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의 사소하게] "놀랍다" 외국 관계자도 눈물…'님아…' 탄생 비화

이주형 기자 joolee@sbs.co.kr

작성 2014.12.22 23:04 수정 2017.02.14 19:14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이주형의 사소하게] "놀랍다" 외국 관계자도 눈물…님아… 탄생 비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지난 주말 관객 2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다큐영화의 '전설'인 워낭소리보다 23일나 빠른 기세로, 역대 다큐영화 흥행기록을 곧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감독 진모영 씨는 매사 신중하고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뷰 도중 조금이라도 기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오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꼼꼼하게 부연설명 했습니다. 차분한 말투에다 약간은 문어체적으로 느껴지는 답변을 들으면서 감독이 이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고민을 했겠구나 싶었습니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한경수 씨는 앳된 외모에 영화 청년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할 때 바로 합류한 스태프는 아니지만 감독만큼이나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어 보였습니다. 강계열 할머니와 가족 인터뷰 섭외 때문에 인터뷰 전에도 네 차례 길게 통화했는데요, 저와 가족들 사이에 끼어서 고생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SBS스페셜' 5편을 비롯해 예닐곱 편의 방송 다큐 연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진 감독과 대화하기에 아무래도 일반인보다는 전문적인 질문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8시 뉴스방송에는 많이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 8뉴스 리포트 : [人터뷰] 돌풍 일으킨 '님아…' 감독, "살얼음판 같은 기쁨"

뉴스로 다 풀어놓지 못한 바로 그 이야기를 좀 풀어놓을까 합니다.
님아 감독 인터뷰
● 가족들을 지켜 달라

- 지금 마음이랄까? 심리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요?

= (진모영 감독) 살얼음판 같아요. 느낌은. 저는 굉장히 기쁘죠. 우리가 극장에서 이 두 분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기대할 수 없는 환경들이었죠. 별로 안 오실 거다. 기존에 다큐멘터리 안 보시니까. 그런데 이렇게 많이 와주셨어요. 그래서 정말 기뻐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오시고 나니까 덜컥 겁이 나는 부분이 있어요. 실제 살아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서 과도한 관심 때문에 이분의 인생이 어떻게 잘못될 수도 있다는 공포도 있죠.

- 공포스럽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정확히 어떤 상황이 공포스럽다는 건가요?

=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 집에 나타나거나 그러면 할머니께서 좋아하실 수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원치않는 상황이라면 할머니께서 굉장히 유쾌하지 않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것은 저희들이 원하는 것들이 전혀 아니죠. 저희들이 통제할 수 있는 세계들이 아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만약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면, 하고 생각을 한다면 되게 공포스러운 거죠.

- 제가 전화를 드려서 할머니 인터뷰, 또 가족들 인터뷰 요청했었는데 그때 따님하고 통화하셨죠?

= (한경수 프로듀서) 네, 이미 제작진과 감독님과 저와 온 가족이 합의를 한 거였거든요. 할머님과 가족들이 세상에 많이 알려져 또 다른 큰 관심을 받게 되는 게 굉장히 불편하다. 그래서 모든 가족들과 저희가 약속을 한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보호를 해드리겠다, 약속드린다고 말씀드렸는데, 또 비슷한 연락을 드리니까 굉장히 당혹스러워하셨죠.

- 가족 분들이 왜 그렇게 그 부분에 대해서 심하게 걱정을 하시는 거죠?

= 구체적으로 사례를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거 같은데, 이전에 실제 일반인들이 출연했던 다큐멘터리들이 좀 있었잖아요. (‘워낭소리’나 ‘산골소녀 영자’ 등을 가리키는 듯)

그 분들이 사실 과도한 관심 때문에 생활의 불편함을 넘어서 안 좋은 일도 있으셨고, 할머니 가족 분도 이런 걸 다 아시는 거죠. 할머님이 혼자 계신데 더군다나 올해 나이도 구순이신데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게 최우선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 거 같아요.

- 영화 개봉 직후에 가족 분들이 민감하게 된 사건도 하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대요. 누구누구인데요. 할머님 지금 댁에 계세요? "네" 그러니까 지금 찾아 뵈도 될까요? 라는 말씀을 하시더래요. 할머님이 아는 사람도  아니고 갑자기 전화가 왔는데 찾아오겠다고 하니까 굉장히 좀 놀라셨던 거 같아요.

