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힘겨운 환경에서도, 향상된 투수들이 있었다. 리그 평균 대비 FIP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 수비 무관 평균자책. 100이 평균, 낮을수록 좋다)를 보면, 올해 가장 발전한 투수는 김병현(KIA)이다.
<올해 가장 향상된 투수들>
리그평균대비 FIP
리그평균대비 FIP
이들이 보여준 투수들의 희망의 근거가, 내년에 다른 투수들에게도 확산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이들의 발전이 시스템(체계화된 코칭, 육성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 한국 프로야구의 투수들은, 마치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들처럼, '각개 약진'해서 험난한 시대를 살아남거나 도태되고 있는 것이다.
투수들의 생존과 발전을 도울 '시스템적 방안'은 없는 걸까? 우리와 달리 메이저리그에서는 역사적인 투고타저의 시대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조 매든 시카고 컵스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요즘 타자들은 너무나 불리하다. 타자가 우위를 회복할 가능성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창의적인 해결책을 생각해야 한다. 데이터와 비디오 분석, 모든 정보들이 타자들을 궁지에 몰고 있다"
모든 팀은 경기 전, 상대의 약점과 공략법을 담은 스카우팅 리포트를 공유한다. 과거에 이 리포트가 스카우트들의 눈에만 의존했다면, 지금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객관적 증거가 가미됐다. 더 상세하고 정확한 분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정밀해진 분석의 성과는 공격보다는 수비 쪽이 더 크게 누리고 있다. 예외적 상황이 있지만, 타격은 기본적으로 투구에 '반응'하는 무의식적 행위이다. 반면 투구와 볼배합, 수비수의 배치는 '사전 계획'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게 타자의 타구 경향을 파악해 수비수를 배치하는 '시프트'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시프트 수비 횟수는 만 3천 번이 넘었다. 불과 3년 전에 비해 6배 가까이 증가한 엄청난 수치다.
<메이저리그 전체 시프트 수비>
현역 최고타자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도 올 시즌 후반기에 이 '정보화 야구'에 당했다. 올 시즌 트라웃이 만난 '높은 직구'의 비율을 보자.
<마이크 트라웃이 만난 높은 직구 비율>
메이저리그에서 대부분의 구단이 빅데이터를 다루는 부서를 두며 정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 중인 반면, 한국은 구단별로 큰 '정보 격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 분석을 접목하려 시도하는 구단이 있는가 하면, ‘구글링’만 해보면 나오는 기본적인 프로필 검색도 안 해서 외국인 선수와 계약에 낭패를 보는 팀도 있다.
‘정보화만 정답’이라는 게 아니다. 정보화는 투수-팀수비의 발전을 촉진한 '시스템'의 한 예다. 즉 필요한 건 시스템이다. 정보화라도 좋고, 체계적인 코칭-컨디셔닝-심리 관리 혹은 다른 무엇이라도 좋다. 개인의 생존과 성장, 발전을 돕는 신뢰 가능한 시스템의 등장은 투수들만의 소망이 아닐 게다. 이뤄지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 간절한, 우리 모두의 새해 소망이 아닐까.
(자료 출처 : Hardball Times 2015, Bill James Handbook 2015, baseball-referen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