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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승부가 없다"…'남자 대회' 아시안컵

2015 아시안컵 조별 예선 24경기 모두 무승부가 없었다

[취재파일] "무승부가 없다"…'남자 대회' 아시안컵
2015 호주 아시안컵 조별리그 24경기가 오늘 (20일) 모두 막을 내렸습니다. 자연스레 8강 대진도 모두 가려졌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별 예선 24경기 가운데 무승부가 하나도 없었다는 겁니다. 대회 중반까지는 설마, 설마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AFC도 일찌감치 홈페이지를 통해 '국제축구대회에서 20경기 연속으로 무승부가 나오지 않은 것은 85년만에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종전 기록은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나온 18경기입니다. 사실대로라면 엄청난 대기록입니다. 24경기까지 기록을 늘렸으니까요. 사흘 전 개막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무승부가 줄줄이 이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특이한 기록이 하나 더 있습니다. A부터 D조까지 4개 조, 1위부터 4위까지 모든 나라의 승점과 승패 기록이 똑같습니다.  1위는 3연승으로 9점, 2위는 2승 1패로 6점, 3위는 1승 2패로 3점, 4위는 3전 전패로 0점입니다. ‘9,6,3,0’, ‘9,6,3,0’이 계속 이어집니다. 무승부가 없으니까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습니다만, 모든 조의 승점과 기록이 동일하다는 사실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아시안컵조별리그결과
▲ 모든 조, 1위부터 4위까지 승점과 승패 전적이 똑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물론 우연 탓도 크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는 ‘뚜렷한 전력 차이’가 꼽힙니다. 변동이 많고, 다크호스가 많은 유럽이나 남미와는 달리 아시아 축구는 수준 차이가 나라마다 현격하고 큰 변동도 없습니다. 우리와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북아와 중동을 제외하면 우즈베키스탄과 호주 정도, 나머지는 최약체로 분류됩니다. 우리나라가 오만이나 베트남에 졌을 때 ‘충격’ ‘굴욕’을 쓰는 데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번 대회 조별 예선에도 이변은 없었습니다. 올라갈 팀은 올라갔고 떨어질 팀은 떨어졌습니다. 중국이 나름 돌풍을 일으켰고 우리 대표팀도 우려에 비해 선전하기는 했지만 크게 상식에서 벗어나는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승자승 원칙’이 적용된 것도 ‘무무(無無) 사태’에 한몫했다는 분석입니다. 두 팀 간에 승점이 같을 때 골득실이나 다득점 원칙을 적용하는 다른 대회와 달리, 아시안컵은 두 팀의 상대 전적을 적용하는 승자승 원칙을 적용합니다. A와 B가 승점이 같다면, A와 B가 서로 맞붙었을 때 이긴 팀에 우선권을 주는 방식입니다. 무승부일 경우에는 골득실을 따집니다. 참고로 월드컵은 승점에 이어 골득실-다득점-승자승-해당 팀 간 경기 골득실-해당 팀 간 경기 다득점-동전 던지기 순으로 승부를 정하고 유럽선수권도 비슷합니다.

따라서 각 팀은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지기보다 ‘바로 지금’ 한 경기를 이기는 데 더 집중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1승 2무, 승점 5점으로 16강!’, 이런 거 덜 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아무리 약체를 상대로 골을 많이 넣어도 다른 팀에 졌으면 불리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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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팀’ 스포르팅 히혼과 ‘허정무컵’

무승부 없는 아시안컵을 보면서 일부 축구팬은 스페인 프로축구팀 ‘스포르팅 히혼’을 떠올립니다. 지금은 2부 리그인 세군다 리가에 속한 스포르팅 히혼은 한때 1부 리그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역시 ‘무(無)없는 팀’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지난 2008-2009시즌, 무려 33경기 연속 무승부가 없었습니다. 물론 압도적으로 실점이 많았고 패배가 더 많았지만, ‘모 아니면 도’ 식의 화끈한 스타일로 ‘남자의 팀’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 후 1부와 2부 리그를 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홈 팬들과 축구 매니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팀입니다.

정 반대 사례로는 우리나라의 ‘허정무컵’이 있었습니다. 다소 장난스러운 의미를 가진 이 대회는 실제 존재했던 대회가 아니라 한 K리그 축구팬이 만든 가상의 대회입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계속 무승부를 기록하자 2006년 K리그 9경기 연속 무승부 기록을 세웠던 허정무 감독의 이름을 따 붙인 이름입니다. 이 대회에는 ‘승패는 취급하지 않는다’, ‘무득점 무승부시에는 4점의 무점이 추가되고 득점 무승부시에는 3점의 무점이 추가된다’와 같은 재미있는 룰이 존재했습니다. ‘워너비(Wannabe) 스폰서’로는 농촌진흥청, 한국농촌공사, 모 종묘회사 등이 이름을 올렸는데 (먹는) ‘무’를 재배하는 뜻이랍니다. (실제 스폰서가 아닌 어디까지나 '워너비'입니다)물론 화끈한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축구팬들의 익살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남자 대회’, 팬들은 즐겁다

무승부가 없다는 기록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기록은 아닙니다. 그냥 흥미로운 가십 정도로 회자될 뿐입니다. 어쨌든 축구 경기에서 골이 터지고, 경기마다 승부가 가려진다는 것은 축구팬들에게는 마냥 즐거운 일입니다. ‘치열한 무승부’도, ‘극적인 무승부’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결국 축구는 ‘골’로 말하고 ‘골’로 기억됩니다. 화끈한 승패만큼이나 화끈한 골도 많이 나오길 기원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경기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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