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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찌 그러셨나요" 무면허 뺑소니 차량에 스러진 '참 스승'

[취재파일] "어찌 그러셨나요" 무면허 뺑소니 차량에 스러진 '참 스승'
● 80 평생 아이들만 위해 살아온 교사…이런 선생님 또 없습니다

제가 만나고 온 선생님 자랑 좀 해보겠습니다. 임채승 선생님은 올해 연세가 여든이 되셨습니다. 자신이 교감으로 있던 서울 용문고등학교에서 퇴임하신 지는 17년이 되었군요. 깡 마른 체구지만 아이들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으셨다는 임 선생님. 재직 당시 학생들에게 '아버지'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이런 별명 갖는다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요, 이런 일화가 있었답니다. 젊은 시절 임 선생님이 몹시 아픈 적이 있다고 합니다.

출퇴근조차 힘들어지자 선생님은 휴직을 하는 대신 학교 앞에 자취방을 얻으셨답니다. 힘든 출퇴근길을 줄여서라도 아이들과 함께 하고자 함이었겠지요. 이렇게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부인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선생님은 아이들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임 선생님의 후배 교사는 이렇게 기억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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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 후배 교사 (35년 차 선생님)

"제가 85년도에 이 본교에 초임으로 왔는데 처음에 왔을 때 임 선생님은 중견 선배 선생님이셨어요. 굉장히 솔선수범해서 아이들 이끄셨고요. 청소 같은 것도, 사실 선생님들이 청소 안 하려고 하잖아요. 그분은 본인이 직접 청소도 애들하고 같이 하시고. 아이들 사이의 별명이 '아버지' 이런 식으로 불리었어요. 워낙 자상하시고 모든 면에서 친자식처럼 이끌어주시니까. 사실 그런 선생님들이 그렇게 많진 않잖아요. 저희 젊은 선생님들이 많이 따랐고 존경했고 했던 분이죠.

 제가 기억하기로는 임 선생님이 젊었을 때, 출퇴근 하는 길 좀 줄이려고 학교 앞에 조그만 방 하나 얻으셨어요. 집은 따로 있어서 사모님이랑 가족은 거기 있고요. 사모님이 이제 음식도 갖다주시고 그랬죠."


선생님은 재직 때부터 꾸준히 책을 써서 출판도 5~6권 됐는데, 그 가운데에는 참 특이한 책도 있다고 합니다. 본인이 초임교사로 와서 처음 받은 월급명세서부터 마지막 퇴임 직전 교감으로 받은 월급 명세서까지, 단 한 장도 빠지지 않고 모아서 그것을 그대로 책으로 출판을 하셨다는 군요. 매 월급 명세서마다 간단한 소회 등을 남겨서 말이지요. 그 정도로 청렴한, 한 마디로 아이들 밖에 모르는 선생님이셨다는 것이 후배 교사들의 기억입니다.

이런 임 선생님도 퇴임을 합니다. 1998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자비를 털어 매년 100만 원씩 자신이 재직했던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놨습니다. 자기는 관여 안 할테니 아무 곳에나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당부하셨다는군요. 학교는 이에 '임채승 장학금'이라는 이름을 붙여 매년 사정 어려운 아이들에게 장학금 수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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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셨나 봅니다. 5년 전 즈음엔 직접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며 자신이 교감으로 있던 학교의 '배움터지킴이'로 활동을 시작하셨다네요. '배움터지킴이'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학내에서 외부인이나 학교폭력 감시활동을 하는 임무를 합니다.

그런데 임 선생님은 이것에 만족 못하셨다고 합니다. 임 선생님이 지킴이로 있던 학교 앞에는 작은 골목길이 하나 있습니다. 몇 발자국 되지 않는 폭 좁은 골목길이어서 신호등도 없지만, 차량 통행량은 엄청나게 많은 곳입니다. 특히 아침 등굣길엔 마을버스까지 쉬지 않고 다녀서 정말 위험한 곳이더군요.

