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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험난한 시대를 살아남는 투수들, 그리고 새해 소망

[취재파일] 험난한 시대를 살아남는 투수들, 그리고 새해 소망
2014년은 투수들에겐 '지옥에서 보낸 한 해'였다. 상상가능한 모든 불리한 상황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모든 팀의 타선에 외국인타자가 포진했다. 공의 반발력은 높아졌고, 스트라이크 존은 좁아졌다. 새로 문을 연 광주 챔피언스필드는 데뷔와 동시에 국내 최고의 홈런 공장으로 등극했다. 단체로 근육을 키운 넥센 타자들은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선을 구축했다.

그런데 이 힘겨운 환경에서도, 향상된 투수들이 있었다. 리그 평균 대비 FIP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 수비 무관 평균자책. 100이 평균, 낮을수록 좋다)를 보면, 올해 가장 발전한 투수는 김병현(KIA)이다.
 
<올해 가장 향상된 투수들>

             리그평균대비 FIP
              
이성훈 취파

이들이 보여준 투수들의 희망의 근거가, 내년에 다른 투수들에게도 확산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이들의 발전이 시스템(체계화된 코칭, 육성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 한국 프로야구의 투수들은, 마치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들처럼, '각개 약진'해서 험난한 시대를 살아남거나 도태되고 있는 것이다.

투수들의 생존과 발전을 도울 '시스템적 방안'은 없는 걸까?  우리와 달리 메이저리그에서는 역사적인 투고타저의 시대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조 매든 시카고 컵스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요즘 타자들은 너무나 불리하다. 타자가 우위를 회복할 가능성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창의적인 해결책을 생각해야 한다. 데이터와 비디오 분석, 모든 정보들이 타자들을 궁지에 몰고 있다"

모든 팀은 경기 전, 상대의 약점과 공략법을 담은 스카우팅 리포트를 공유한다. 과거에 이 리포트가 스카우트들의 눈에만 의존했다면, 지금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객관적 증거가 가미됐다. 더 상세하고 정확한 분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정밀해진 분석의 성과는 공격보다는 수비 쪽이 더 크게 누리고 있다. 예외적 상황이 있지만, 타격은 기본적으로 투구에 '반응'하는 무의식적 행위이다. 반면 투구와 볼배합, 수비수의 배치는 '사전 계획'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게 타자의 타구 경향을 파악해 수비수를 배치하는 '시프트'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시프트 수비 횟수는 만 3천 번이 넘었다. 불과 3년 전에 비해 6배 가까이 증가한 엄청난 수치다. 
 
<메이저리그 전체 시프트 수비>
이성훈 취파


현역 최고타자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도 올 시즌 후반기에 이 '정보화 야구'에 당했다. 올 시즌 트라웃이 만난 '높은 직구'의 비율을 보자.
 
<마이크 트라웃이 만난 높은 직구 비율>
이성훈 취파
어느 팀이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트라웃의 약점이 높은 직구'라는 사실이 모든 팀에 급속도로 공유된 것이다. 그 결과 트라웃은 후반기에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높은 직구를 가장 자주 만나는 타자가 됐다. 그리고 후반기 OPS가 조금은 인간적인 0.849로 낮아졌다.

메이저리그에서 대부분의 구단이 빅데이터를 다루는 부서를 두며 정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 중인 반면, 한국은 구단별로 큰 '정보 격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 분석을 접목하려 시도하는 구단이 있는가 하면, ‘구글링’만 해보면 나오는 기본적인 프로필 검색도 안 해서 외국인 선수와 계약에 낭패를 보는 팀도 있다. 

‘정보화만 정답’이라는 게 아니다. 정보화는 투수-팀수비의 발전을 촉진한 '시스템'의 한 예다. 즉 필요한 건 시스템이다. 정보화라도 좋고, 체계적인 코칭-컨디셔닝-심리 관리 혹은 다른 무엇이라도 좋다.  개인의 생존과 성장, 발전을 돕는 신뢰 가능한 시스템의 등장은 투수들만의 소망이 아닐 게다. 이뤄지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 간절한, 우리 모두의 새해 소망이 아닐까.

 (자료 출처 : Hardball Times 2015, Bill James Handbook 2015, baseball-referen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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