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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화재 현장에서 빛난 의인들

[취재파일] 화재 현장에서 빛난 의인들
2012년의 마지막 날, 경기도 고양시의 한 문구 공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2층 공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큰 불을 잡는 데만 3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진화 과정에서 20년 베테랑인 43살 김형성 소방장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갓 한 달 된 초임 소방관 두 명을 먼저 대피시키고 마지막에 나오려다 변을 당한 것입니다. 화재 현장에서 땀과 재와 눈물로 얼룩진 소방대원들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쉽게 잊혀 지지 않는 화재 현장이 또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있었던 경기도 군포의 대형 물류센터 화재입니다. 물류센터 규모가 축구장 5개를 합친 면적과 맞먹었습니다. 소방차 30여 대와 소방인력이 200명 넘게 투입됐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연기가 멀리까지 퍼져 새벽까지 인근 주민들이 호흡곤란을 호소했죠. 저 역시도 숨을 쉬기 어려워 화재 현장에 오래 머무르며 취재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은 제게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불은 모든 걸 무너뜨리고 일말의 기대나 희망도 검은 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화마(火魔). 불은 정말 마귀처럼 순식간에 눈앞의 모든 것을 태워 없앱니다. 그런 화재 현장에서 빛난 의인들이 있었습니다. 130명의 사상자를 낸 지난 10일 의정부 아파트 화재 현장이었습니다. 불의 두려움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불이라는 마귀에게서 사람들을 구해냈지요.
취파

간판 설치 일을 하는 51살 이승선 씨는 출근길에 불이 난 것을 봤습니다. 이 씨는 주저 없이 차를 돌려 화재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차에 있는 30m 길이의 밧줄을 꺼내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가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고층에 있는 주민들이 "아이가 있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 씨는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씨가 밧줄로 만든 매듭에 몸을 끼운 주민 10명은 모두 안전하게 건물을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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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건물의 옆 건물 관리소장인 염섭 씨도 불이 나자마자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오토바이에서 불이 난 것을 보고 소방서에 신고한 염 씨는 10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 한 집 한 집 사람들을 깨웠습니다. 62살의 나이에 건물 전체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버거웠지만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도 대피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세 번을 올라갔습니다. 염 씨는 "불이 난 순간 10층에 있는 아이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며 "새벽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또 건물을 올라갔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염 씨의 노력 덕분에 이 건물에서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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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건물 8층에 살고 있던 진옥진 소방사도 13명의 주민을 대피시켰습니다. '비번' 근무자로 집에서 쉬고 있던 진 소방사는 비상벨 소리를 듣고 옥상으로 대피해 주민들을 옆 건물로 이동시켰습니다. 아찔한 높이의 옥상에 걸터 앉아 "아래는 보지 말고 제 손만 잡으시고 건너면 된다"며 주민들을 안정시켜 대피시켰습니다. 다른 소방관들의 도움을 받아 건물을 탈출한 뒤에도 그는 병원에 가지 않고 사고 현장에 2시간을 더 머무르며 도움을 줬습니다. 지난해 5월 임용된 새내기 소방관인 그는 “화재 현장에서의 경험은 거의 없어 두렵기도 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3월 임관한 육군 1군단 공병대대 소속 25살 최준혁 소위도 불을 목격하고 진화부터 주민대피 유도까지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옥상을 건너는 주민들을 두 팔로 받아낸 의정부 시청 소속 공무원 신승진 씨의 사연도 뒤늦게 알려졌지요. 다시 찾아간 화재 현장에서 인근의 요양원을 운영하는 한 여성이 제게 다가와 인터뷰를 자청했습니다. 불이 났을 당시 지구대 소속 경찰들이 18명의 노인들을 빠르게 병원으로 이송해줬는데 병원에서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돈을 받겠느냐며 무료로 병실과 식사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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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맞서기는 정말 두려웠을 것입니다. 시뻘건 불길과 계속 차오르는 연기에 어쩌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인간 완강기’가 돼 사람들을 구조한 이승선 씨는 “제대로 밧줄 한 번 다뤄보지 않은 젊은 여성들이 나를 믿고 차분하게 대처해서 잘 살아났기 때문에 오히려 구조된 사람들을 더 칭찬하고 싶다”며 의로운 것은 본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 밧줄 들고 화재 현장에 뛰어든 의인…'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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