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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추운 게 이제 습관이 돼서…" 냉골 할아버지의 혹독한 겨울

[눈사람] "추운 게 이제 습관이 돼서…" 냉골 할아버지의 혹독한 겨울
<SBS 뉴스는 여러분의 조그만 정성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전하는 ‘눈사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보시고 기부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정성껏 전하겠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 살고 계신 '냉골 할아버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서울 성동구의 아파트촌 바로 옆에 작은 골목길이 있습니다. 그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아주 오래된, 낡은 나무 대문집이 나옵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봤습니다.

'끼이익~ 삐걱~ 삐거억~~'  조용한 찬 공기를 가르는 대문 소리....
"할아버지~~~ 집에 계세요~?" 할아버지를 불러봤습니다.


낮인데도 컴컴한 집 안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열 걸음 걸어 들어가니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굳게 닫혀 있고, 문 밖에 하얀 신발 한 켤레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습니다. 신발 뒤축이 꺾여진 상태로... 그런데 신발이 너무 낡고 먼지가 조금 쌓여 있어 '왠지 빈 집 같다'는 감이 왔습니다.

"선생님~ 할아버지~ 집에 계세요. SBS 이종훈입니다~~"

서너 차례 외쳤을까. 안에서 인기척이 나면서 방문이 열렸습니다.

"네…."

조금 초췌한 옷차림에 검정 털모자를 깊게 눌러쓰신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셨습니다. 할아버지 허락을 받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안은 더 컴컴했고, 냉기가 느껴졌습니다. 빈 손으로 가기 민망해 사가지고 간 라면 박스를 전해드리면서 여쭤봤습니다.

"할아버지, 점심 식사는 하셨어요?"
"점심은 도시락 배달이 와요"
"아, 그럼 저녁은 어떻게 드세요?"
"점심 때 반 먹고... 남겨 놨다 나머지 반은 저녁에 먹어요"


할아버지 방은 말 그대로 냉골이었습니다. 낮인데도 냉기가 느껴졌고 할아버지 입에선 입김이 나왔습니다.

"방이 좀 추워요. 물 떠다놓으면 겨울에 얼어, 방에서. 뜨신 물 떠다놓고 먹다 남으면 아침에, 새벽에 보면 꽝꽝 얼어있어. 그렇게 여기가 추워."
"이렇게 추운데 겨울은 어떻게 보내세요? 보일러는 없으세요?
"원래 기름 보일러가 있어. 바닥으로. 그런데 보일러가 터져버리니까 그걸 이제는 포기해 버린 거야. 돈도 없고…."
"보일러 고장난 지는 얼마 되셨어요?"
"한 18년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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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처음엔 잘 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18년 동안 보일러 없이 이 추운 냉골에서 겨울을 보냈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았으니까요

"정부에서 겨울 따뜻하게 보내시라고 등유도 좀 주고 그러던데요, 할아버지~"
"보일러가 고장났는데 기름은 받아서 뭐해? 쓰지도 못 할 거…몇 번 전화 오긴 왔는데 필요 없다 했어~"


할아버지 방엔 이불을 펴놨는데 7겹이나 됐습니다. 두꺼운 이불 아래엔 전기 장판이 있었습니다. 추우면 두꺼운 이불 속에 들어가 온몸을 떨며 겨울을 보내왔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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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불 두껍게 덮고 자는 거야. 얘가 다섯 겹, 여섯 겹…일곱 겹 그럴 거야. 안에 또 하나 있어. 전기장판 있긴 한데 워낙 공기가 차가우니까 해도 바닥만 조금 뜨시지 뭐…그러니까 잠을 저녁 때 2시간 정도, 2시간 이상은 못 자…잠이 안 오니까…."

올해 86살. 한 달에 20만 원으로 생활하시는 할아버지는 전기료 때문에 전기장판도 잘 못 튼다고 하셨습니다.

"20만 원 받는데 그거 받아봐야 공과금 내고 나 약 사다먹고 병원 가고 나면 쓸 게 별로 없어. 여름은 괜찮아, 여름은…겨울이 문제지. 추울 때가"

겨울에 가장 불편한 점은 뭔지, 우문을 던졌습니다.
 
"불편한 점? 그냥 추운 게 불편하지, 뭐 다른 게 뭐 있어? 추운 게 이제 습관이 돼서…그냥 이불을 두껍게 덮고 자는 거야…."

눈사람

 
할아버지는 이 집에서 50년 넘게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2시간 가까이 나눴을까요? 할아버지는 우리가 찾아와 반가우셨는지, 마치 오래된 지인에게 얘기하듯이 사적인 가정사를 스스럼 없이 들려주셨습니다. 할머니는 20여년 전에 집을 나가 가끔, 아주 가끔 연락이 온다는 말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실은 며칠 전 정말 오랜 만에 연락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러세요? 반가우셨겠네요. 할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편히 잘 있냐고 그래서 내가 '빨리 돌아오소, 이 사람아. 벌써 20년이 넘었네. 당신 80 넘었고 나도 80 넘었고 애지간하면 들어와….' 라고 말했지"
"그랬더니요?"
"전화가 끊겨 버렸어…지금 나간 지가 28년인가 29년 됐어. 나 혼자 산 지가 그렇게 됐어."


할아버지는 외로워 보였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제 얼굴을 만지시며 "허, 꼭 우리 막내 아들 같네…." 하실 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냥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름 보내 드릴까요?" 라고 묻는 구청직원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기름 필요 없어요" 라고 18년 동안 대답해 왔다고 했습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기름이 필요 없었던 게 아니고, 보일러가 고장나 기름을 줘도 사용할 수가 없으니 기름이 필요없다고 말해 온 건데, 담당 구청 직원은 이런 할아버지의 사정을 알고는 있었을까요? '벌이도 없으신 분이 왜 기름 지원을 안 받으시려 하지….' 하는 작은 의문이 들었다면 할아버지가 보일러도 없는 냉골에서 18년 동안 추운 겨울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가운 방에서 홀로 겨울을 보내야 한다는 것. 이제는 추운 게 습관이 됐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동안 우리가 너무 주변 이웃들에게 무관심 해 온 건 아닌지 자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뭔가 큰 도움을 주려 하기 보다는 따뜻하게 손 한 번 잡아주고 말 한마디 건네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냉골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깨닫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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