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의 사소하게] "격려는 많았고 항의는 격렬했죠"…김성준 앵커 고별 인터뷰

이주형 기자 joolee@sbs.co.kr

작성 2014.12.31 10:30 수정 2017.02.14 19: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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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전 쯤 일입니다. 편집부 전입 동기인 후배 기자들과 함께 김성준 앵커와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SBS 8뉴스" 프로듀서로 일한 2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부서를 옮기기 직전이었습니다. 기분이 좀 묘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늘 함께 일하던 김성준 '선배' 가 아니라 김성준 '앵커'로 느껴져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서를 옮긴다고 얼굴을 안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쑥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메인뉴스 앵커란 함께 일하는 기자들한테도 그런 자리입니다)

# 김성준 앵커는 한마디로 방송사 보도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유능하고 능숙한 사람입니다. 언제 어떤 뉴스가 터져도 물 흐르듯 풀어내는 탁월한 생방송 능력과 연륜에서 배어나오는 다양한 시사 이슈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는 SBS 보도국의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어떤 술자리에서도 분위기를 맞춰 이야기를 풀어내 술맛을 돋우는 데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능력은 공, 사석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어서 이명박 대통령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김성준 앵커가 외국 순방 특별기내 대통령 앞에서 했다는 건배사 일화를 직접 들은 적이 있는데, 말주변이 부족한 저로서는 참으로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 김성준 앵커의 취미는 사진 찍기입니다. 사진은 잘 못 찍고 사진기만 좋아하는 저와 가끔 카메라를 소재를 이야기를 나눕니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뉴스 끝난 뒤 한잔하러 가는 김성준 앵커가 주재하는 술자리에서 거의 도망치는 -그래서 이제는 아예 부르지도 않는- 저로서는 김 앵커와 개인적인 대화를 하는 짧은 시간입니다. 그와 얘기하다보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아는 것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은지, 저렇게 인생이 잘 풀릴 수도 있는 건지...라는 질투를 해봄직도 했습니다만. 주변머리 없는 후배로서는 워낙 족탈불급인 선배인지라 그런 질투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 김성준 앵커가 그 기념사진을 찍은 뒤 한 달 만에 그만둘 줄은 몰랐습니다. 다시 한 달 전 사진 찍을 때처럼 약간은 어색한 느낌으로 마주 앉았습니다. 이번엔 인터뷰어로서 마주 않으니 어색한 느낌이 하나 더 얹혔다고나 할까요. 2년 여 시간을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한 후배기자이자 인터뷰어로서 보건대 -오히려 그래서 더 날카롭게 물어보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만- 김성준 앵커가 얼마나 속 얘기를 털어놓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김성준 앵커가 "SBS 8뉴스" 앵커로서 보낸 3년 9개월 동안 하려고 했던 뉴스가 무엇이었는가, 그 일단(一端)은 엿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취파
- 메인뉴스 앵커를 정확히 3년 9개월 하셨고요. 거의 4년의 기간인데 긴 기간이었나요, 짧은 기간이었나요?

= 에너지를 쏟아 부은 양으로 따지면 굉장히 긴 기간이었던 거 같고, 반면에 더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다, 라는 욕심에서 본다면 짧은 기간이었죠.

- 그 욕심이 어떤 욕심이셨습니까?

= 뉴스라는 게 항상 변하는 거니까 상황이 바뀌면서 새로운 메시지도 전달하고 싶고 뉴스도 좀 더 새로운 포맷으로 바꾸고 싶은 욕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꼭 그것을 “김성준 앵커가 있는 동안에 바꿔야 되느냐, 김성준 앵커 아니면 그걸 못하는 거냐?” 이렇게 묻는다면 할 말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뭐 그렇게 굳이 아쉬워 할 것도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해요.

-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에너지를 얼마나 쏟아 부었다고 생각하세요?

= 기자생활 24년 하면서 게으르게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SBS 8시 뉴스 3년 9개월을 하면서는 매일 뉴스가 끝나면 지쳤어요.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서 지쳤다기보다는 정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뉴스가 끝나면 매일 지쳤다는 느낌이 들고 그랬었죠.