상황이 달라진 게 예전에는 할아버님과 같이 계셨잖아요. 지금은 홀로 계신 상황인데 그런 전화를 받으시니까 덜컥 겁이 나셔서 따님께 울먹이면서 전화를 하셔서 이러이러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렇게 해서 그 이후로는 이제 따님 집으로...

● ‘님아…’는 애초부터 글로벌 기획

-  이제 영화 이야기 여쭤 볼게요. 도대체 이 방송국 저 방송국에 다 나간 이야기를 또 다시 하고자 했던 원동력은 뭐였나요? 어쨌든 다큐를 만드는 사람, 방송을 만드는 사람은 새로운 거 남들이 모르는 거 내가 처음 하고 싶은 욕심들이 있잖아요.

= 저는 그랬던 거 같아요. 이 두 분을 TV 프로그램에서 딱 봤을 때 그냥 이거는 많이 했으니까 할 필요가 없어,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이걸 TV 프로그램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으면 아마 안 했을 거예요. 그리고 저 같은 독립PD가 어떤 아이템 자체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그건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으셨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이 분들이 가지고 있는 힘들은 굉장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걸 TV에서 한국에서 하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형태적으로 극장에서 일정한 시간을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영화, 그러면 훨씬 더 심층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깊이 있게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영화는 하겠다고 생각했고 한국 말고 전 세계 사람들도 아주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이 이야기는 공감을 해줄거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세계시장도 생각을 했고 그래서 영화로도 만들자고 생각 했죠.

- 한경수 프로듀서님은 이 이야기를 처음 딱 들으셨을 때 어떤 생각 드셨어요?
 
= 저는 사실 촬영 초반부터 같이 하지는 않았고요. 감독님이 시작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 지난 다음에 감독님을 뵀죠. 제가 그 요즘하고 있는 일이라는 게 한국에서 개봉할 영화들을 프로듀싱 하는 게 아니고 주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해외에 소개하고 또 해외에서 제작비도 펀딩하고 이런 일들을 최근에 많이 하고 있었거든요.

감독님이 이 두 분의 대한 이야기를 말씀하실 때 정말 좋다. 충분히 가능할 거 같다. 그런데 영화는 그래도 TV와는 다르기 때문에 좀 더 새로운 혹은 깊은 이야기가 당연히 있어야 되니 감독님이 많이 열심히 해보시고 계속 이제 이야기를 하자고 했죠.

그렇게 해서 6-7개월 동안 지나셨을 때 그 동안 찍으신 걸 가지고 4분짜리 트레일러로 만들어서 저에게 보여 주셨어요. 보고나서 '됐다'라고 생각을 했죠.

-  뭘 보고 됐다고 생각하셨어요?

= TV에서 보지 못했던 훨씬 더 깊은 이야기,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이미 트레일러에.

- 예를 들어서?

= TV에서 보여줬을 때는 이 두 분의 알콩달콩한 이런 사랑에 이제 집중을 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은 그 사랑의 비밀이 뭘까라는 거에 대해서 아주 커다란 게 아니라 이들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는 아주 작은 행동들, 이것들이 이 부부를 끊임없이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게 만드는구나. 이런 것들 점점 발견해 내셨더라고요. 저는 그게 영화적으로 너무 아름다웠죠.

그리고 정말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들이 있어서 충분히 이거 해외 시장에서도 해외 관객들에게도 보여줄 만하다고 생각을 해서  그 트레일러를 들고 이제 해외 방송이나 영화 관계자들에게 피칭(프로듀서나 감독이 투자자를 만나고, 배우를 만나고, 스텝을 만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일련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죠. 다행히도 해외 편성 담당자들도 저희 피칭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그래서 운 좋게도 유럽의 어떤 방송사하고는 사전 판매 계약도 맺고,  전 세계 배급을 하겠다는 배급사도 나타나고.

- 그게 어디하고 어디죠?

= 덴마크 국영방송인 DRTV는 뭐 트레일러만 보고도 그쪽에서 계약을 해줬고요. 전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배급사인 케덴독스라는 프랑스 배급사와 전 세계 배급계약을 맺었습니다.

