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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면(面)을 통폐합한다고? 안 되지"…행정효율의 딜레마

[취재파일] "면(面)을 통폐합한다고? 안 되지"…행정효율의 딜레마
제가 지금 출입하고 있는 곳은 행정자치부와 인사혁신처입니다. 두 기관 모두 전에 안전행정부였다가 지난해 11월 국민안전처와 함께 신설된 곳입니다. 주로 공무원 조직과 인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보니 방송기사가 자주 나오는 곳은 아닙니다만, 어제 출입처 기사를 쓸 기회가 생겼습니다. 각 부처가 올해 어떤 일을 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신년 업무 보고 자료가 나왔는데, 괜찮은 기사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기대와 다르게 확 끄는 자료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2~3개 면을 묶는다”는 행자부 보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2~3개 면사무소를 통합해 1개는 행정면으로 운영하고 나머지 면사무소 시설과 인력은 복지에 집중하겠다는 것인데, 제 고향이 면사무소가 있는 시골이어서 그런지 ‘면사무소 통폐합’이 크게 느껴지더군요. 농촌 주민 입장에서는 다른 면사무소에 가서 행정업무를 봐야 한다는 소식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아침부터 리포트 제작을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신문과 다르게 방송은 구체적인 실례를 영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통폐합 대상이 되는 농촌지역의 면을 직접 찾아가서 취재해야 합니다. 통폐합의 첫 번째 기준이 되는 인구가 적은 면을 찾아본 끝에, 당일치기가 가능한 충청남도 보은군 회남면 사무소를 가기로 했습니다.

보은군 회남면은 전형적인 인구 과소 지역이었습니다. 인구가 777명에 불과하고,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40%에 육박하는 곳이었습니다. 취재차를 타고 회남면으로 접어드니, 정말 인가가 뜸하더군요. 면장님 말로는 과거 인구가 많았지만, 80년대 대청호로 옥토가 침수가 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고 하더군요. 점심식사를 할 식당을 겨우 찾을 정도로 시골이었습니다.

인구가 많지 않지만,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이웃의 다른 면과 비슷한 15명이었습니다. 면장과 부면장이 있고, 작은 면이라고 하지만 총무계와 사회복지계,산업계 등 필요업무는 마찬가지다 보니 인력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산술적으로 직원 한 명당 주민 50명 남짓을 맡고 있는 셈이죠. 주민은 적지만 넓은 지역에 가구가 흩어져 있어,면사무소에서 차로 한 시간 넘게 가야 하는 곳이 있는 등 업무가 만만치 않다고 했습니다. 
면사무소 캡쳐_64

리포트에는 반영을 못했지만, 주민들을 만나 면 통폐합에 생각을 인터뷰했습니다. 만나는 분들마다 펄쩍 뛰더군요. 노인들이 많고 교통이 불편한데 어떻게 멀리 있는 다른 면사무소까지 가서 행정업무를 볼 수 있겠냐며, 말도 안 되는 조치라고 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시골 사람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며, 분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정부는 이런 반발 때문에 그동안 면 통폐합에 소극적이었습니다. 면의 통폐합을 전제로 한 ‘행정면’ 제도는 이미 지난 2009년에 마련됐습니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법을 개정하고 통폐합에 나서려고 했지만, 거센 반발에 부딪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번에도 해당 부서는 이런 반발을 의식해, 무척 조심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행정 효율성’보다 주민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면 통폐합에 나섰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폐합’이란 표현을 쓰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고, 기존 법정면의 이름과 주소는 그대로 살아있다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면 통폐합 문제는 쉽게 풀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주민의 생활편의만 앞세우기도, 지방행정의 효율성만 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제가 특파원으로 있던 일본의 경우도, 이 딜레마를 푸느라 여전히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전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우정성 민영화 조치가 비슷한 맥락에서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찬성론자들은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개혁한 대표적인 조치라고 말하고 있지만, 반대론자들은 우정성 민영화 조치가 지방의 황폐화를 촉진시킨 원흉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 농촌의 특성상 우체국이 단순한 기관 이상으로 주민들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무리한 통폐합 조치로 큰 후유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농촌의 면사무소도 도시의 동사무소와 다르게 농촌 주민들에게 단순한 기능 이상의 애착이 가는 기관이다 보니, 정서적인 면에서 통폐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부의 개혁 방향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농촌 출신이고 지금도 부모님이 고향에 계시지만, 지방 행정조직의 합리화 자체는 미룰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결국 성패의 관건은 정부가 강조한 것처럼 주민들이 “통폐합 조치 이후 복지서비스가 좋아졌다”라고 느낄만한 구체적인 조치들이 나오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조치’는 어떤 것일까? 저는 충남 서천군이 처음으로 실시한 ‘희망택시’ 제도가 떠올랐습니다. ‘희망택시’는 지자체가 교통 오지의 주민들을 위해 지원하는 저렴한 콜택시를 일컫습니다. 이 제도 덕분에 주민들의 불편이 크게 해소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던 농촌 버스 예산도 크게 절약하는 말 그대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고 합니다. 다른 지자체로도  확산되고 있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꾼 것이죠.

 비효율은 개선하고 서비스의 질은 떨어뜨리지 않는 좋은 아이디어가 계속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인구 적은 지방 면사무소 2~3개 하나로 통합"
▶ "인구 적은 면·동 두세 개, 하나로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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