선생님은 이곳에서 교통봉사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아이들 안전하게 길 거너도록 안내해 주는 겁니다. 임 선생님은 항상 인도가 아닌 도로 한 가운데 서있었습니다. 신호등이 없는 곳이다 보니 아이들이 우르르 건널 때면 본인이 직접 차도에서 몸으로 차들을 막아가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너기를 도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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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4년 내내 이 고된 봉사를 하셨다는 겁니다. 심지어 학생들이 늦게 등교를 하는 개교기념일에도 임 선생님은 '혹시 일찍 오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며 이른 아침부터 나와계시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내기를 4년, 아이들은 물론, 동네 주민들, 그리고 이 길을 오가는 마을버스 기사님들까지 임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습니다. 이런 임 선생님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선생님들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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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형 / 배움터지킴이 담당 교사

"임 선생님은 굉장히 노령이시고, 사실 저같은 젊은 사람도 교통지도는 힘들어요. 특히 거기는 워낙 차도 많고 하다보니까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임 선생님은 참 겸손하신 분이셔서 아이들 지나다니는데도 자기가 이 학교 교감선생님이었다는 얘기를 단 한번도 안하세요. 그냥 묵묵히 아이들 건너게만 해 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아이들은 그냥 동네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윤기찬 / 후배 교사

"연세가 많으신데 꼭 교통지도를 하시겠느냐고 제가 물으니까, 선생님이 '봉사할 수 있다면은 죽을 때까지 하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 후안무치한 무면허 뺑소니…참 스승이 쓰러지다

근처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중학교 2학년이 된 지금까지, 아침 등굣길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있던 할아버지가 어느날 부터인가 갑자기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동안 거칠 것 없이 건너던 골목길도 이제는 건너려면 멈춰 서서 좌우를 몇 번씩 살펴야 합니다. 가끔 횡단보도까지 밀고 들어오는 차라도 만나면, 요리조리 차를 피해다녀야 합니다.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이제야 위험한 걸 알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디를 가신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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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아침, 임채승 선생님은 항상 서던 그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흰색 SUV 차량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건너고 있는 횡단보도를 향해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왔습니다. 임 선생님은 자기 옆으로 길을 건너고 있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 차를 피하지 않고 몸으로 막아섰습니다. 깡마른 선생님의 노구는 그대로 3~4m를 튕겨나갔습니다.

아이들은 놀랐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몰려들었습니다. 숨은 쉬고 계셨지만 눈을 뜨지 못하셨습니다. 한 여성이 다급하게 119를 불렀습니다. 선생님 머리 뒤로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또 다른 선생님은 경찰을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어쩔줄을 몰랐고, 선생님은 그렇게 쓰러지셨습니다.

선생님을 친 흰색 SUV 차량 안에는 사고를 낸 운전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행인들과 학생들이 쓰러진 선생님을 돌보고 신고를 하는 동안 운전자는 꼼짝도 않고 차에 앉아있었습니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선생님 한 분이 비로소 사고를 낸 운전자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제서야 차에서 내린 운전자. 50대 남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얼굴을 방금 전까지 술을 마신 듯 벌개있고 입에선 술냄새가 심하게 났습니다. 그렇게 멀뚱멀뚱 서서 계속 자기가 낸 사고를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경찰이 도착했습니다. 사고 경위를 한참 설명하던 목격자들, 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르켰습니다. " 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 서 있던 사고 운전자가 없어졌습니다. 어디를 갔는지 사라졌습니다. 경찰이 출동해 피해자를 살피는 그 짧은 순간, 혼잡한 틈을 타 도망을 간 겁니다. 차만 버려두고요.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은 알고보니 음주운전으로 이미 면허가 취소 된 무면허자였습니다. 경찰이 집을 찾아냈지만, 경찰이 방문했을 때 사고운전자는 문을 걸어잠그고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몇시간 뒤 자기 발로 자수를 했습니다. 이 때까지도 사고 운전자에게선 술 냄새가 났습니다. 음주운전이 확실해보이는 상황.

