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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인 아내가 시장에서 폭행당했습니다"

[취재파일] "일본인 아내가 시장에서 폭행당했습니다"
 얼마전 저에게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남편'이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기가막힌 사연이었습니다. 바로 부부를 만나봤습니다. 5평 남짓한 아주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30대 부부였습니다. (신원보호를 위해 무슨 가게인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가 얼마 전 당한 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아내 폭행

● 전통시장 좋아하던 일본인 아내
 부부는 9년 전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한국인, 부인은 일본인입니다. 국경을 넘은 사랑으로 한국에 터를 잡았고, 친정인 일본은 1년에 한번 꼴로 방문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생활은 넉넉지않았지만, 금슬만큼은 대단히 좋은 부부였습니다. 부인은 한국에 처음 왔을때부터 전통시장 둘러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특히 부부가 가게를 갖게 된 후부터는 전통시장을 더 자주 다닌답니다. 사건도 전통시장에서 시작됐습니다.

 2014년, 크리스마스를 열흘 정도 남긴 어느 날, 일본인 아내는 또 혼자 서울의 한 전통시장을 찾아 구경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품으로 온통 꾸며놓은 가게앞에 멈춰섰습니다. 화려한 가게, 특히나 '줄타는 산타'인형이 맘에 쏙 들었답니다. 빨간 옷을 입은 산타 인형에 모터가 달려서 줄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장식품입니다.

"이거 하나 주세요."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줄타는 산타 인형을 상자째 받아왔습니다. 기분 좋은 쇼핑, 그런데 집에 와서 산타 인형 상자를 열어보곤 좋았던 기분이 온통 깨졌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줄을 탄 건지 하얀 산타 가운데 부분이 줄 모양을 따라 시커멓게 때가 타 있었고, 산타 옷도 헤지고 지저분했습니다. 게다가 아예 모터도 고장이 나서 줄을 타기는 커녕 주르륵 바닥으로 떨어지더랍니다. 한숨쉬고 실망했지만, 고작 1만 원짜리 인형. 그냥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일본인 아내 폭행
일본인 아내 폭행

● 아내에게 욕설 퍼붓는 상인
 1주일 뒤인 12월 23일. 사건은 이 날 벌어졌습니다. 마침 또 다시 그 시장을 찾을 일이 생긴 일본인 아내, 됐다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인형을 환불받아 오겠다고 했습니다. 1만원이 아까워서라기보다, 마침 갈 일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혹시 자신이 일본인이라서 일부러 이런 바가지를 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기분도 나빴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시 전통시장을 찾은 아내는 그 트리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제품을 보여주며, 또 다시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말했습니다. "환불해 주세요." 하지만 가게 측은 거절했습니다. '교환'은 되지만 '환불'은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부부도 크리스마스에 가게를 장식하려고 산 인형인데, 벌써 12월 23일이 된 시점에 굳이 교환할 필요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차 환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분위기가 험악해 졌습니다. '여기서 샀다는 증거 있느냐', '영수증을 가져와라' 이런 저런 이유로 환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한국어가 서툴던 아내는 자신의 말이 잘 안통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전화를 걸었습니다. 남편과 연결이 된 전화를 사장에게 내밀며 얘기했습니다. "우리 남편과 얘기 좀 해 보세요." 

 시장에 환불을 하러 간 아내가 못내 걱정스러웠던 남편, 부인에게서 온 전화를 받아들었습니다. 가게 사장에게 '남편 전화 좀 받아보라'고 요구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 바닥에 집어던지는 소리가 '탁'하고 들려왔습니다. 곧바로 "그걸 던지면 어떻게 합니까!"하는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귀를 의심케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가게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의 고함이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습니다. 너무나 심한 욕설이었습니다.
일본인 아내 폭행

● 서툰 발음으로 항의..무차별 폭행
 아내는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솔직히 그런 욕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뜻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어안이 벙벙해 서있는 아내, 욕설을 하는 가게 사장, 마침 그 때 또 다른 손님이 트리를 보겠다며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화가났던 아내는 욱하는 마음에 가게로 들어온 할머니 손님에게 "이 가게에서 물건 사지 마세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상인이 주먹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친 겁니다. 몸이 휘청했다고 합니다. 연이어 발이 날아왔습니다.

가게 사장은 머리를 맞고 휘청하는 일본인 아내의 허리를 연달아 두 차례 걷어 찼습니다. 부인은 그때부터 기억이 잘 안난다고 합니다. 기절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나 갑작스러운 폭행에 두렵고 당황해 주변 소리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한가지 기억 하는 건, 주변 상인 그 누구도 이 폭행 현장을 보고 말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단 한 사람, 어떤 할머니의 목소리만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딸같은 여자를 그렇게 때리면 어떡하냐고, 그만 하라고 말리던 건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할머니 딱 한분 뿐이었다는 겁니다. 마침 시장을 순찰하던 의경이 현장을 보고 달려와 사장을 말렸고, 근처 지구대에서 출동하면서 폭행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주변 상인들은 폭행을 당해 주저앉아있는 일본인 아내에게 "경찰 신고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일 크게 만들어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일본인 아내 폭행

 가게 주인의 욕설을 전화기 너머로 듣고 피가 거꾸로 솟았던 남편, 이때 쯤 시장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경찰들이 서 있고,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고, 아내는 주저앉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곤 가슴이 무너지는것 같았답니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너무나 화가 났지만 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경찰서로 갔고, 이 때 까지도 가게 사장은 당당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먼저 "경찰서로 가자"며 앞장서서 가더랍니다. 경찰서에 가서는 줄곧 '업무방해'를 주장했다고 합니다.

