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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임금 못 받은 농민공, 맴돌거나 죽거나

[월드리포트] 임금 못 받은 농민공, 맴돌거나 죽거나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로 일하러 갔습니다. 새벽 4시에 출근해서 밤 8시까지, 휴일도 거의 없이 중노동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보수가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달에 100만 원이 겨우 넘습니다. 그렇게 5개월 동안 피땀 흘려 번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후베이 샤오간 마을 주민 42명이 겪은 일입니다.

지난 2012년 4월 이 마을 주민 마오다오원과 왕밍즈는 한 인력회사로부터 일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 랴오닝성 번시시의 건축 현장에서 인테리어 일을 할 농민공을 모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농사만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마을 주민 40명이 두 사람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해 8월 공사가 마무리됐습니다. 42명에게 지급될 임금은 118만 위안, 우리 돈 약 2억 1천2백만 원쯤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력회사 측은 아직 정산이 끝나지 않았다며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10월 말이나 돼야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10월 말이 되자 인력회사는 연락을 끊어버렸습니다. 시공사를 찾아갔습니다. 밀린 임금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개발사로부터 돈을 받아야 줄 수 있다며 속된 말로 '배 째라'였습니다.

이때부터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700일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임금체불
마을 주민을 대표해 마오 씨와 왕 씨가 찾아다닌 국가 기관은 어림잡아도 8군데가 넘습니다. 번시시 노동감찰지부, 시 민원국, 시 정부, 번시시 산하 밍산구 정부, 구 공안분국, 구 민원국, 구 노동감찰지부, 랴오닝성 민원국. 이 기관들을 끝없는 도돌이표를 따라 수없이 맴돌아야 했습니다.

마오 씨의 말입니다. "시 노동감찰지부를 찾아갔습니다. 자신들은 직접 개입할 권한이 없다며 구 노동감찰지부를 찾아가라 했습니다. 구 노동부를 갔더니 시가 못하는 일을 자신들이 어떻게 하냐며 시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다시 시 노동부에 갔더니 이번에는 민원국을 찾아가라 했습니다. 민원국은 노동감찰부가 할 일인데 왜 자신들을 찾아왔냐고 떠넘겼습니다. 시 정부에 직접 호소도 하고, 구 민원국부터 절차를 밟으라는 요구를 따르기도 하고, 갑갑한 마음에 경찰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곳의 대답은 항상 같았습니다. 우리는 책임 부서가 아니다."

왕 씨의 말입니다. "마치 축구공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뻥, 저기에서 뻥, 차는 대로 우리는 기관을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가 갔던 모든 기관이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줄 수 있고 힘을 써줘야 합니다. 하지만 모두 떠넘기기만 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맷돌에 묶여 주변을 뱅뱅 도는 당나귀 신세가 됐습니다."

이들이 인테리어 작업을 했던 건물은 완공됐습니다. 모든 분양자가 입주를 끝마쳤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급여를 받을 기약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어느 행정 기관의 대기실에서 번호표를 뽑아든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후베이 주민 42명이 운수가 사나와 드문 일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베이징시 차오양먼 지하보도에 수십명의 노숙자가 나타났습니다. 산둥성, 허베이성, 허난성, 간쑤성 등지에서 온 80여 명의 농민공입니다. 이들은 차오양구의 한 건설 현장에서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건설사의 하도급업체는 자금이 없다는 이유로 임금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체불 임금은 우리 돈으로 3억 5천만 원이 넘습니다.

이들은 차오양구 민원국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관할 경찰서에 해당 업체를 고발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입니다. 엄동설한이 찾아왔지만 이들은 마냥 민원국 앞 지하보도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노숙 농성을 벌이게 된 셈입니다.

임금을 떼인 농민공들이 단체 행동에 나서기도 합니다. 해당 업체나 원청회사 앞에서 시위를 벌입니다. 그런데 공권력은 이들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질서를 헤치는 불순 세력이라며 쥐 잡듯 합니다.
임금체불
지난해 말 중국 사회를 요동치게 한 사진입니다. 47살 저우슈윈은 타이위안시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일한 여성 농민공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일한 급료 약 500만 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우 씨는 춘제(우리의 설)에 고향에 내려가겠다며 밀린 임금을 달라고 회사 측에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거부하고 오히려 보안요원을 동원해 저우 씨를 밀어내려 했습니다. 나중에 경찰까지 출동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대로 경찰은 저우 씨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1시간 뒤 저우 씨는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중국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받지 못한 임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 죽을 죄냐는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결국 경찰은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에 나섰습니다. 저우 씨를 폭행한 경찰관이 구속됐고 다른 한 명의 경찰관은 추가 체포됐습니다. 타이위안시 공안국장이 나서서 유가족에 사과했습니다. 공안 당국은 새해 첫날 공안대회를 열고 '자아비판'까지 진행했다고 합니다.

중국 농민공의 임금 체불 문제는 이맘때가 가장 시끄럽습니다. 대부분의 농민공이 다가오는 춘제에 밀린 임금을 받아 고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춘제를 앞두고 체불 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전국에서 터져 나옵니다.

그때마다 중국 정부는 임금 체불을 근절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 현재 모습이나 크게 변한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많은 농민공이 밀린 급료를 받기 위해 관련 국가 기관을 맴돌고, 한없이 기다리고, 그러다 시위라도 하면 흑감옥에 갇힙니다.

"농민공이 임금을 받아낼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임금 보증제를 만들어서 회사가 사람을 쓸 때 임금에 해당하는 돈을 보증기관에 맡기도록 강제하면 됩니다. 또는 임금을 체불한 기업에 대해서는 부도 처리에 가까운 경제 제재를 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농민공의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통합해 한 국가 기관이 전담하도록 정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기관끼리 서로 책임을 전가해서는 임금 체불은 절대 없어질 수 없습니다." 전문가의 제안입니다. 항상 답은 있습니다. 의지가 문제입니다. 그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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