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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체육계 개혁, 용두사미는 안 된다

[취재파일] 체육계 개혁, 용두사미는 안 된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 2월 13일, 교육·문화 분야 업무보고를 받던 박근혜 대통령이 ‘체육계 비리 근절’에 대해 입을 열었다. 러시아 국기를 가슴에 달고 화려하게 재기한 안현수(빅토르 안) 사태가 발단이었다. 박 대통령은 “최고의 선수가 다른 나라에서 활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면서 그 이유가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발언 수위는 이례적일 만큼 높고 분명했다. 박 대통령은 “선수가 실력대로 평가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고 체육 비리 관련해서 반드시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자”고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뜯어 고치자는 말이었다.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에도 한 태권도 선수의 아버지가 심판 편파 판정에 항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거론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문체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한 달 뒤 박근혜 정부의 체육 정책과 철학을 담은 ‘스포츠비전 2018’을 발표했고 체육 단체 감사 계획을 내놓았다. 10월에 선임된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은 ‘체육계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며 이를 진두지휘했다. 두 번의 대통령 발언 이후, 올해 2월 만들어진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가 완장을 차고 체육 비리 척결을 위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취파

● ‘체육계 비리 척결 선언’ 10달 후

그리고 10달이 지났다. 문체부는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통해 조사한 체육계 비리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지난 2월부터 269건의 체육계 비리 제보가 접수돼 118건이 종결됐다. 이 가운데 2건이 합동수사반 수사 후 검찰에 송치됐고, 2건은 검찰에 직접 수사를 의뢰했다. 25건은 감사 결과를 보고 처분을 요구했고 나머지 89건은 사실상 ‘혐의없음’으로 종결했다. 나머지 151건은 조사 및 감사가 계속 진행 중이다. 

'269건 가운데 2건'

그러니까, 이 수사 결과에 따르면 269건 가운데 혐의가 확실히 드러난 사례는 지금으로서는 2건 뿐이다. 각종 지원금으로 마련한 13억 3천만 원을 자기 돈처럼 쓰다 구속된 택견연맹 이사장과 아들 대학 보내려고 승부 조작을 의뢰한 동아대 유도부 감독 건 등이다. 물론 문체부가 현재 수사 및 내사중이라고 밝힌 7건을 포함해 미종결된 151건까지 감안하면 사례는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고센터가 생긴 지 10달이 지났고, 지난 10월 발표하려다 한 차례 연기한 것까지 감안하면 중간 수사 결과 치고는 ‘초라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 ‘역대 최초’ 강조했지만 투입 인력 적어
 
문체부는 이번 체육계 비리 조사가 ‘역대 정부에서는 시도한 적이 없는 일’임을 강조했다. 비리를 조사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연구하는 제반 활동이 스포츠 비리 척결에 대한 이번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당장의 성적표를 보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보통 특정 사안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소는 ‘인력’과 ‘예산’이다. 이번 조사에서 선봉 역할을 한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는 출범 이후 금방 한계에 부딪혔다. 조사권만 가지고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5월 경찰청과 합동수사반을 꾸렸다. 이후 대강의 라인업이 경찰 6명, 문체부 유관단체 파견 직원 3명, 자금 추적을 위한 예금공사 직원 2명 등이다. 적다면 적고,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지만 “50년간 적체된 한국 체육계의 비리”를 뿌리 뽑기에는 힘에 부치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2월 가장 지탄을 받은 동계 종목에 대한 결과가 미진한 것을 두고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은 ‘인력의 부족’을 이유로 꼽았다.

그러다보니 내놓은 성적표도 미진할 수밖에 없었다. 해를 넘기기 전에 부랴부랴 서두르다보니 이례적으로 일요일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검찰에 송치된 2건 외에도 약 20여 개의 체육계 비리 사례가 나름 자세하게 실렸는데, 앞선 2건 외에는 모두 △△협회, ◎◎연맹 등으로 익명 처리했다. 담당자들도 ‘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이라며 함구했다. 피의사실이 확정되지 않았으니 공표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예 쓰지 말았어야 했다. 기자들은 물어보고, 담당자들은 곤란해 하는 불편한 상황이 이어졌고 소개된 사례들은 익명이라도 이미 다 기사화됐다. 애써 살을 붙이려다 보니 빚어진 난센스다.

● 용두사미 되지 말아야

물론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승부와 판정에 대한 시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체육계 특성상 복잡하고 지난한 확인과정을 거쳤고, 무고한 사례를 훨씬 더 많이 걸러냈다. 소수의 인력이 숱한 사례를 자세하게 조사해 국외전지훈련에 대한 학부모 비용부담 등 의미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데이터를 발굴했다.

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정부는 16개 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산하에 체육비리 전담수사반을 두고 내년 말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당장 인력만 두고 봐도 1개청에 5명에서 10명 선으로 편성된다니 성과를 기대해 볼만하다. 이번 대책과 개선안에 학교 운동부 비리와 학부모 부담까지 고려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 밖에 체육 비리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의 제도화라든지, 재정 투명화 등은 체육계 비리 해소를 위해 짚어야 할 부분을 잘 짚고 있다는 느낌이다. 김 전 차관은 “특정 비리를 캐내어 벌주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수사 등을 통해 개혁 의지를 고취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궁극적인 방향”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필요한 것은 꾸준한 투자와 추진력이다.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그동안 숱한 비리와 해결책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체육계 비리 사례의 면면을 살펴보면, “처참하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 있었지만 모아 놓고 보니 더 그렇다. 부분으로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지만, 이 역시 체육 강국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모처럼 시작한 ‘개혁’이 용의 머리로 시작해 뱀 꼬리로 끝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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