-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 앵커 자리라는 건 사실은 모든 방송 기자들이 한때는 꿈꾸는 자리 아닙니까. 돌이켜 보면 지금 이 자리는 어떤 자리인 거 같습니까?

= 이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게 결정이 되고 나니 말도 느려지고 목도 안 쉬고 이렇게 되는 거 같아요. 사실 목 쉬고 눈이 충혈 됐던 첫날과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다가가는 오늘하고 비교를 해보면 앵커한테 가장 필요했던 게 자제력이고 겸손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앵커라는 자리에 앉는 순간 자기 스스로 굉장히 혜택을 받았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중심에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 뻐긴다기보다는 굉장한 책임감도 느끼게 되는데 그러면 언젠가는 오버를 하거든요. 정말 정의의 목소리로 세상의 나쁜 놈들을 다 물리쳐야 된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앵커는 기자들의 리포트를 가장 효과적으로 소개를 하고, 뉴스가 방송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수미쌍관하게 잘 연결이 될 수 있도록 리듬과 그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뭘 해야겠다, 내가 뭘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많은 문제가 생기는 거 같더라고요.

- 그런 생각을 해 오셨다는 이야기인가요?

= 해봤죠. 사실은 매일 해봤죠. 아시다시피 메인 앵커는 회사에서 여러 가지 지원이 나오잖아요. 양복도 비싼 돈 들여서 맞춰주고 앵커 방이 따로 있고, 후배들도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는 게 있고... 매일 저녁마다 뉴스시간 임박해서 스튜디오로 내려가면 100개가 넘는 조명이 딱 빈 자리 하나를 비추고 있는데 그 자리가 바로 내가 앉을 자리고, 수많은 스텝들이 저한테 와가지고 분장을 고쳐주고 머리를 고쳐주고 카메라 감독은 저한테 초점을 맞추고...

그러고서는 8시를 향해 초침이 다가간단 말이죠. 그럼 그때 그 느낌이 항상 들어요. ‘자, 내가 이렇게 회사의 배려와 많은 사람의 관심과 성원을 받고 있는데 오늘도 정말 멋진 멘트를 해서 세상을 좀 더 밝고 바르게 만들어 봐야겠다.’ 이 결심을 하기 시작하는데 8시 땡 하기 직전에 빨리 정신을 차려서 ‘야, 그게 아니고 그냥 오늘 뉴스를 하는 것뿐이야’ 이 생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반드시 오버를 하게 되죠. 그러고 나면 큰 후회를 하게 되죠.

- 후회하신 적이 많았습니까?

= 많이 했죠. 언제인지는 물어보지 마시고. 하하.

- 처음 앵커를 시작하실 때하고 지금하고 비교해 보면 언론 환경이 많이 바뀌었죠?

= 스마트폰으로 이야기하면 제일 쉬울 거 같아요.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할 때 8시 뉴스 앵커를 시작했는데, 그 때와 달리 지금은 뉴스 수요자들이 아침에 일어나가지고 스마트폰만 켜면 모든 뉴스를 다 볼 수 있는 세상이 됐죠. 그러다 보니 지상파 메인뉴스를 하기가 참 어려워진 거죠. 다들 아는 소식에 더해 소문까지 넘쳐나는 하루를 보낸 사람들한테 저녁 8시에 앉아 가지고 한 시간 동안 우리 뉴스를 좀 봐주세요, 부탁을 하자면 뭔가 과거하고는 다른 뉴스를 해야 되는 거지요.

세상에 떠도는 소문과 소식들을 잘 정리해 이게 진실이고 이게 진실이 아니라고 말해주자는 것, 또 정보는 있는데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어떻게 판단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 위해서 관점을 제공해 주자는 것, 이 세 가지를 우리 뉴스의 목표로 삼아서 했던 건데 이룬 것도 있지만 이루지 못한 것도 있죠.  

- 4년 가깝게 앵커를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 무엇일까요?

