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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요절한 여가수 시신 '도촬'…그 추악한 배경은?

[월드리포트] 요절한 여가수 시신 '도촬'…그 추악한 배경은?
그녀는 데뷔부터 남달랐습니다. 인민해방군 가무단 소속 가수이던 27살의 야오베이나(姚貝娜)는 2008년 중국 CCTV가 주최한 청년가수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청순한 외모에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인 그녀는 사상 처음으로 100점 만점을 받고 우승을 거머줬습니다.
야오베이나
그 뒤로는 승승장구했습니다. 히트 앨범을 연이어 발표하며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주제곡도 불렀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가장 핫하다는 인기가요프로 '보이스차이나(中國好聲音)'에서도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며 찬사를 받았습니다. 데뷔 7년차,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던 그녀가 지난해 11월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갑자기 발견된 유선암이 급속도로 온 몸으로 전이되면서 투병 두 달만인 지난 16일 광둥성 선전시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34살! 그녀는 또 한 명의 요절 스타로 남고 말았습니다.
야오베이나
롱런이 기대되던 전도유망한 톱 스타였던지라 그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각종 언론사 기자들은 병원에 진을 치고 시시각각 야오베이나의 병세와 가족사를 비롯한 각종 가십 거리들을 기사로 쓰면서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였습니다. 병원 의료진들도 24시간 밀착 마크하는 기자들 등살에 바깥 출입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한 점의 고기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굶주린 야수들 마냥 기자들은 남보다 한 발 앞선 기삿거리 찾기에 혈안이 됐습니다.

맘껏 가져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야오베이나는 자신의 각막을 시력을 잃은 두 사람에게 기증하며 떠났습니다. 그녀의 불행과 선행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함께 눈물짓던 취재진 중에는 취재 윤리를 저버린 부도덕한 사람들이 끼어 있었습니다.

선전 지역 언론인 ‘선전만보’라는 신문사는 소속 기자 3명을 병원 임시 수술실로 잠입시켰습니다. 의료진으로부터 야오베이나가 숨을 거둔 직후 각막 이식 수술을 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수술실로 잠입해 야오베이나의 시신을 촬영하도록 지시한 겁니다. 의사 가운까지 입고 의료진으로 위장해 의도한 대로 시신 촬영에 성공하자, 신문사는 이 사진들을 특종이라며 기사로 다루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실을 빠져나오다 유족들에게 발각됐고 유족들이 신문사에 엄중 항의하면서 이 사진들은 모두 삭제됐습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 언론사의 특종 욕심에 망자를 욕되게 할 희대의 불상사가 벌어질 뻔 했던 겁니다.
야오베이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전만보에는 부도덕한 취재 윤리를 비난하는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처음에 선전만보는 유족들의 양해 아래 촬영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족들과도 계속 소통하고 있다며 논란을 비껴가려고 했습니다. 갈수록 커지는 비난에 직면한 선전만보는 결국 이틀이 지나서야 뒤늦게 유족 앞으로 간단한 사과성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쉽게 잦아들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선전만보와 병원 의료진 간에 모종의 추악한 거래가 있었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야오베이나의 각막 이식 수술을 집도한 야오샤오밍이라는 의사는 선전시의 정협위원을 맡고 있는 야심만만한 인물입니다. 야오베이나의 아버지와도 친분 관계가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명예회장이자 이사장으로 있는 선전시자선협회 각막은행을 중심으로 선전시 홍십자회, 선전시공익기금회, 청두 국제연합 각막은행과 합동으로 ‘아오베이나 기금회’를 출범시키고자 했습니다.

사실상 이 기금회의 운영은 야오 의사의 손아귀에 맡겨질 판이었습니다. 야오베이나의 각막 기증으로 중국 전역에서 기금회에 기부금이 쇄도할 것을 예상한 그가 발 빠르게 움직인 겁니다. 딸의 죽음 앞에서 경황이 없던 야오베이나 아버지의 동의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정황을 포착한 선전만보가 이를 기사화하려하자 집도의인 야오가 기사를 막는 대신 그 반대 급부로 선전만보 기자들에게 야오베이나의 시신 촬영을 묵인해줬다는 게 소문의 주 내용입니다.
야오베이나
뒤늦게 이 소문을 전해들은 야오베이나의 아버지는 즉각 “딸의 의견을 존중해 지금 시점에서 이런 종류의 기금회 조직도 원치 않는다”며 기금회 발기안 철회를 선언했습니다. 야오 의사는 이런 의혹들을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론의 추이를 봐야겠지만, 이번 시신 도촬 사건에 대한 당국의 진상 조사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보도해드린 수술실 인증샷 사건에 대해서도 당국이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 해당 병원과 의료진을 징계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문처럼 의료진과 언론사가 특종과 개인의 사욕을 주고 받으며 망자의 죽음을 욕되게 한 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언론의 취재윤리와 의료진의 의료 윤리에 대한 거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는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중국 언론의 비정상적인 취재 관행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알려 준 것만 쓰고 그 외에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관변 보도 관행에 익숙해진 중국 언론들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자유로운 취재영역이 바로 연예계 뉴스입니다. 일종의 숨 쉴 구멍인 겁니다. 그래서인지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가십과 관련해 지나칠 정도로 선정적인 보도 경쟁을 하는 게 중국 언론들의 현 주소입니다. 그런 배경 아래 이번 시신 도촬 사건까지 일어났다는 설명입니다. 우리 언론도 이번 일을 타산지석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더욱 경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듯 싶습니다. 끝으로 망자의 영전에 다시금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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