● 사랑의 영화, 죽음의 영화

- 영화를 보면, 전반부에 보면 두 분이 계속 서로 존댓말을 하세요. 두 분이 원래부터 그렇게 존댓말을 하시나요?

= 제가 불과 1년 3개월을 봤지만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하는 것들도 봤는데 똑같이 하고 계셨고 아마 그런 부분들은 평생에 굳어진 어떤 습관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그것들이 이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험하게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아주 자그마한 행동들 기초들이었던 거 같아요. 아마 그 말투, 말씨를 평생 쓰셨던 거 같습니다.

-  제가 주목했던 부분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를 때 할아버지라고 부르신단 말이죠. 이게 2인칭이 아니라 3인칭이고 굉장히 대상화하는 듯한 인칭이라 저는 그게 특이하게 느껴졌는데.

= 그렇죠. 원래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죠. 그런데 우리가 남편을 왜 아빠라고 부르냐, 이런 건데 여기에는 괄호 속에 숨어있는 게 있습니다. 그 집안에 큰 손주 장손 이름이 성백 씨예요, 조성백 씨. 그런데 원래는 '성백이 할아버지'라고 불렀어요.

- 그러면 젊었을 때는 혹시 물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젊었을 때는 그럼 뭐라고 부르셨을까요?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안 물어봤습니다.

- 그거 외에 여보나 당신이나 자기, 이런 표현을 쓰신 적은?

= 그런 표현을 쓰시는 건 못 봤습니다.

-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 안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부부간의 어떤 진정한 사랑을 찍으러 가셨다가 혹시 다른 걸 찍고 왔다. 이런 느낌을 받으신 적은 없으세요?

= 어떤 분들은 이 영화를 죽음에 관한 영화로 보시거나 노인들을 위한 영화, 이런 식으로 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처음부터 생각을  했던 건 사랑이었죠. 사랑. 그런데 이 두 분에게 이 죽음이라는 게 무엇일까? 처음에 당연히 이거는 생애 끝이고 이별이죠. 단순하게.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께서 그 먼저 간 먼저 보낸 자식들 이야기 내복 이야기 하시고 할아버지 옷도 정리하고 태우면서 가거들랑 좋은 데 자리 잡고 있다가 나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나 데리러 오면 거기 가서 또 같이 삽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들을 쭉 보면서, 이것은 죽음이라는 게 한없이 슬프고 큰일이기는 하지만 할머니에게 있어서는 할아버지의 죽음이 어쩌면 준비해서 잘 보내 드리는 게 두 분의 살았던 인생, 그 두 분 사랑의 마지막 완성이기도 하고 또는 멀리 미래로 가는 영원한 사랑에 어떤 다리를 놓는 그런 행동이실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서 사랑을 찍으려고 했는데 다른 게 찍힌 게 아니라 사랑을 찍으러 갔는데 그 사랑 이야기에 더해서 더 어쩌면 더 큰 사랑, 혹은 남들과는 어떤 다른 사랑 이거까지도 같이 내용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 (한경수 프로듀서) 해외 저희 배급에 트레일러를 보신 분들이 그 점에 대해서 굉장히 놀라워 하셨어요. 서양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준비하는 게 유언장 하나 달랑 쓰는 게 끝이라는 거죠. 그런데 할머님은 할아버님의 그 죽음을 앞두고 내생에서 이 사랑을 또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그래서 이전에 일찍 보낸 자식들은 또 어떻게 해야 될 건가. 이거를 남이 봐서가 아니라 정말 진심을 다해서 준비하셨다는 거죠. 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 (진모영 감독) 이 부부의 사랑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생각났던 글귀는 그거였어요. 박노해 시인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다른 길이라는 사진전을 할 때 벽에 이렇게 써놨더라고요.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그때가 올 초였는데 이 부부의 사랑에 대해서 아마 그게 가장 적절하게 표현된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부부에게 어마어마한 프러포즈의 이벤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꽃다발을 100송이, 1000송이 주지 않고요. 결혼 몇 주년 마다 촛불로 길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부가 평상시에 외출할 때 머리 하나 빗겨주고 단추 하나 채워주고 옷핀 하나 꽂아주고 신발 돌려서 놔주고 높은데 손 잡아주고 고맙다 사랑한다 말을 무한 반복으로 하는 이렇게 작은 행동들을 그들의 인생 76년 동안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올 수 있었다는 거죠.