= 아무래도 세월호인 거 같아요. 세월호 한 달 째 SBS 8뉴스가 팽목항에 내려가서 현장에서 방송을 했는데 평생 그렇게 조심스럽게 방송을 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실종자 가족들한테도 조심을 했어야 됐고, 또 온 이목이 그때 SBS에 쏠리고 있었던 때거든요. 어떻게 보면 한두 군데 방송사 빼고는 사실 팽목항에서 방송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었는데 우리는 어쨌든 여건이 돼서 방송을 할 수 있었죠.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야, 제대로 방송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앵커멘트 한마디 한마디가 혹시라도 사람들한테 무슨 불쾌감을 주거나 세월호 국면을 해결해 나가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굉장히 고민도 많이 했어요. 제가 클로징을 간결하게 해야 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일부터 트위터 140자 안에 클로징을 마무리 한다는 원칙을 지켜 왔는데 그날만은 그걸 깨고 조금 길게 했어요.
 
'세월호' 한달 당일 8뉴스 클로징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으니 이젠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냐는 말도 나옵니다. 문제는 돌아가야 할 그 일상 속에 참사의 원인이 숨어있다는 겁니다. 원칙이 관행에 밀려나는 부실한 일상으로 그냥 돌아가 버리면 우린 언젠가 또 다른 세월호를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경제가 어렵고 국민이 힘드니까 일상을 되찾아가더라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우선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무기력해서는 안 되고, 무관심해서는 안 되고, 반목해서도 안 됩니다. 함께 힘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클로징 할 때까지도 바짝 긴장하고 했고, 그러고 나서 반응을 기다릴 때도 긴장했는데 천만다행으로 뭐 어느 쪽이든 간에 좋은 반응을 보내 주셔서 아주 가슴을 쓸어내리고 서울로 돌아온 기억이 있죠.

- 정부나 혹은 권력에 비판적인 클로징 멘트도 많이 하셨어요. 그런 거 때문에 일부에서 김성준 앵커가 진보 쪽이다, 심지어는 좌파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석에서 본 김성준 앵커는 진보뿐 아니라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부분도 많고 해서 여쭤보는데요, 스스로 판단하시기에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고 계신가요?


= 스펙트럼 안에 여러 군데에 가 있죠. 안보나 대북 문제 관련해서는 남들이 생각해도 상대적으로 보수 쪽에 가까운 거 같기도 하고, 경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조금 진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우리 또래 기자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스펙트럼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거죠. 이제까지 3년 9개월 동안 했던 클로징 리스트를 제가 다 갖고 있는데 거기 보면 안보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보수적인 클로징도 있었고 또 야당에 대해서도 정말 야당 이러면 미래가 없다고 비판하는 클로징도 있었습니다.

어떤 부분이든 간에 언론이 해야 될 역할이라는 건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식적이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상식적이지 않다, 라는 지적을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지적했을 뿐이지, 그게 꼭 제가 정부나 보수 세력의 반대쪽에 서가지고 뭘 했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뭐 그 좌파다 심지어는 종북 앵커라는 그런 별명까지 얻은 적이 있었는데, 종북 앵커라는 별명을 얻은 날 고향이 북쪽이라 실향민이신 저희 아버지가 그냥 웃으시더라고요. 실향민이 그렇게 웃으시는데 누가 종북앵커라고 한들...
클로징
- 클로징 관련해서는 회사 안팎에서 격려나 항의를 비율적으로 본다면 어떤 부분이 더 많았었던 거 같습니까?

= 격려는 많았고 항의는 격렬했죠. (하하) SNS의 많은 친구들이 늘 격려를 해주셨고 고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었고, 그래서 굉장히 용기를 얻을 수가 있었던 거 같아요. 항의는 격려보다야 훨씬 양은 적었지만 굉장히 격렬했고 날카로웠죠. 정부 당국자나  기업 관계자이 직접 항의를 한 적도 당연히 있었고. 그건 뭐 모든 기자들이 겪는 거잖아요.

그리고 특정 집단이나 세력이 SNS나 다른 여러 매체를 통해서 신상을 털지를 않나 심지어는 우리 딸아이와 관련된 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건 구체적인 협박은 아니었고 정신 나간 사람이 한 거겠지만 그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 그때 옆에서 저도 뵌 거 같은데 스트레스 굉장히 많이 받으셨죠?

= 스트레스는 좀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내가 무슨 얘기를 한 거에 대해서 잘못한 이야기가 아닌데, 그리고 다수가 그건 옳은 이야기를 했다고 그러는데 그걸 가지고 거의 사람을 매장 시키려 듯이 달려드는 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았죠.

