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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손님은 왕" 갑질 폭군의 씁쓸한 뒷모습

[취재파일] "손님은 왕" 갑질 폭군의 씁쓸한 뒷모습
"손님은 왕"이라죠. 서비스 업계의 불문율입니다. 돈 쓰는 사람이 왕인 시대입니다. 어느 한 폭군이 자신의 위엄과 지위를 지키려 분투하는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 "지금 VIP 고객한테 이 XX이야? 몇 억씩 쓴 사람한테?"

그녀는 비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도, 기세도 비범했습니다.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흥분한 그녀를 진정시키고 밖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혈통을 강조했습니다. "내가 그만한 집안이 있기 때문에 소리지른 거야! 확, XX놈아." 그녀가 실제로 어떤 집안의 사람인지, 어떤 권력자와 연이 닿아 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난 여기 안 다녀. 원래 다른 백화점 다녔었어. 근데 000 씨 때문에 다닌 거거든? 선생님 집안이 000 대통령 동기동창, 높은 정권! 그 정도 말했으면 됐잖아!"

여느 백화점들에서는 VIP 고객들이 다른 지점으로 옮길까봐 노심초사한다고 합니다. 그런 약점을 노린 회심의 선언이었습니다.

"너 가만히 있어. 얘부터 같이 가요. 내가 (다른)00마트로 옮긴다고 그랬어요. 너무 불친절해서." 

사실 손님의 권위는 소비력에서 나옵니다. 그녀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VIP고객한테 이 XX XX이야? 몇 억씩 쓴 사람한테?"

"나 오늘 기도회 가야되는데. 8시에 XX XX교회. 아 열받아 진짜."


한 때는 왕권의 정당성을 신에게서부터 구하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외로운 폭군은 결국 경찰에 폭행 혐의로 입건됐습니다. 아무리 손님이 왕이라지만 누군가를 때렸다면, 벌을 받게 돼 있습니다. 

● 분노의 시작은 휴대전화? 

어쩌다가 저 손님은 사람들을 때리고 겁주는 '폭군'으로 돌변한 걸가요? 경찰의 조사와 마트 측의 설명에 따르면, 발단은 얼마 전 마트에서 구입한 휴대전화였습니다. 

매장 관리 담당자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핸드폰을 구매하셨다고 하는데, 열이 나고 기기가 작동이 안 된다고 해서..." 핸드폰의 성능이 문제였던 겁니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고객님한테 가까운 AS센터에 가셔서 점검을 받으셔야 된다, 거기서 받으셔야 된다 그랬더니 그냥 무조건 바꿔달라, 해지해달라 이렇게 말씀하셔서요. 말이 전혀 통하질 않아가지고 그런 상황에서 벌어졌던 겁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무리한 요구였습니다. 이미 가입한 휴대전화와 같은 제품의 결함은 제조사가 운영하는 서비스 센터에서 해결하는 것이 절차에 맞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그녀는 꽤 오랜 시간 그 이마트를 돌아다녔습니다. 매장 측도 그녀가 매장 내 우편물 수발실에서 배송료가 너무 비싸다며 심한 '컴플레인'을 하자 그때부터 보안 업체에 연락했다고 합니다. 매장 측은 그녀의 무리한 '컴플레인'이 계속 이어지자, 다른 고객의 안전을 위해서 규정에 따라 경찰을 부르고 보안요원을 통해 퇴점조치를 시켰다고 말합니다.

경찰은 여성이 입건된 뒤에도 경찰서에서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난동을 부렸다고 전했습니다. "조사 중에도 히스테리가 좀 심했어요." 여성이 단순히 휴대전화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감정적으로 흥분해 있었던 상황임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마트녀 갑질 캡쳐_

● 실제로 그녀는 VIP였나?

대형 마트에도 VIP 제도를 운영할까요? 공식 답변은 '아니다'였습니다. 직원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런 VIP는 없습니다. 우리 마트를 이용하면 다 우수 고객이죠."

"(구매액이 많은 고객들은 보통 관리를 하지 않나요?) 아, 그거는 확인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고객이 뭐 어떻게 VIP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시는 고객은 다 VIP 고객 아닐까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녀는 VIP일 리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녀가 VIP였다면 마트 측에서 경찰을 불렀을까요? 보안요원을 통해 퇴점조치 했을까요? 마트에서는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VIP 제도가 없다고 밝혔지만, 사실 경찰이 출동했다는 점에서부터 그것은 물어볼 필요가 없었던 질문입니다. 

● 몰락한 폭군의 뒷모습이 씁쓸한 이유

취재를 시작하면서, 내심 그녀가 진짜 우리 사회의 'VIP'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직업은 직무 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직업군 중 하나인 보건의료업 종사자였습니다. 그녀가 '갑질'을 한 것은 문제지만, 그녀가 진짜 '갑'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갑, 을, 병, 정...  무한히 이어지는 이 사회의 먹이사슬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을질'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에 갑질을 하면, 협력업체가 다른 하청업체에 소위 '을질'을 해댑니다. 영상에서 폭행을 당한 남자 보안요원, 아마 속이 많이 상했을 겁니다. 그 상한 속을 풀어줄 대체제가 돈 밖에 없다면, 결국 그 돈을 무기로 다른 곳에서 또 하나의 폭군으로 변모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갑질에 분노합니다. 우월한 지위를 독점한 '슈퍼갑'이 더럽고 치사하게 구는 경우, 사람들은 격렬하게 분노합니다. 가깝게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사례부터 넓게는 대기업의 횡포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한데 비해 알려지거나 처벌받는 경우가 드뭅니다. 

하지만 우리의 폭군은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VIP가 아니었고, 정말 훌륭한 집안과 높은 구매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몰락한 폭군의 뒷모습을 보는 제 마음이 개운치 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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