그게 어쩌면 그 콘크리트처럼 하나씩 하나씩 쌓이면서 그 신뢰와 배려가 단단해진 게 사랑의 어쩌면 다른 모습이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픽_님아그강을건
● '다큐멘터리 카메라'라는 존재

- 감독님 같은 경우는 막내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긴 기간 동안 촬영을 하셨고요. 그래서 두 분이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셨지만 사실 저 두 분이 카메라의 존재를,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늘은 아니지만 의식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두 분께 카메라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 두 분이 아니니까 잘 모르죠. 대신 이렇게는 생각을 해요. 저를 돌이켜서 보면 누군가가 나를 찍고 있으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착하게 보이고 싶고 잘생기고 지식도 높고 이렇게 보이기를 원한다고 생각을 해요. 사람들은.

이 분들도 같은 마음이 있으셨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지만 오래 찍게 되는 것에는 굉장히 다른 방식이 나온다고 봐요. 처음 몇 번은 좋게 보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1년이 넘어가게 찍게 되면 그때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별로 구애를 받지 않는 거 같아요.

- 비슷한 말씀인데 특히나 낙엽 장면, 눈 먹기 등등 같은 것도 그렇고 카메라를 앞에 두고 역할놀이를 하는 거 같은 느낌도 들고,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카메라를 의식 안 한다기보다는 카메라를 오히려 이용하고 있다. "카메라 따위는 어떻더라도 나는 상관없어." 약간 이런 태도같이 느껴졌습니다.

= 사실 이 영화 안에서도 (할아버지가) 욕을 하는 게 나오죠. 우라질 놈, 그 강아지 남의 집 강아지를 혼내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그런 부분들에서는 이제 다 그런 의식하는 게 무너진 거죠. 처음에 저는 카메라에 담겼던 어떤 특정한 시점이 우리가 촬영을 했기 때문에 담기는 담았지만 이 부부가 이 카메라에 담겨지게 된 장면이 최초의 것이냐. 그러니까 처음 세상에서 처음으로 한 것이냐. 라고 할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우리가 봤을 때는 닭살스럽기도 하고 뭐 저런 걸 다 하냐. 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 부부의 76년의 인생에서는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는 늘 반복했던 어떤 일들이라는 거 그게 연단위로 반복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어쩌면 눈 같은 거, 새눈이 왔을 때 할 수 있는 거니까 1년에 한 번 밖에 못했을 거고, 매일 화장실가서 노래하는 건 매일 하셨을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이 두 분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쌓여져 오면서 우리에게 촬영이 됐고 혹은 다른 촬영 팀에게도 똑같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거든요.

- 사실 그 제가 영화 보면서 내내 힘들었던 건 그 어느 순간부터 나오기 시작한 할아버지의 오디오(숨소리)입니다. 계속 숨이 가빠서 올라오는데 그게 전반부터 시작되어 나오는 거 같아요. 촬영 후 돌아와서 프리뷰 하시면서 다 들리셨을 텐데 그 힘들지 않으셨나 모르겠어요.

= 촬영을 하게 되면 사람과 만나는 거니까 가까워지게 되는 거죠. 물론 카메라의 거리는 늘 가능하면 떨어져 보려고 하지만 인간적인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고 봐요. 노인들은 외로우니까 사람들을 좋아하시죠. 그래서 촬영하러 가면 촬영팀 오면 그렇게 반갑게 웃으시고 그럼 이제 우리는 촬영 할 테니까 당신 일 하십시오. 일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는 아는 척 안 하죠.

우리가 갈 때 되면 또 눈물 그렁그렁해서 우리가 안 보일 때까지 손 흔드시고 그렇게 만나면서 지냈던 분이 아파서 이제 가실 날을 보고 병석에 눕는 거죠. 그런데 저희들은 그걸 촬영해야 되는 게 저희들의 일인 거죠.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가 이제 세상을 떠나실 거고 할머니는 그걸 지켜보고 준비하면서 슬퍼하시는 걸 보는 것들은  아주 인간적인 고통, 인간적인 저희들이 그렇다고 뭘 안 찍거나 그럴 수는 없죠.