부부는 본인들이 당한 이야기만 하고 돌아와서 뒤의 조사 과정은 모르겠다고 합니다. 추후 폭행을 한 가게 사장으로부터, 또 상가연합회 측으로 부터 사과하고싶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현재 아내의 상처가 너무 크고, 상실감도 너무 커서 합의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이 상인은 현재 폭행죄로 검찰에 송치가 된 상태지만, 단순폭행이기 때문에 벌금형 정도가 예상됩니다.

 일본인 아내는 사건이 일어나고 벌써 몇 주가 지났지만 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 비슷한 증상이 아닐까 의심됩니다. 밤에 잠을 못자서 사건 직후 3일만에 3Kg이 빠졌고,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고 합니다. 9년간 한번의 불만도 없이 잘 지내던 한국, 얼마 전에는 남편에게 "제 3국에 가서 살자"고 상의한 적도 있습니다.
일본인 아내 폭행

 저는 해당 상인도 만나봤습니다. 상인은 오히려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분명 일본인 여성이 먼저 영업방해를 했다는 겁니다. 상인이라면, 요즘같은 불경기에 장사도 안되는데, 크리스마스 특수는 반짝인데, 잘 오지도 않는 손님을 쫓아내는 걸 보고 그 어떤 상인이 가만 있겠느냐고 항변합니다. 그저 욱하는 마음에 우발적으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폭행이란 표현도 너무 과하다고 얘기합니다.

저리 가라며 주먹으로 얼굴을 '밀고', 발로 엉덩이를 '밀었을' 뿐, 피도 안났고 멍도 안들어는데 일방적으로 폭행으로 몰고가 억울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실수한 점은 인정합니다. 어찌됐든 손님인데, 자신이 참지 못한 부분이 있고 그래서 상인연합회로부터 5일간 영업정지까지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사과할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인 아내 폭행

 남편은 그저 미안하답니다. 한국에 시집와 넉넉하게 살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키는데,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 너무 미안하고 한 편으로는 너무 창피하다고 합니다. 부부는 아마도 이번 일이, 당초 불량품을 판매한 것부터 후의 상식 밖의 폭행까지, 모두 아내가 외국인이기에 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이었어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했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겪었던 일화 하나를 얘기해 주었습니다.

 부부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때는 한국말이 더 서툴랐답니다. 아내 혼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실수로 열쇠를 떨어트렸답니다. 당시 버스엔 손님이 없었고, 도로도 한적해 버스는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내려야 할 정류장이 가까워져 버스를 좀 세워달라 부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툰 말투를 들은 기사는 버스를 세워주기는 커녕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디서 왔어?", "왜 그래?" 하면서 말이죠. 발만 동동 구르며 버스 좀 세워달라는 아내를 놀리던 버스 기사는 결국 그대로 종점까지 갔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아내는 열쇠를 주울 수 있었고, 결국 남편이 종점까지 아내를 데리러 오고서야 일이 해결됐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이 있기에 부부는 이번 시장에서의 사건도 결국 아내가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이기에 당해야 했던 일이라고 믿게 된 것이죠.

 저희 취재진은 실제로 전통시장 구경을 즐긴다는 중국인 유학생을 시장에서 만났습니다. 한국말 발음이 서툰 이 학생을 따라다녀봤습니다. 마찬가지로 물건을 환불을 해달라고 하자 대뜸 반말이 날아오더군요. "돈 내달라고? 아이고 이것들이 그렇게 있는대로 골라가더니"와 같이요. 하지만 한국인이 얘기를 하면 환불해주고 안해주고를 떠나 적어도 말투는 사뭇 다릅니다. 존댓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이런 차별은 아시아계 외국인에게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한 상인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유럽이나 서양인들은 쇼핑에 매너가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동남아 같은 아시아계는 자꾸 물건을 깎아달라고해서 와도 반갑지도 않다"라고 자신의 느낌을 말했습니다. 물론 누구나 경험이 있고 느낌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반가워 할수도, 반가워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이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당사자에게 그 반갑지 않음을 아무 여과없이 표현해내는 것, 그 행동이 문제인 것이지요. 그래도 고객인데 말이죠.

 저희는 이번 보도를 하면서 반드시 이 점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사건이 전통시장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전통시장 얘기를 한 것일 뿐, 결코 모든 전통시장의 상인이 이렇지 않다는 얘기 말입니다. 아마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 전통시장부터 둘러보는 이유도 이런 상식 밖의 상인보다는, 친절한 상인들이 더 많기 때문이겠지요.

 저희와 인터뷰를 한 일본인 부부는 이 말을 꼭 하고싶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보도로 해당 전통시장이 타격을 보는 것은 결코 원치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아내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짜 진짜 일부에요. 한국 사람들 좋은 사람들 진짜 많아요. 지금까지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정말 정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2015년 현재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건 많이도 아닌, 아주 조금의 배려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인 아내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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