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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40년 생이별, 다시 만난 언니와 동생의 이야기

● 동생의 이야기

경기도에서 자영업을 하는 평범한 아이 엄마 윤정미 씨는 40년 동안 어머니와 형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5일, 어머니와 가족들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4살 때 헤어지고 생사를 모르며 살아온 40년, 윤 씨는 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핏줄인지라 얼마 전부터 가족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이뤄진 상봉식의 현장에서, 막연히 그리던 어머니라는 사람이 막상 문 밖에 있다고 하자 입이 굳어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어머니를 불러보라고 재촉했지만, 눈물만 흘릴 뿐 고개도 들지 못했습니다.

● 언니의 이야기

경남 밀양에서 농사를 짓는 48살 이정옥 씨는 지난 15일, 40년 동안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지난 15일 동생을 찾았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필사적으로 동생을 찾으려 노력해 왔던 40년이었습니다.

단숨에 해남에 사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연락했습니다. 하루도 더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대로 짐을 싼 정옥 씨는 그날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도 한걸음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동생이 있다는 문 앞에 섰습니다.

40년 만에 마주 선 이 두 자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 생활고로 가족 ‘뿔뿔이’…막내딸은 결국 찾지 못해

두 자매의 어머니 70살 최순자 씨는 28살이던 1972년, 남편을 잃었습니다.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에 홀몸으로 젖먹이 4남매를 모두 키울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1974년 둘째 정옥 씨와 셋째 정미 씨를 경기도 시흥에 사는 아주버님 댁에 맡겼습니다. 어머니는 "생활이 여의치 않으니 잠깐만 맡아 주세요. 사정이 나아지면 데리러 올게요."라며 눈에 밟히는 두 딸을 뒤로 했습니다.

졸지에 어린 조카를 둘이나 떠맡은 큰삼촌의 사정도 넉넉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서로 의지하며 타향살이를 하던 두 자매는 3개월 만에 다시 헤어지게 됐습니다. 정미 씨가 서울 부잣집의 수양딸로 가게 된 겁니다. 어머니와 다 의논했다는 삼촌의 거짓말에, 정옥 씨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생이 부잣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잘 살다가 나중에 가족이 얼마든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40년 동안 못 볼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동생이 떠나고 얼마 뒤 언니 정옥 씨도 이웃에 식모살이로 보내졌습니다. 팍팍한 삶을 견디던 정옥 씨는 16살이 되어서야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형편이 좀 나아져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게 된 겁니다. 당장 동생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서울로 입양을 떠난 동생은 그 집에 없었습니다.

● 동생의 이야기

서울로 간 정미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양됐습니다. 왜 다시 버려졌는지, 그 뒤로 어디를 갔는지 정미 씨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 저기 떠돌던 정미 씨는 전라도 구례에 있는 한 노부부의 집에 양녀로 들어가면서 마침내 자리를 잡았습니다. 양부모는 ‘윤정미’라는 새 이름으로 호적에 올리고 학교에도 보냈습니다. 정미 씨는 그렇게 윤정미로 자라났습니다.

정미 씨는 양부가 돌아가시자,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자녀도 낳고 가정을 이뤘습니다. 정미 씨는 원래의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너와 닮은 사람이 애타게 동생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정미 씨는 그 사람과 자매가 맞는지 유전자 검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불일치’ 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언니와 어머니가 자신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미 씨는 가족을 찾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너무 어릴 때 가족과 헤어져 남은 기억이나 단서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난해에야 비로소 경찰의 도움을 받아 실종가족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했습니다. 가족의 유전자는 등록돼 있지 않았습니다. 정미 씨는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 언니의 이야기

16살 때야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정옥 씨. 그녀는 자신이 동생을 지키지 못해 동생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생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습니다.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하고 실종가족 찾기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지난 10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실종아동전문기관이 낸 홍보지를 보고, 실종가족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해남경찰서의 안내로 얼마 전인 지난 10월에 데이터베이스에 유전자를 등록했습니다. 1차 스크린에서 후보군들이 나왔고 2차 채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친족관계로 확인된 유전자 등록자가 있다는 사실을 국립과학수사 연구원으로부터 통보받았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동생도 가족들을 애타게 찾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 다시 만난 그들의 이야기
화강윤 취재파일
이제는 ‘윤’씨가 된 정미 씨와 어머니, 언니는 40년 만에 서로를 부둥켜안았습니다. 70살 어머니는 단박에 알아본 딸을 부둥켜않고 "아이고 내 새끼. 엄마가 미안하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라며 오열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엄마!’ 정미 씨는 그제야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불러보지 못했던 그 말을 토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생전에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찾아줘서 감사합니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귀한 딸을 만난 게 꿈같은 최순자 할머니는 여러 차례 감사를 전했습니다. “딸을 찾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봤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고맙습니다.”
40년만에 모녀상봉
정미 씨는 그동안의 서러움을 쏟아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줄도 몰랐어요. 형제와 부모가 있는 집이 너무 부러웠고, 아이들에게는 할머니가, 남편에게는 장모님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정미 씨는 "어머니가 어떤 모습일까, 나랑 닮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고 했습니다. “버림받았다고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복지부가 운영하는 실종아동 전문기관의 김용식 담당관은 “지금은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지만, 예전에 등록한 실종 아동은 제대로 등록이 되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신고 상황을 확인하고 재 신고를 하는 것이 실종 가족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권했습니다.

올 연말, 그리운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애타게 찾고 있는 실종 가정은 1,500여 세대, 10년이 넘는 장기 실종 가족은 150세대가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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