다 찍고 훨씬 더 긴장된 시간들을 보냈지만 그 인간적인 고통들 그런 부분들은 피하기 힘들었고요. 현장에서는 그 잘 담아 와도 편집실에 돌아와서 그걸 다시 그 파일들 펼쳐서 볼 때는 굉장히 저희들도 슬픈 그런 작업이었어요.

- 가족들 이야기인데 그 가족들 싸우잖아요. 그거는 왜 굳이 꼭 집어 넣으셨어요. 혹시 이 다큐가 정말 사실 리얼한 거다,라는 걸 보여 주시기 위한 건가요?  아니면 다른 어떤 의도가 있으신 건가요?

= 결과적으로는요. 이 이야기가 진짜라는 것을 기여한 신이죠. 그런데 그걸 진짜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 장면을 굳이 쓸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께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인생에 어떤 큰 변화의 부분들이 나오는데 할아버지는 점점 작년에 당신이 번쩍 들어서 달았던 거울을 달 힘도 떨어지는 거고 그 대가족을 먹여 살리고 다 부양해서 키워서 대처로 내보내고 했던 그 남자로서 가장으로서의 그 어떤 권위와 힘이 사실 그 생일날 다 무너졌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희는 그렇게 봤어요.

- 3남3녀 가족 분들이 자녀분들이 다 부부 사이가 좋으시다고 말씀을 하셔서 제가 그 부분이 더 궁금해진 것도 있고요. 진짜 가족 분들이 다 보셨으니까 다 사이가 부부 사이가 그렇게 좋으세요?

= 정말 좋아요. 놀랍죠. 저희는 이제 저희끼리 만났을 때 그 이야기 하거든요. 아니, 우리 팀은 스태프들 부부도 금실이 엄청 좋은데 다들 좋거든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웃긴데 다들 좋아요. 편집, 프로듀서, 감독 다 좋고요.

그 집 자녀들도 큰 아드님부터 시작해서 막내까지 약간 닭살, 닭살스러운 부분들 애교 뭐 이런 부분들이 다 있고 좋아요.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한테서 본 부분들은 역시나 그렇게 좋구나. 그런 생각을 하죠. 공교롭다. 그런 표현이 맞을까요? 정말 좋습니다.

= (한경수 프로듀서) 가족 분들도 다 그거 보시고 큰 따님은 자기가 내가 언제 저랬지? 기억을 아예 못하시고요. 다 그냥 쿨하게 우리 집만 그런 거 아니잖아. 그러면서 다 인정해 주시고 그리고 영화에는 안 나와 있지만  그렇게 좀 다투시고 나서 다 화해하셔가지고요. 서로 쌈 싸주고 입에 넣어주시고 마당에다 음악 틀어놓고 같이 춤추시고 그러셨어요.
님아, 그 강을 건
● 대장간집 데릴사위가 겪은 현대사

- 할머니가 참 고우세요. 고우신데 할아버지가 데릴사위셨던 거죠? 이를테면.

= 그렇죠. 6년을 그렇게 할머니네 집이 대장간을 해서 그런대로 잘 사셨던 거 같아요. 할아버지는 그렇게 고생고생하면서 어쩌면 고아처럼 세상을 떠돌다가 (할아버지는 열한 살에 조실부모했다) 

서럽게 살다가 할머니네 집에 와서 그렇게 이제  죽기 살기로 일을 해서 할머니와 살림을 차리셨고 그 이후로 아이들 몇 낳고 그때부터는 이제 정말  외로움을 모르고 그렇게 그 애들 먹여 살리면서 어쩌면 외로움보다는 고통스럽고 힘든 세월이었겠지만  외롭지는 않으셨다는 거죠. 자식들이 그렇게 이야기해요. 할아버지께서 한 번도 우리들에게 큰 소리를 내거나 욕을 하거나 매를 때리거나 그러시지 않으셨다고. 그래서 아마 할아버지는 그 가족이 생긴 것에 그렇게 감사하고 그러셨던 거 같아요.

- 가족들은 어떻게 부양을 뭘 하셨어요? 직업이 뭐셨어요?

