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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죽기 전에 물려줘라' 일본, 증여 독촉하는 이유는?

[월드리포트] '죽기 전에 물려줘라' 일본, 증여 독촉하는 이유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가 가진 돈을 빨리 손자, 손녀, 자녀에게 물려주도록 하는 3번째 조치가 일본 정부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일본의 한 언론사는 단독보도라며 일본 정부가 '결혼, 출산, 육아 비용에 대해 최대 1,500만 엔까지 증여세를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기사를 썼습니다. 노인 세대에서 젊은 세대로 돈의 이전을 촉진해 소비 활성화를 유도하려는 조치인데, 오는 30일 발표될 세제대강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이미 일본 정부는 두 가지 증여세 면세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데, 1. 조부모의 손자 교육자금 1,500만엔 2. 자녀, 손자의 주택구매 자금 1,000만 엔이 대상입니다.

1. 일본 고령자는 얼마나 부자인가?

젊은 사람은 가난하고, 노인들은 부자인 상황은 일본이 우리보다 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제일생명경제연구소 자료를 보면, 일본인 전체의 금융자산은 1,500조엔 규모입니다. (우리 국민은행 자료를 보면, 한국인의 개인 금융자산은 2,600조 원 수준인데, 일본이 5배 이상 더 많습니다.) 그런데 70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자산이 555조 엔이고, 60대 고령자는 451조 엔입니다.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전체 금융자산의 60% 이상을 가지고 있고, 70대 이상이 가진 자산이 60대보다 많은 상황입니다. 6,70년대 고도경제성장기와 8,90년대 버블시대를 살아오면서 많은 부를 축적한 겁니다. 여기에다 일본 고령자의 연금은 월평균 20만 엔이 넘습니다. 일본은 현재 연금이 하나로 통합된 상태여서 일반 직장인과 공무원이 똑같은 후생연금을 받습니다. 그런데 평균이 매달 20만 엔이 넘으니까, 비교적 괜찮은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했다고 하면 연금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그런 수준입니다.

2. 왜 증여를 독촉하나?

일본 여성의 평균 수명은 87세이고, 남성의 평균 수명도 80세를 넘었습니다. 이 얘기는, 부모가 사망해 자녀가 재산을 상속받으면, 그 자녀의 나이도 이미 50대 후반이나 60대라는 얘깁니다. 그럼 재산을 상속받은 늙은 자녀도 새로 사업을 벌이거나 딴 곳에 투자하기 보다, 자신의 남은 인생을 위해 상속 재산을 꼭 쥐고 있기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꼭 필요한 생활비 말고는 상속받은 돈이 장롱이나 은행에 그대로 쌓여 있게 됩니다. 돈은 돌아야 돈 구실을 하는 데 돈이 돌지 않으니까, 일본 정부가 증여세를 면세하는 조치를 통해 돈이 돌도록 하려는 겁니다. 증여세 면세 때문에 감소하는 세금도 돈이 돌아 경제를 활성화해서 거둬들이는 세금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대신 일본은 상속세는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중의원 선거 때, 일본유신회는 상속세 100%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죽기 전에 모두 주거나 쓰지 않으면, 남은 재산은 모두 국가에 귀속된다는 얘깁니다. 물론 선거공약 상의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정책입니다만, 그만큼 돈이 돌지 않는 데 대한 위기의식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3. '부의 대물림' 논란은 없나?

한국에서도 한 국회의원이 교육비 증여 면세법안을 추진했지만, '부의 대물림' 논란 끝에 입법을 포기했습니다. 그럼 일본에서는 이런 논란이 왜 없을까요?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일본 할아버지의 부의 불평등이 한국보다 심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큰 부자가 아니어도 자녀에게 교육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할아버지가 많다는 얘깁니다. 또한, 운명에 순응하는 일본인의 운명론적인 가치관도 꼽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약자를 지원하는 복지 시스템이 선진국 수준이라는  점입니다. 교육시스템만을 보면, 일본은 부자들과 일반시민의 가는 길이 어렸을 때부터 분리된 듯한 사회입니다.

일본의 대학 순위는, 대체로 1위부터 8위까지는 모두 국립대학이고, 우리가 잘 아는 명문 사립대학인 게이오와 와세다는 그 아래입니다. 그리고 명문 사립대를 가려면 유치원부터 그 대학 부속유치원에 가서 고등학교도 부속고등학교를 나와야 합니다. 게이오 부속고등학교 출신이 게이오대학에 대부분 입학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부자들의 길입니다. 대신 가난한 시민은 사교육 시장에서 부자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녀가 학교 수업만 열심히 받고도 명문 국립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교육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의 자제들도 공교육만으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겁니다. 여기에다 사회복지도 우리보다 몇 수 위입니다. 자녀는 중학교 때까지 아동수당이 나오며, 또 중학생 때까지는 모든 병원비와 약값이 무료입니다. 이런 사회적 안전장치가 잘 유지되는 상황이어서 증여세 면세에도 '부의 대물림' 논란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지금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인구급감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내수가 수출보다 비중이 큰 일본에, 인구감소와 고령화는 경제의 대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인구전문가는 일본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인구감소 충격을 피할 수 없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사회복지 제도를 잘 정비해도, 나보다 내 자식이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한, 엄마들이 자녀 낳기를 꺼리게 되는 거겠지요. 어쨌든 일본은 경제 대재앙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인구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어떤 정책이 있고 어떤 효과가 있는 지, 한국 사회에도 적용가능한 지, 주도면밀하게 공부해야 하는 게 지금 한국의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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