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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징역 10년형 범털 "감옥이 뭐예요?"

[월드리포트] 징역 10년형 범털 "감옥이 뭐예요?"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발전은 눈부십니다. 하지만 사법 체제만큼은 한숨이 나옵니다.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방과는 체계나 작동 방식이 다릅니다. 바로 비교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숱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아니 중국 스스로 지적합니다.

중국 공산당은 사법 분야 역시 지도 감독합니다. 그러다보니 주로 당 간부들이 차지하는 정관계나 경제계 고위층을 사법 기관이 제대로 감시하거나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당이 자체적으로 부패를 적발하고 사법처리를 요구하기 전에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민사 소송에서도 이런 고위층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관련 실상은 이미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인사'에 시달리는 中 판사…의법치국 멀고도 험한 길)

그런데 알고 보니 사법 분야 가운데도 가장 부패가 심각한 곳은 교정 기관과 제도였습니다. 무늬만 '처벌'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패 관리에 징역 5년, 10년씩 중형을 선고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 최고 검찰원이 지난해 1년 동안 감외집행 처분에 대해 집중적인 감찰 활동을 벌였습니다. 감외집행 처분은 우리나라의 형집행정지와 보호 관찰을 합해 놓은 것과 같은 중국 특유의 교정 제도입니다. 수형 생활을 하기 힘들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 교도소에서 나와 자택이나 병원에서 치료와 요양을 하도록 허락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의 형집행정지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수형기관 밖에서 지낸 시간은 수형 생활을 한 기간에 산입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징역 3년형을 받은 수형자가 1년 동안 교도소에서 생활하다 형집행정지로 2년 동안 병원에 있었을 경우 병이 호전되면 다시 교도소에서 2년 더 지내야 합니다. 반면 중국의 감외집행 처분은 병원에 있던 2년도 수형 생활로 인정합니다. 앞서 든 예의 경우 만기 석방됩니다.

감외집행 처분 대상자는 관할 공안기관에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받고 이동이나 생활에 일정한 제한을 받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의 보호 관찰과 비슷합니다. 검찰원의 감찰 결과 이렇게 감외집행 처분을 받은 대상자 가운데 무려 8백여 명이 요건에 맞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재수감됐습니다. 쉽게 말해 수형 생활을 하는데 아무 문제없는 범법자들이 교도소 대신 자기 집이나 병원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부적합한 감외집행 처분자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범털'이었습니다. 즉 정관계, 경제계의 고위층으로 부패 관련 범죄로 징역형을 받은 인사들입니다.
교정 부패

중국 언론들이 소개한 사례를 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광둥성 장먼시 부시장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감옥은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선고 당일 진단서를 내고 감외집행 처분을 받아 집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산둥성 타이위안시의 서기는 징역 7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1년 만에 병을 이유로 교도소에서 나온 뒤 7년 연속 감외집행 처분을 받았습니다. 징역 7년의 장기형이 사실상 징역 1년 단기형으로 바뀌었습니다.

온광시 양수이현의 국토 국장은 징역 10년을 확정 판결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감외집행 처분으로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감찰 결과 산둥으로, 쓰촨으로 비행기 여행까지 즐겼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주거와 이동을 제한한 채 치료를 받도록 한다는 제도의 취지는 사라진 셈입니다.

전 광둥성 덴바이현 교육국장이 처해진 8년형은 징역이라는 말을 붙이기 무색합니다. 병을 핑계로 교도소에서 나온 뒤 8년 내내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거주지로 지정된 장소에 있었는지조차 불분명 합니다. 해당 지역 공안기관에 등록조차 돼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수감기관 측이 알아서 이들에게 특혜를 준 것은 아닙니다. 돈과 권력의 힘이 작용했습니다. 광둥 젠리바오 그룹 장웅성 회장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수감 기간 중에 교도소의 관련자 거의 모두에게 속칭 '약칠', 즉 뇌물을 건넸습니다. 그 대가로 감방을 옮기고, 가짜 모범수로 선정되고, 두 차례 감형까지 받았습니다. 형기를 4년 넘게 남기고 가석방된 장 회장은 그대로 해외로 달아났습니다.

윈난성의 한 고위 관료 출신 '범털'은 다른 사람의 엑스레이 사진을 비싼 값에 샀습니다. 이를 근거로 이식 수술을 받는다고 속이고 감외집행을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전 장언시 부시장은 가족, 친지들이 교도소장과 교도원, 관할 의무소 의사, 의무과장에 골고루 돈을 뿌렸습니다. 건강한 몸이었지만 곧 숨질 중병자로 둔갑해 역시 교도소를 벗어났습니다.

랴오닝성 잉커우 교도소의 부원장 리모 등 3명은 이런 혜택을 내세워 장사를 했습니다. 감형과 가석방, 감외집행 처분 등에 손을 써주고 거액을 받아 챙겼습니다.

교정 부패
중국 검찰원과 인민법원은 이번 감찰을 계기로 대대적인 제도 정비에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우선 감외집행 요건의 기준을 대폭 높였습니다. 수형 생활을 계속할 경우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경우만 허가하기로 했습니다.

진단서를 발급해주는 의료진의 책임과 처벌도 강화했습니다. 이제까지 의료진의 판단과 재량을 폭넓게 허용했지만 기준을 보다 엄격하고 세밀하게 규정했습니다. 아울러 가짜 진단서를 발급할 경우의 처벌 조항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허술했던 감외집행의 관리, 감독 체계도 정비했습니다. 지금까지 감외집행 처분자를 따로 관리하는 대장도 없었습니다. 법원이 감외집행을 결정해 관할 공안 기관에 통보하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공안 기관이 제대로 통보를 접수받지 못하거나 누락하면 처분 대상자는 사실상 석방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따로 기한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한 번 감외집행 처분을 받으면 만기 석방될 때까지 쭉 교도소 밖에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법원도, 공안도, 아무도 책임지거나 관리하거나 감독하지 않는다." 한 법원 판사가 현지 언론에 털어놓은 말입니다.

이에 따라 사법부와 공안 기관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전산망을 만들었습니다. 처분 대상자를 더욱 면밀히 관리, 감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처분 결정 과정에 치료 기간을 예측해 기한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연장해야 할 경우 새로 심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칭화대학 법학원의 저우광첸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감외집행 처분을 누가, 무슨 사유로, 얼마나 받았는지 인터넷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밀실에서 돈과 권력으로 혜택을 사고팔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정 부패
그런데 말입니다. 중국의 황당한 교정 관리 실상을 보면서 저는 거꾸로 우리나라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중국은 자신의 병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정 제도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형을 선고 받더라도 돈과 권력으로 이를 얼마든지 가볍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감외집행 처분을 받고, 감형을 받고, 가석방을 받습니다. 이에 대한 일반인들은 분노는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법 앞의 평등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교화는 커녕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없어서입니다." 네이멍구자치주 인민법원장 마잉성 판사의 지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병이 병인 줄도 모릅니다. 정치인과 기업인의 가석방에 대해 많은 비판과 문제점 지적이 있지만 여전히 철만 되면 꿋꿋이 단행합니다.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운운하며 풀어줍니다.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으니 치료는 기대조차 못합니다.

"교화는 커녕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마 판사의 일성이 중국보다는 우리나라에 더 적합하다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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