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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찌라시라면 왜 수사하나…대통령 눈치만 보는 여당"

이재오의 자성 "바른 말 하는 충신이 있어야 나라가…"

[취재파일] "찌라시라면 왜 수사하나…대통령 눈치만 보는 여당"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세간의 관심이 '문고리 3인방', 정윤회란 인물에 집중돼 있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고만 하는데,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의혹이 풀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여 걱정입니다.

야당의 ‘공방용 비판’ 수준을 넘어, ‘이대로 계속해서 의혹만 확산되다간 박근혜 정권의 남은 임기는 어떡하냐’는 걱정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걱정들, 청와대와 여당에만 들리지 않는 걸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당 내에서 모처럼 시원한, 신랄한 비판이 나왔습니다.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낸 인물은 정치권에서 ‘여당 내 야당’ 이라 불리는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입니다.

 9일 오후 2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는 여야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학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개헌추진연대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하루 만에 무려 134건의 법안을 부랴부랴 처리한 국회 본회의가 열린 날이어서 참석한 의원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일정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대통령이 “개헌 안된다”고 못박은 상황에서 ‘찍히고 싶지 않은’ 이유도 물론 있었겠죠.)

개헌, 헌법 고치자는 딱딱한 얘기 토론하는 자리라 의원들이나 몇 명 참석하겠지 싶었는데, 행사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학계 인사 등 3백 여명의 개헌 지지자들이 참석했다는데, 빈 자리가 없는 수준을 넘어 비좁은 통로 바닥에 앉거나, 뒤쪽에 서서 행사 끝날 때까지 개헌논의를 들으려는 인파가 행사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 “헛소문이 아니라 뭔가 있으니까 저렇게 난리를 치지...”

이재오 의원의 거침없는 발언부터 보겠습니다.

 "대통령 주변에는 전부 한자리 하고 싶은 사람들로 몰립니다. 그래서 실세 측근이 생기는 건데, 문고리 3인방, 정윤회가 실세다 하고 전부 몰려들었습니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대통령은 찌라시라 하지만 찌라시 같은 거라면 헛소문 모아놓은 건데, 헛소문이면 그거 수사를 뭐하러 합니까? 놔두면 되지. 뭐가 있으니까 저 난리 치는 것 아닙니까? 이게 대통령제가 갖고 있는 폐해입니다. 그러니 나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것이고, 바뀐 시대에 맞는 헌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랜만의 시원하고도 거침없는 비판이었습니다. 헛소문이면 뭐하러 수사를 하겠나, 난리를 치면서도 아무런 비판도 할 수는 없는, 연말 정국 온 나라를 뒤흔든 비선실세 의혹에 대해 대통령제의 폐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러니 나라가 제대로 될 수 없어 개헌을 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대통령이 못하게 막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픽_여야 국회
● “눈치만 보는 여당…봉건왕조 때만도 못해”

이 부분 역시 발언부터 보겠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보다 불과 1% 지지를 더 받은 여당은 5년 내내 대통령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어요. 대통령이 청와대에 여당 지도부 불러 오찬을 했는데 아무 소리 못하고 나왔어요. 나라가 문건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아무 소리 못하고 대통령 눈치만 보는 당이에요. 옛날 조선왕조 500년을 어떻게 유지했느냐, 왕조가 어지러울 때도 그때마다 충신들이 있어서 나라가 유지된 겁니다.

지금은 장관이고 의원이고 대통령 앞에만 가면 ‘악’ 하고 가만히 있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각하 박수칩시다” 하면 나라가 되겠습니까? 봉건왕조 때 신하만 못합니다. 사실 여부 떠나서 국민들이 대통령과 청와대 불신하고 있으니, 문건이 사실인지 가려야 하지만, 나라가 이렇게 흘러가면 안됩니다. 따끔하게 말해야 청와대도 정신차리지, 말을 안하니 국민도 당도 '아무 소리 안하는구나' 하고 마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한 자리는 무색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온 나라가 시끄러울 만큼 국민적 의혹으로 떠오른 부분에 대해 할 말을 하기는 커녕, 대통령께 ‘각하’라고 외쳐 때 아닌 ‘각하’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불통’ 논란이 지속되는 현 정부에 대해 누군가 따끔하게 지적해주고, 이제라도 제대로 바로잡고 갔으면 하는 국민들 많으실텐데 여당은 대통령 만나서 박수 치고 듣기 좋은 말씀만 드리다 나온 셈이죠.

이재오 의원은 “따끔하게 지적을 해야 하는데 아무 말도 안하고,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데 나라가 이렇게 흘러가서는 안된다” 하며 호되게 비판했습니다. 당 내부에서 따끔한 지적을 받은 여당 의원들 반응은 어땠을까요?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당직자는 "이 의원이 평소에 해온 얘기"라며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굳이 친이계 좌장으로서 늘 대통령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외면하기엔 아픈 지적이었을 듯 한데, 듣기 싫은 비판은 애써 외면하는 걸까요? 청와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늘 하는 소리’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비선실세 의혹과 개헌을 연결짓는 건 뜬금없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불신과 의혹이 가득한 국민적 우려가 청와대와 여당에만 들리지 않는 걸까요?

● "세월호 참사 대통령이 책임져야…정홍원 총리는 장기판의 졸?"

뼈속까지 달라지겠다고 외쳤던 세월호 참사, 하지만 유족들의 외침은 끝까지 외면했던 대통령... 이 의원은 정부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지 못한 것도 대통령제의 폐해라고 지적했습니다. 책임지고 물러났다 다시 돌아온 정홍원 총리는 ‘장기판의 졸’에 비유했습니다.

"왜 국민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나, 그러니 정부가 책임져라 이거 아닙니까? 적어도 내각 총사퇴해야 합니다. 내각 총사퇴 못하는 것이 내각 수반이 국가 원수라 우리 헌법에 대통령이 내각 수반을 겸하고 있어서 대통령이 그만둘 수가 없으니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총리가 그만 뒀다가 다시 앉혔다가 ...장기판의 졸로 압니까? 이게 대통령제 폐해 아닙니까? 여러분. 적어도 국가원수와 내각수반 나누자 이겁니다."
그래픽_이재오
개헌추진 국민연대 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70.3%가 “개헌논의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국회의원의 92.8%가 “개헌에 찬성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안된다고 했고, 김무성 대표의 개헌 발언과 번복 논란으로 한차례 파란도 겪었으니 실제로 개헌을 논의하기 시작하는 것도 어려울 거란 걸 국민들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감히 아무런 비판도 할 수 없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국민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의혹은 함께 풀어가는 그런 현실을 꿈꾸는 건 너무도 비현실적인 걸까요? 이재오 의원 말고도 새누리당 일부 소장파 의원도 조금씩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는 합니다. 아직은 극히 일부이지만 “불통 해소해야 한다”, “의혹은 해소하고 가야 한다”는 여당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걸 계기로, 잘못된 부분 찾아 지적하고, 함께 꼬인 정국을 풀어갈 해법을 모색해가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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