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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침략' 표현 빠진다면?…'무라야마 담화' 계승은 허구

일본 아베 총리의 말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그대로 드러내는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고이즈미식 정치를 이어받아 TV를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국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화법을 구사합니다. 그렇다고 '정치적' 화법마저 버린 것은 아닙니다. 중의원 해산을 결정하고 나서도,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라며 한동안 오리발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이런 아베 총리는 '민감한 외교 사안'에 대해서는 '외운 것'을 그대로 읊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일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화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라고 답한다든지 '한국은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말하든지 합니다. 한마디로 '입에 발린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입에 발린 말'이 하나 더 등장했습니다. 바로 '아베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 관한 것입니다. 아베 총리는 오는 8월 발표할 '아베 담화'의 역사 인식에 관한 질문에 "무라야마 담화를 포함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이어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스가 관방장관도 똑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아베 담화'의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앞으로 여러 번 더 들어야 할 '외운 표현'입니다. 그런데 과연 아베 정권이 외운 대로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100% 이어갈까요? 지금까지 아베 총리의 관련 발언을 보면 여전히 의구심을 거둘 수 없습니다.

●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이 1995년 태평양전쟁 패전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정부 담화가 '무라야마 담화'입니다.식민지 지배에 관한 일본의 가장 진일보한 사죄가 담겨 있습니다. 핵심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라는 원인 부분이 하나이고,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는 전쟁 결과에 대한 부분이 다른 하나입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그동안 전쟁의 결과에 대한 부분은 인정하고 반성했지만, 전쟁의 원인에 대한 부분은 '궤변', '회피', '무언급'으로 일관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아직 자신의 입으로  '침략 전쟁'이란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 우익은 태평양 전쟁이 '침략전쟁'이 아닌 '자위를 위한 전쟁'이라는 그릇된 신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라야마 캡쳐_50

● 아베, '침략' 부정 궤변…무라야마의 응수 (2013년 4월 23일)
 
2012년 12월 다시 권좌에 오른 아베 총리는 4개월 만인 2013년 4월 23일 국회에서 '아베 본색'을 드러내며 한국과 중국의 복장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무라야마 담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침략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라며 무라야마 담화를 부인했습니다. 이런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무라야마 전 총리는 "무력으로 적국에 들어가면 그게 바로 침략"이라며 그 외 다른 표현은 없다."라고 질타했습니다.
아베 연합_500

● 오카다의 추궁…끝까지 '침략' 얼버무린 아베 (2014년 2월 1일)

일본 민주당의 강골 의원인 오카타 중의원이 아베 총리를 몰아붙였습니다. "식민지배와 침략을 국회에서 한 번도 확실히 답한 적이 없다"면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는 게 맞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부인한 적이 없다."라면서도 '태평양 전쟁은 침략전쟁'이란 말은 끝내 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국가와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오카다 의원이 4차례에 걸쳐 같은 질문을 했지만, 끝내 침략전쟁이란 단어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아베 총리는 '우익'이란 브랜드로 장기집권의 길을 튼 정치인입니다. 90년대 젊은 정치인 시절부터 왜곡 역사 교과서 출판에 앞장서는 등 줄곧 우익이란 외길을 걸어온 '뼛속까지 오른쪽'인 정치인입니다. 그런 만큼 아베 총리 입장에선 자신의 신념을 버려가며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란 사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만약 '아베 담화'에 침략전쟁, 식민 지배라는 표현이 들어간다면 아베 총리의 태도에 큰 변화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대신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수준이고 전쟁에 대한 반성만 언급한다면 그저 외운 것을 입에서 내뱉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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