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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창진 사무장 징계시도 의혹…진단서는 한 달간 어디에?

[취재파일] 박창진 사무장 징계시도 의혹…진단서는 한 달간 어디에?
그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듯 했다. 머리를 모자로 가리고 마스크를 쓴 그는 남들이 혹여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까, 누군가 자신을 보고 뭐라고 말하지 않을까를 의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환영이나 환청에도 시달리고 있다며 쉽게 잠을 청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최근에는 마트에서 물건을 사왔는데 휴대전화에 찍힌 계산금액을 보고 누군가에게 카드를 도용당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카드사에 연락을 취한 적도 있다고 했다.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을 최초로 알린 대한항공 사무장 박창진 씨의 이야기다.
 
● 회사로부터 온 메일
 
지난해 12월 8일, 박 사무장은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다. 지난해 12월 5일 뉴욕 JFK공항에서 사건이 일어난 지 3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회사의 증거인멸 지시, 국토부 조사 진술 강요 등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괴로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박 사무장은 당시 병원에서 FAX로 진단서를 보냈다. 하지만 회사에서 원본 제출을 요구하는 연락이 왔고, 박 사무장은 이후 자신을 찾아온 대한항공 직원 A씨에게 원본을 건넸다. (정작 A씨가 박 사무장을 찾아 온 이유는 따로 있다)

그리고 지난 1월 7일, 회사는 박 사무장에게 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12월 8일부터 일주일 동안의 병가 신청분에 대해 진단선 원본을 제출하지 않았다며 근태를 상부에 보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쉽게 말해 “당신은 적합한 근거 없이 쉬고 있으니 근거를 빨리 내라, 내지 않으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취파
● 공중에 뜬 진단서 원본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A씨가 근태 담당 직원에게 진단선 원본을 건네지 않아 일어난 행정착오라고 해명했다. 박 사무장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박 사무장에게 메일을 보낸 날이 1월 7일임을 감안하면 A씨는 박 사무장의 진단서 원본을 한 달 가까이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도대체 왜 A씨는 박 사무장의 진단서 원본을 한 달씩이나 가지고 있었을까? 단순한 착오였던 것일까? 아니면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가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대한항공의 해명대로라면 석연치 않은 부분은 분명히 남는다.

 A씨가 박 사무장을 만나러 온 이유는 따로 있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A씨는 박 사무장을 만난 뒤 회사에 면담 내용을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A씨는 박 사무장 면담 내용은 회사에 보고하고 본인은 박 사무장의 진단서를 한 달 가까이 지니고 있었다는 꼴이 된다. 설령 A씨가 회사에 박 사무장 면담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의도성이 없는 상황이라면 제출해 달라고 부탁한 진단서를 회사에 내지 않고 한 달 가까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착오도 하루 이틀이면 모를까, 한 달 가까이 본인 것도 아닌 박 사무장의 진단서를 왜 지니고 있었냐는 말이다. 현재 박 사무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대한항공에게 어떤 의미일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한항공 취파
 
또 대한항공은 박 사무장에게 보낸 메일은 일반적인 안내메일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메일 첫 문장부터 ‘타 직원 업무에 방해가 되니 사무실로 전화하지 말고 메일로만 답하라’고 한다던지 ‘근태를 보고 하겠다’는 내용을 어떤 누가 안내메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아파서 병가를 낸 직원에게 형식적으로나마 ‘쾌유를 빈다’ 라든지 하는 문구 정도는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한항공은 안내메일을 이런 식으로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정도라면 오히려 경고성 메일이라고 보는 게 보다 합당하다고 보인다.

●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조직이 개인을 힘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개인이 조직을 상대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개인이 조직을 상대하는 싸움은 쉽지 않은 법이다. 박 사무장도 대놓고 조직과 한 판 붙어보려고 했던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본래 일어났던 상황과 달리 모든 책임을 본인에게 뒤집어씌우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대한항공 조직 전체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게 되는 꼴이 돼 버렸다.
대한항공 취파
대한항공이 박 사무장에게 메일을 보낸 날은 공교롭게도 조현아 전 부사장이 재판에 넘겨진 날(7일)이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서도 우연이 겹친 상황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명심보감에는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구절이 있다.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고쳐 매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 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뜻으로 남의 의심을 살 행동을 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내놓은 해명들을 선의로 해석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조 전 부사장이 기소된 날 징계를 암시하는 내용의 메일을 박 사무장에게 보낸 의미가 어떤 것인 지 회사가 판단하지 못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한항공이 이 사건을 얼마나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방증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취재결과 대한항공이 이번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대한항공에게 '땅콩회항' 사건은 기업문화를 쇄신하고 거듭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일 수도 있지만 두 번 다시 재기가 힘들어지는 치명적인 위기일 수도 있다. 선택은 대한항공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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