하지만 사고 운전자는 결코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나는 이 술 냄새는, 사람을 치었다는 생각에 괴로워서 경찰서 나오기 직전에 마신 술이라는 게 사고 운전자의 주장입니다. 안타깝게도, 사고 현장에서 음주 측정을 하지 못했기에, 음주운전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뇌가 크게 다치고 갈비뼈도 많이 부러진 상황. 너무 고령이라 수술을 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뇌수술까지 받은 선생님은 몇날 며칠을 중환자실에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사고 운전자는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뺑소니와 무면허, 그리고 사람을 치고도 구호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혐의였습니다. 피해자와 합의를 봐야하는데, 사고 운전자는 합의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무면허 운전자이다보니 보험처리도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 큰 사고를 내 놓고 피해자 병원을 찾아가기는 커녕, 사과의 말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배째라'였습니다. 한 달 넘게 구속도 되지 않는 사고 운전자를 보던 동료 선생님들은 결국 구속이 되게 해달라며 탄원서까지 제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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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찬 / 후배 교사 (사고 당시 경찰 신고)

"사고 차량이 개인 차도 아니고, 무면허 상태에서 또 운전을 하고, 또 뺑소니 하고.. 그런 상황을 제가 현장에서 지켜봤을 때 그게 너무 너무 후안무치한거야. 그래서 제가 경찰서에서 직접 물어봤더니 사고 운전자가 집행유예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임 선생님은 어떻게 합니까? 지금 교육청에서도 그 분의 수고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어요.

이러는 사이 임 선생님은 몇 번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어느정도 회복을 하셔서 일방병실로 옮겼습니다. 눈도 뜨고 소리도 들리지만, 뇌 수술을 한 탓에 말도 하지 못하시고 거동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 선생님의 부인은 간병인들과 함께 하루 종일 임 선생님을 간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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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운전자는 사고 두 달여만인 12월 결국 구속이 됐습니다. 그 전까지 자신은 구속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걸까요? 구속이 결정 되자, 그제서야 갑자기 합의를 하겠다며, 직접도 아닌 자신의 친구를 임 선생님 병실로 보냈습니다. 사고 두 달이 넘은 시점에서 말입니다. 친구는 병실에 찾아와 '아직까지 이런 일이 있었던 걸 몰랐다'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사과 한 번 없는 태도에 합의는 불발됐고 사고 운전자는 검찰에 송치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시 음주운전을 한 사실이 소명이 됐더라면 죄가 더 중해졌겠지만, 현재는 무면허와 뺑소니 부분에 대해서만 혐의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리 넉넉하지만은 않은 임 선생님의 사정을 아는 학교 선생님들은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성금을 걷어 임 선생님께 전달했습니다. 극구 거부하시는 임선생님 가족분들 탓에 전달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 선생님의 부인께서는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도 한사코 부끄럽다고 하셨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인데 방송에까지 나서는 것이 창피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픈 마음을 숨길수는 없겠죠. 사고가 나기 며칠 전, 아침 일찍 집에서 나가시는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들려주셨습니다.

임채승 선생님 부인

"매일 아침에 일찍 나가시니까. 6시 30분이면 여지 없이 집에서 나가시니까, 이제 교통지도 그만 해도 되지않느냐고 제가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냥, 그냥 올해까지만 할게.' 그냥 그러고 마시더라고요. 우리 할아버지가 워낙 애들을 사랑하시니까. 저도 이해했죠."


언제 끝날지 모를 사투를 병상에서 보내고 계시는 임채승 선생님. 빠른 쾌유를 빕니다. 


▶ 아이들 덮치는 차 막으려다…뺑소니에 쓰러진 '참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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