닌, 다른 곳에서 품질이 더 좋거나 가격이 더 싼 교복을 사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학교 주관구매제', 교복 가격을 낮추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는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입학하기 전까지 얼마나 참여할지는 살펴봐야한단 점에서, 아직까진 반쪽짜리 성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장 경제 논리로 파고드는 탈락 업체들의 마케팅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남은 숙제입니다. 

▶ 경쟁 입찰로 교복 값 떨어졌는데…구매율 '뚝'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