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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슈틸리케호, '졸전' 하더라도 살아남아라

[이은혜의 풋볼프리즘] 슈틸리케호, '졸전' 하더라도 살아남아라
두 경기만에 원점이다. '선수 감기도 관리 못 한다'는 여론이 축구협회의 안이한 처사에까지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사이 한국 축구는 하루 아침에 제 자리로 돌아온 듯 하다. 슈틸리케호 출범 이후 급속도로 상승하던 지지도에도 상당한 타격이 가해졌다.

생각해보면 아시안컵은 토너먼트 대회다. 공도 둥글다. 오는 17일 오후 6시 열리는 한국과 호주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결과를 아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눈 가리고 아옹한들, 우리 대표팀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여기 한국에나 저기 호주에나, 그리 많지는 않을 듯 하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 대표팀은 '막강한 우승후보'였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조별예선부터 '충격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경우가 아니다. (2연승 중이긴 하다.) 대회 개막 전에 한국을 우승후보로 거론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개최국 호주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은 "한국이 아시아의 강호이기에 4강에는 들것"이라 내다보면서도 "우승은 호주, 일본, 이란이 다툴 것"이라 전망했다.

55년 만의 아시아 정상탈환은 우리의 '목표'였지 '실력'은 아니다. 당연히 설령 대표팀이 우승하지 못한다고 해도 전국민이 망연자실할 일은 아니다. 물론 슈틸리케 감독이 FIFA랭킹 69위 대표팀의 사령탑으로서, FIFA랭킹 125위를 상대로 졸전을 펼친 것은 책임을 통감해 마땅하다. 하지만 우승을 할 수 없는 것에 심각할 정도의 압박을 느낄 이유는 없다.

누구보다 축구 팬들은 한국 축구가 지금 새 출발선에 서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02 월드컵 이후 10년 넘게 똑같은 과오를 반복해 왔던 축구협회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한 협회에 박수를 보냈고 신임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럼 더 조금 더 '현실적인' 아시안컵의 목표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호주전에서 비기거나 패할 경우, 우리 대표팀은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게 된다. (아마도 그럴 듯 하다.) 그러면 우리의 8강 상대는 B조 1위가 될텐데, 약체로 예상됐던 중국이 1차전에서 사우디를 1-0으로 꺾으면서 B조는 혼전에 빠진 상태다. 그래도 B조 1위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팀은 우즈베키스탄(FIFA랭킹 71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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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에게는 아시안컵까지 4개월이라는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선수이기도 한 제파로프(성남 FC 소속)가 활약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오만에 1-0, 쿠웨이트에 1-0 그리고 호주전 (무승부 혹은 패배) 이후 우즈벡에까지 패한 뒤 귀국한다면? 이 시나리오는 슈틸리케 감독이 처음으로 치르는 토너먼트 대회에서 얻게 될 최악의 결과다. (다른 종목 팬들도 그렇겠지만, 축구팬들 역시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은 우리가 아시안컵 우승후보가 아니라는 점에 망연자실 할 때가 아니라 현실적인 목표, 즉 이번 아시안컵에서 반드시 얻고 돌아와야 할 최소한의 성과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차분히 생각할 때가 아닐까. 슈틸리케 감독은 반드시 8강 상대(가 누가 되든)를 잡고, 자신이 확신을 갖고 발탁한 대표 선수들의 기량을 소위 '한계'까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다.

아시안컵이 끝나면 당장 오는 6월부터 2018 러시아월드컵 1차 예선이 시작된다. 문제는 그전에 선수들을 소집해 전술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3월 A매치 데이 한 번 정도 뿐이라는 점이다. 이후에는 다시 감독과 코치진들이 선수 개인별 기량을 점검하다 월드컵 예선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지난 4개월 제대로 준비 못해 우승 놓쳤다고 아쉬워 하기보단 어떻게든 한 경기라도 살아남아서 전술을 활용해 보고, 선수들 간 호흡을 확인하고, 승패를 경험하는 편이 낫다. 그것이 이번 아시안컵에서 슈틸리케 감독과 대표팀이 2018 월드컵 진출을 위해 얻고 돌아와야 할 진짜 성과다. 설령 지금 당장은 뼈 아픈 졸전이더라도.

애초부터 호주 아시안컵은 우승하러 나간 대회가 아니다. 대표팀의 현실을 직시하고 새 출발선에 서기 위한 무대였다. 한국 축구가 정말 새로 태어나고 싶다면, 언제나 허울뿐인 '아시아의 호랑이' 같은 타이틀은 우리 스스로가 그만 내려 놓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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