= 할아버지는 농사로 기본적으로 사셨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산일을 다니셨죠. 산에 가서 벌목하고 예전에는 그런 일들이 강원도에서는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큰 장신은 아닌데 힘이 그렇게 좋으셨다고 그래서 거의 그런 걸로 해서 돈도 잘 벌어서 부양했고 현대사 속에는 신작로를 닦는 그런 사업들 하면 그 길 닦는 작업에도 나가시고 뭐 다양한 그런 몸으로 쓰는 몸으로 하는 일들을 다 잘하셨던 거 같아요.

담장, 축대 쌓는 거 이런 것들 다 일하러 다니셨고 밤에 돌아오시면 당신네 밭농사도 돌보고 이렇게 하면서 살았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굉장히 힘도 좋고 부지런하고 날쌔고 건강하셔서 돌아가시기 1년 전까지는 한 번도 내복을 입어 본 적이 없으시다고.

● ‘평생 4번’ 할머니의 극장나들이 

- 특별 시사영상 제가 봤는데요. 할머니가 인터뷰 잠깐 짧게 하시고 감독님 품에 안겨서 펑펑 우세요. 그게 무슨 상황이었어요?

= 할머니께서 극장에 와서 영화를 처음 본 건 저희도 이제 관객들에게 최초로 공개하던 시점이었어요. 그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한국 경쟁부문으로 저희가 출품을 해서 첫 번째 프리미어를 했는데 그때 할머니 가족을 모셨어요. 그래서 할머니께서 오셔서 그걸 보셨죠.

할머니 90 평생에 처음 극장에 오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들고 오셔서 옆자리에 두고 보셨어요. 그런데 그때 이제 보시고는 굉장히 긴장하셨던 모습이고 조심하시더라고요. 혹시나 실수하지 않으실까 그리고 자녀들도 옆에 많이 와서 그때는 울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이제 할머니께서 그때 이제 그러고 나서 이런 요청을 하셨어요. 노인대학 친구들하고 같이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자식들은 안 와도 된다. 그때 그렇게 해서 횡성에 사시던 분들을 다 모시고 가서 원주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는데 그때 많이 우셨어요. 그러니까 그때 처음 마음과 두 번째 마음 좀 달랐던 거 같아요.

첫 번째는 굉장히 긴장하시고 보고 두 번째는 다들 자녀들도 없고 그래서 온통 그 영상을 보고는 집에 돌아가실 때까지 우셨어요. 그래서 그때 이제 할머니를 안아 드렸던 것이 사진으로 찍혔고요. 그 후에도 두 번이나 보셨어요. 딸이랑 같이 원주에 있는 극장에 가서.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죠.  아니 왜 저렇게 극장을 자주 가실까. 라고 생각을 했는데 추측컨대 극장에 가면 살아계실 때 할아버지 모습이 나오니까 그게 좋으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희들도 안타까운 건 사실 할아버지께서 완성된 영화를 보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할머니께서도 그 말씀은 늘 하시고 그래서 지난 번 1주기 때 산소에 가서 할아버지한테 영화를 보낸다고 생각하고 영화 관련된 포스터라든지 이런 걸 다 태워서 보내 드렸거든요.

- 지금 할머니 어디서 지내시고 앞으로는 어떻게 지내시고 그 횡성 집에 또 가고 싶어 하시지는 않으신지 이런 얘기 혹시 들은 거 있으신가요.

= 지금 이제 할머니께서는 서울에 있는 자녀 집으로 오셨고요. 당신 집 그리워하시죠. 그런데 그 집이 정말 오래된 집이어서 또 할머니가 사시기에는 불편해요. 겨울에는 강원도 추위가 보통 추위가 아니라서 그 이제 그 90된 할머니께서 그렇게 아궁이에 불 때고 이렇게 하시기에는 굉장히 힘들죠.

그래서 이번에는 이제 안전의 대한 것들도 있고 가족들도 다 그렇게 하기를 원하셔서 겨울 동안은 가 계시기로 하고 또 할머니의 대한 지나친 관심같은 부분들이 원만하게 해결되면 향후에는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부분들은 가족들이 의논해서 하시게 될 거예요. 

[카드 뉴스] 人터뷰 - '님아…' 할머니가 영화 보고 또 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