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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동명이인 헷갈려"…특별하지 않은 특별감찰관

[취재파일] "동명이인 헷갈려"…특별하지 않은 특별감찰관
● "특별감찰관 통과되면 실세 논란 없어질 것"…대통령의 열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초반부터 기자들의 질문이 집중된 건 비선실세 논란이었습니다. 대통령의 답변은 억울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대통령의 곁을 떠난 정윤회 씨는 국정의 근처에도 온 적이 없기 때문에 실세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중의 기억에서 흐릿해진 자신의 공약을 상기시켜줬습니다. 바로 특별감찰관제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정권에서 친인척이나 측근들의 권력 남용 문제가 터져 나오는 걸 보면서 이번 정부에서는 저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싶어 공약을 내걸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특별감찰관제가 시행되면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가 일어나기 어려울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 7개월째 감감 무소식…또 무산된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

특별감찰관법이 통과된 것이 지난해 6월이니까 7개월째 특별감찰관은 임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감찰관은 국회에서 3명의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 가운데 1명을 임명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후보자 3명을 확정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번 국회 본회의에서는 후보자 추천이 마무리 될 거라는 기대감도 높았지만, 결국 이번에도 특별감찰관 후보자 추천은 무산됐습니다.
그래픽_국회여야
● 與 동명이인 공격하고, 野 그런가보다 수용하고

여야 모두 한 명씩 후보자를 낙점하기는 했습니다. 여당 몫으로는 이석수 변호사, 야당 몫으로는 임수빈 변호사를 결정했습니다. 남은 한 명이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대한변협의 추천을 받은 이광수 변호사가 물망에 올랐습니다. 이 변호사는 대한변협에서 법제위원을 지냈고,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에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문재인 의원이 대선 후보 당시 지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겁니다. 특정 정파에 가깝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후보자 명단에서 빼야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이 얘기를 듣고 즉각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여당의 주장을 수용했습니다. 노명선 성균관대 교수를 새로 후보자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여야의 협상 과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 9일 새정치연합에서 여당이 문제 삼은 이광수 변호사가 그 이광수 변호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여당이 동명이인 이광수 변호사를 착각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겁니다. 그러자 새정치연합은 노명선 교수는 합의된 후보자가 아니라며 재검토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여야 모두 시간이 부족하다며 이번 국회 본회의에서는 특별감찰관을 추천을 하지 않는 걸로 정리 된 겁니다.

● 최초 문제 제기자는 오리무중…"그냥 인터넷 검색 실수"

엉뚱한 사람에 대해 문제제기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습니다. 협상의 실무를 담당했던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실에서는 어렴풋하게만 알지 누가 문제제기를 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원내행정실에서 실무를 챙겼다고만 설명했습니다. 다시 원내행정실에 물어봤더니 이쪽도 정확히 누가 확인을 했는지 자신들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행정실에서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까 그런 전력이 나와서 문제제기를 하게 된 거 같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실수를 한 거라는 얘깁니다.

억울하게 논란이 벌어진 이광수 변호사는 접촉하기 어려운 인물이 아닙니다. 변협에서 직함을 갖고 있었고, 현직 변호사기 때문에, 변협에 연락처를 물어보면 바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면서 새누리당에서는 당사자에게 누구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새정치연합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후보자에 대한 프로필만 제대로 숙지하고 있었어도 바로 받아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엉뚱한 사람을 가지고 공격한다고 면박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당의 헛발질을 그런가보다 받아들이고 다른 후보자를 고르고 있는 꼴이 됐습니다.

● 수사도 못하는 반쪽짜리 특별감찰관

특별감찰관 제도는 법안 논의 단계부터 반쪽짜리라는 논란이 컸습니다. 특별감찰관법은 1조에 대통령의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행위에 대한 감찰을 담당한다고 특별감찰관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인지 명시하지 않고, 감찰 대상을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장 국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청와대에서 비서관급 인사나 행정관들은 빠집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국회의원, 장차관도 들어간다고 볼 수 있지만 이들도 감찰 대상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게다가 특별감찰관은 수사권이 없어 영장 청구도 하지 못합니다. 주변 조사를 해서 비위가 의심되면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권력형 비리가 의심되면 계좌를 뒤지고,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조회하고, 혐의가 중하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건 수사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특별감찰관은 이런 강제 수사를 하는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국회에서 처음부터 반쪽짜리 특별감찰관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살 수 있는 부분입니다.

● 특별하지 않는 특별감찰관, 정말 중요하면 동명이인 헷갈릴까

이번 사태는 국회가 특별감찰관에 대해서 얼마나 무관심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당 지도부가 매일 챙기는 주요 이슈였다면 이렇게 엉성한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법은 만들어놨으니 대충 후보자를 선정해서 임명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특별감찰관 제도는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라는 한국 정치의 흑역사를 막아보자는 반성에서 출발한 겁니다. 국회가 이런 불행한 역사를 막아보겠다는 의지가 정말 있다면, 후보자 선정을 제대로 하는 것은 물론, 수사조차 못하는 특별감찰관의 직무 활동 범위를 넓히는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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