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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형부! 저와 이혼해줘요"…호구제가 부른 코미디

얼마 전 베이징시 하이딩구 인민법원에서 한 편의 코미디가 연출됐습니다. 한 쌍의 남녀가 이혼 소송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서로의 관계와 주장하는 내용이 어이 없습니다.

"형부! 애초 약속했던 대로 이혼해주세요. 원래 가짜로 결혼했던 거잖아요."
"약속은 처제 언니가 먼저 어겼지. 언니가 다시 돌아와 혼인 관계를 회복해줘야 나도 처제와 이혼할 거야."
"그 문제는 두 분 사이에 풀어야죠. 저하고 상관없어요. 빨리 이혼해주세요."
"그렇게 할 수 없어. 언니하고 다시 결혼하지 못하면 처제하고 이혼해줄 수 없어."

말인 즉 두 사람은 원래 형부와 처제 관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혼인 등기를 한 법적 부부 사이입니다. 처제 쪽은 혼인 관계를 정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형부 쪽은 처제와 결혼하기 위해 이혼했던 아내가 되돌아와서 자신과의 결혼 관계를 회복해줘야 이혼에 동의하겠다고 버팁니다.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여성은 샤오리(가명)로 허베이에 살고 있었습니다. 4년 전 이혼하고 아들을 맡아 키우고 있었습니다. 샤오리는 아들을 베이징에 있는 학교로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이 베이징 호구(베이징 시민으로 등록하는 행정 절차)를 얻어야 했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샤오리가 베이징 남성과 결혼해 아들의 호구를 그 남성 밑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고 쉽게 이뤄질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민 끝에 샤오리는 베이징에서 사는 언니 왕모 씨를 찾아갔습니다. 언니 왕 씨는 남편 장 씨와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들도 한 명 있었습니다. 샤오리는 도와달라고 언니와 형부를 졸랐습니다.

결국 지난해 3월 장 씨는 왕 씨와 합의 이혼을 했습니다. 며칠 뒤 처제인 샤오리와 결혼 등기 수속을 밟았습니다. 순전히 법적으로만 그렇게 꾸며놓은 것입니다. 샤오리와 법적 부부가 된 뒤에도 장 씨는 왕 씨와 동거했고 샤오리는 따로 살았습니다.

호구제의 비극
하지만 상황은 이들이 원하던 방향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우선 샤오리 아들의 호구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호구를 얻기 위한 위장 결혼이 워낙 많다보니 심사가 크게 까다로워졌습니다. 원하는 시기까지 학교를 옮기기는 난망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장 씨와 왕 씨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지난해 6월 장 씨 부부가 크게 다퉜습니다. 격분한 왕 씨는 아들을 데리고 친정이 있는 허베이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끝내 화해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가짜 이혼이 실제 상황으로 돌변했습니다.

결국 샤오리는 장 씨와의 서류상 결혼 관계를 청산하기로 했습니다. 그럴만한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장 씨가 이혼에 동의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호구제의 비극
샤오리가 법정에서 펼친 주장은 이렇습니다. "결혼 등기를 한 이후에도 장 씨와 단 하루도 동거하지 않았습니다. 장 씨와의 사이에 부부로서의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사실상 부부 사이가 아닌 만큼 이혼을 허락해줘야 합니다."

이에 대한 장 씨의 반박입니다. "이혼을 거절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저는 순전히 샤오리 아들이 베이징 호구를 얻도록 도와주기 위해 아내인 왕 씨와 거짓 이혼을 했습니다. 서류상으로만 샤오리의 남편이었을 뿐 왕 씨와 사실혼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왕 씨가 저와의 법적인 결혼 관계를 회복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 결혼 관계가 보호되지 않는다면 처제와의 이혼에 동의해줄 수 없습니다. 왕 씨가 돌아와서 제 아들이 베이징에서 학교를 다녀야 이혼에 응할 것입니다."

법원의 판단은 어떠했을까요? 샤오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결혼 등기는 감정에 기초해 이뤄지는 법률 행위입니다. 하지만 샤오리와 장 씨의 결혼은 비록 상호 동의 아래 이뤄졌지만 순전히 호구 관리 관련 법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자, 편법적으로 호구를 얻기 위한 방법이었을 뿐 감정적 기초가 전혀 없습니다.

쌍방에 부부 감정이 형성되지 않은 결혼 등기를 보호하기 위해 혼인 관계를 계속 유지, 존속하도록 하는 것은 중국 혼인법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이혼을 받아들입니다."

자신만 억울하게 됐다는 장 씨의 호소에 담당 판사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국가의 정책이나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서 하는 허위 결혼, 허위 이혼을 국가가 순순히 처리해주면 해당 법률이 무력화되는 위험에 빠집니다. 한 순간의 이익을 탐해 자신의 권익을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사실 중국 법원의 판단은 당연한 것입니다. 샤오리와 장 씨는 위장 결혼, 일종의 계약 결혼을 한 것으로 진정한 결혼 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만큼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장 씨도 샤오리와의 결혼 생활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왕 씨와의 결혼 복원을 위해 일종의 협박 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도입니다. 그러니 법원이 이들의 결혼 유지를 위해 노력해줄 하등의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장 씨의 입장만 놓고 보면 분명히 억울한 상황입니다. 앞서 법관이 장 씨에게 했다는 꾸지람은 어폐가 있습니다. 장 씨와 왕 씨의 이혼 역시 허위 이혼입니다. 허위 결혼을 보호해줄 수 없다면 허위 이혼도 무효인 것 아닐까요? 아울러 장 씨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혼하지 않았습니다. 순전히 아내의 부탁으로 처제를 도와주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처제의 부탁을 들어주다 아내도 잃고, 아들도 잃고 외톨이가 됐습니다.

호구제의 비극
결국 이런 코미디가 연출된 가장 큰 이유는 중국 호구제의 불합리성입니다. 이미 이 코너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해드렸습니다. 도시 재개발 과정의 입주권을 얻기 위해 친어머니와, 사돈과 법적 결혼을 감행합니다. 양로 복지 혜택을 얻기 위해 친아버지와 결혼 등기를 합니다.

경제적 이득을 위해 법 형식적이라도 인륜을 저버린 당사자들에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을 유도하는 제도 역시 잘못됐습니다. 물론 호구 제도는 과도한 인구의 도시 집중을 막고 각 지역을 효율적 관리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균형 발전을 통해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호구제로 무조건 막기만 하니 앞서 본 황당한 상황들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는 호구제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거듭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지 개선안은 감감 무소식입니다. 제2의 장 씨가 나오지 않도록 서둘러야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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