- 대학교에서 학생들 (언론에 대해) 가르치셨잖아요. 얼마 동안 가르치셨죠?

= 음, 한 5년? 5년 꽉 채웠네요.

- 요즘 대학생들한테 물어보니까 신문은 아예 거들떠도 안 보고, 방송도 본방사수는 거의 안 합니다. 거의 8시 뉴스도 안 본다는 거나 마찬가지겠죠. 주로 뉴스를 페이스북으로 본답니다. 학생들한테 시민으로서 언론을 접하는 태도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뭐라고 평소에 말씀 해주세요?

= 말을 해줘야 되는 부분이 하나가 있고 또 그쪽의 말을 들어야 되는 부분이 하나 있는 거 같아요. 말을 들어야 되는 부분부터 이야기를 해보죠. 대학생 젊은 세대도 뉴스 소비자로서 자기들이 소비하고 싶은 뉴스를 소비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지상파 뉴스 또는 기성 언론들이 그 젊은 사람들이 정말 소비하고 싶은 뉴스를 제공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걸 찾아다니다 보니까 심하게 이야기하면 쓰레기 같은 뉴스에 몰입을 하게 된다는 그런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젊은 세대들은 소통의 방식의 대한 고민이 좀 필요한 거 같아요. 쉽게 말씀 드리면 신문을 열심히 읽어라, 방송 뉴스를 열심히 봐라, 젊은 사람들한테 이렇게 요구하는 가장 큰 이유가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좀 정신을 차리고 보고 똑바로 그걸 인식을 해가지고 사회생활을 해라, 이런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세대들은 사실 소통의 훈련이 굉장히 안 돼 있기 때문에 신문을 보고 뉴스를 보고 그래서 사회에 대한 인식을 하기 이전에 자기 스스로 개인적인 소통의 방식 자체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단 말이에요. 집에 앉아서 컴퓨터를 가지고 사람들과 채팅을 하거나 또는 스마트폰을 사람들과 SNS 채팅을 하거나 그건 가능하지만, 그게 사실 소통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배설에 그치는 경우가 많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배설만 해버리고 그 다음에 생산적인 그런 커뮤니케이션은 없는 거죠.

그러니까 그 일단 마음 속에서 내 생각 내 감정을 끄집어내는 연습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 끄집어 낸 거를 다른 사람들한테 던져서 그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감동시키는 노력, 또 다른 사람들이 던진 걸 받아서 자기가 이해하고 감동하는 노력 이거부터가 다시 시작이 돼야 된다는 거죠. 그거 없이 굳이 신문 열심히 보고 기사 본다고 해서 무슨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좀 의문인 거죠.

- 가벼운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술 좋아하시죠? 일주일에 서너 번은 뉴스 끝나고 술을 드시러 가시는데, 술 드시는 게 진짜 술이 좋아서인가요? 혹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아서? 아니면 8시 뉴스 끝나고 긴장을 풀기 위해서?

= 셋 다 아니겠어요?  8시 뉴스 앵커는 그냥 그야말로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거잖아요. 오늘 8시 뉴스를 하면서 뭘 내가 실수를 했다, 또는 미진한 게 있다 해도 그걸 이어가지고 내일 다시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내일은 내일의 뉴스를 해야 되니까. 그러다 보니까 좀 하루살이 같은 느낌도 들고 아까 이야기 한 대로 하루 에너지를 다 쏟아서 소진하고 나면 허탈감도 생기고... 52분 동안 품격 있는 자세로 목소리에 힘을 주고 이야기를 했는데 끝나고 나서 한두 시간 정도 편하게 앉아서 넥타이도 풀어 헤치고 수다 떠는 것도 좀 필요한 거 아니에요.

- 필요하죠. 후배들 막 끌고 가시니까 그게 문제죠.

= 아니, 후배들 다 좋아하던데. 하하.

-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실 만큼 시간이 있으셨나요?

= 없었죠. 제가 기본적으로 SBS 보도국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앞으로 뭘 하든 간에 SBS 보도국에서 뉴스를 만들겠죠. 아마도. 

※ 김성준 앵커는 오늘 (2014년12월31일) 클로징을 마지막으로 3년9개월 동안 진행했던 SBS8뉴스 앵커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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