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과 아버지

영화 ‘국제시장’이 지난 13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영화로는 11번째, 윤제균 감독은 2009년 ‘해운대’에 이어 1000만 영화 두 편을 만든 최초의 감독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감독이 됐다.‘국제시장’은 한마디로 웰 메이드 상업영화다. ‘감동과 재미‘ 영화 엔터테인먼트가 갖춰야 할 두 가지 덕목을 착실히 갖추고 있다.

‘국제시장’은 아버지 영화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파독 광부 간호사, 이산가족 찾기, 절대빈곤과 경제성장 등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관통한 전형적인 산업화시대의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가족과 생계를 위해 아버지는 모든 짐을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는다, 희생하고 헌신하지만 무뚝뚝하고 권위적이다. 60대 70대 80대...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영화는 한국전쟁 통에 생이별하게 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약속으로 시작한다. 봉건적이며 유교적인 아버지는 12살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이제 이 집의 가장은 너다. 가장에겐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들을 잘 지켜라.”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들은 이후 베트남의 정글로, 독일의 탄광으로...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왜 당신 인생에 당신은 없느냐?”고. 그는 말한다. “이 지옥 같은 전쟁터에, 탄가루 날리는 막장에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영화 '국제시장'
영화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아버지 그래도 저 잘 살았죠. 그런데, 참 힘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어느새 백발이 된 12살 아들이 생이별로 헤어진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하는 말이다. 판타지가 일어나며 헤어졌던 아버지가 나타난다. “아들아 울지 마라. 네 맘 다 안다. 정말 고맙구나. 나도 보고 싶었다...”    

윤제균 감독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바로 이 마지막 대사가 영화제작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이 고려대 경제학과 2학년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평생 박봉의 월급쟁이로 사신 탓에 유산도 별로 없어 이후 대학을 아르바이트를 해 다녔고, 대기업 전략기획실에 근무하던 신혼 초에도 서울 아현동에서 반 지하 셋방살이를 했다고 윤 감독은 회고했다. 영화처럼 어머니 모시고 동생을 결혼시켰다. 삶의 고비 고비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고, 어려운 시절 살다 가신 아버지가 못내 그리웠다. 그런 아버지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 돌아가시기 전에 ‘감사하다’한마디 못했을까. 이  아버지에 대한 헌사가 1000만 관객을 눈물짓게 한 영화 ‘국제시장’을 낳게 했다. 실제로 영화 속 주인공인 덕수(황정민 분)와 영자(김윤진 분)는 윤 감독 부모님의 이름이다.    

영화는 보통의 드라마와 달리 기승전결이 없다. 발단 전개 위기 갈등 절정 파국 결말의 기본적인 장치도 없다. 4가지 시퀀스로 구성된 나열방식이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데, 재미있다. 가공인물과 역사적 사실이 혼재하는 가운데 실존인물의 깜짝등장이 영화의 재미를 살려주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주인공 덕수에게 구두를 닦으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단다”라고 말한다. 주요 배경이 된 국제시장 수입 잡화 가게인 꽃분이네에 나타난 디자이너 앙드레김은 꽃으로 수를 놓은 덕수 고모의 흰색 한복을 보더니 “판타스틱 엘레강스”를 외치며 디자인의 영감을 얻는다. 베트남 정글에서 덕수를 구해준 사람은 가수 남진이다.

이런 재미 요소는 상업영화의 필수요소이기도 하지만, 인물선정과 상황설정에는 감독의 계산이 깔려있다, 윤제균 감독은 일단 정치인을 배제했다. 작고한 아버지에 대한 헌사로 시작한 영화가 정치적으로 확장되는 걸 꺼렸다. 영화에서 현대사의 큰 테마 가운데 하나인 민주화과정을 넣지 않고 경제성장기까지만 다룬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제 ‘감초’역할로 누구를 설정할까? 당초 경제인으로는 정주영 회장과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후보로 떠올렸다. 그런데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지 더 오래 전이어서인지 사람들, 특히 영화의 주요고객층인 20~30대가 잘 기억하지 못했다. 여기에 정주영 회장은 통천 출신의 실향민으로 주인공 덕수의 처지와 비슷했고, ‘소떼방북’ 등 살아생전 캐릭터도 강해 극중 인물로 적절했다. 문화,예술인으로는 누가 좋을까, 설문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그랬더니 20대부터 50대까지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로 단연 앙드레김이 꼽혔다. 앙드레김도 한국전쟁 때 부산에서 피난시절을 보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노윤호가 연기한 남진을 설정한 배경은 다분히 감독의 의도였다. 당대의 가수 남진은 전라도 출신이다. 경상도 출신인 나훈아와 쌍벽을 이뤘던 과거 가요계에도 지역적 배경이 없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남진을 설정한 배경이었다. 윤 감독은 영화에서 아버지와 아들, 즉 ‘세대 간의 이해’를 강조하려 했다. 요즘 말로 소통과 화합이다. 위기에 처한 경상도 출신 덕수를 구출해준 게 바로 전라도 출신 남진이다.

윤 감독은 “경상도 사람의 목숨을 구해준 평생의 은인을 전라도 사람으로 설정한 것은 계산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남진은 베트남전 파병 용사였다. 남진은 실제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전투를 벌인 해병대 출신이다. 또 하나, 천하장사 출신 방송인 이만기를 웃음코드로 설정한 건 사실 차선이었다. 당초 윤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있던 당대의 스트라이커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을 설정하려 했다. 그러나 차범근이 독일에 진출해 있던 시기와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시기가 달라 ‘우연의 필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요 촬영지였던 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의 이름은 원래 영신상회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영신상회는 명소가 됐다. 영신상회가 있는 골목은 관광객들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다. 영신상회 사장은 신미란 씨다. 영화에서 꽃분이네를 운영하던 덕수 고모 역할을 한 배우는 라미란이다. 우연이었을까? 미란이 전성시대다. 

영화‘국제시장’이 뜨면서 전통시장의 침체와 함께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던‘국제시장’도 함께 떴다. 그곳에서 공구를 파는 강우진 할아버지도 영화 속 덕수처럼 실향민이다. 1.4 후퇴 때 가족과 생이별해 고아 아닌 고아신세가 됐다. 열여덟에 내려와 올해 여든셋이 됐으니, 모진 목숨 연명하려고 또 결혼해서는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고 허리띠 졸라매며 살아온 지 어느새 65년이 지났다. 평안북도 평원군 노지면 농당리. 고향은 이제 꿈으로 가본다. 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신청을 했지만 연락이 없다. 그 겨울 차디찬 대동강을 건너지 못했던 어린 동생들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 홀로 내려온 길이 영이별이었다.

국제시장은 한때 강 할아버지 같은 실향민들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보급품과 구호물품을 거래하며 삶을 이어나가던 곳이다. 1953년 발표된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는 당시의 생활상을 잘 표현해준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메어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중략)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1세대 실향민은 이제 단 두 명뿐이다. 

▶[뉴스토리] 국제시장 천만 흥행…우리시대의 '아버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