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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문제는 '비선'(秘線)?

[취재파일]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문제는 '비선'(秘線)?
최태원 SK 회장, 이재현 CJ 회장,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 이 세 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언뜻 떠오른 것은 재벌이라는 점, 그리고 범죄 혐의로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는 점일 것이다. 한 사람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수감생활을 하고 있고 두 사람은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이른바 ‘비선’(秘線)으로 인해 문제가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회삿돈 수 백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된 최태원 회장의 사건 배후에는 김원홍이라는 역술인이 등장한다. 김 씨는 실제 역술인이라는 말도 있고 주역에 심취한 증권사 직원이라는 말도 있지만 실제 이력이나 경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 씨가 실제 정치인이나 재벌들을 상대로 투자자문을 해주면서 이름이 알려졌고, 최 회장에게도 자문을 해줬는데 그 내용이 적중하면서 신임을 얻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김 씨는 SK해운 고문에 올랐다. 이후 최 회장은 김 씨에게 개인돈 5천억 원 선물투자를 맡겼지만 손실이 났고 회삿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재현 연합 500

이재현 CJ 회장의 경우 지난해에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당초 불씨가 된 사건은 2008년에 발생했다. 이 역시 이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비선라인인 이 모 씨와 관련된 청부살인 사건이었다. 이 씨가 이 회장의 비자금을 굴리는 과정에서 지인에게 건너간 돈을 회수하기 위해 일을 꾸미면서 살인을 청부한 것이다. 이 씨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들어와 CJ 재무팀에 근무했다는 것 외에는 외부로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다. 엉뚱하게 발생한 강력사건으로 CJ그룹 비자금 관련 내용이 수사기관에 들어갔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5년이 지난 지난해 수사가 이뤄진 것이다.
이혜경 캡쳐_500

동양그룹도 사내 디자인 업무를 총괄하던 이혜경 부회장이 인테리어 등 업무를 하는 김철 씨를 알게 되면서 일이 시작된다. 김 씨는 이 부회장에게 디자인 등 조언을 하면서 신임을 크게 얻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의 전폭적 신임을 얻은 김 씨는 동양의 계열사 대표자리까지 올랐고 이 부회장 아들의 멘토 역할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동양사태도 그룹이 추진해 온 구조조정에 기업 내부 담당자보다 김 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벌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데, 김 씨 역시 한예종을 중퇴했다는 것 외에 특별한 이력이나 경력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검찰 정윤회 청와대

현재 청와대는 ‘문건유출 사건’으로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박지만-조응천 대 정윤회-3인방 구도의 권력싸움의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 사건도 문제의 도화선은 정윤회라는 ‘비선’ 에 있다.

물론 비선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다. 드러내놓고 처리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있으며 공식 라인과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요 의사결정이나 정부 인사 등에 비선이 공식 라인보다 우선한다면 이를 둘러싸고 (본인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높다. 재벌 사례를 봤듯, 국정과 관련된 비선라인 문제는 최고 책임자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문건 내용의 사실 여부보다 유출 부분에 수사 초첨을 맞출 것이 예상된다. 설령 문건에 나온 내용이 사실이라고 해도 문건에 나온 관련 당사자가 내용을 확인해 줄 리 만무하고, 대통령이 이미 “문건 유출은 국기 문란행위” 라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누가 문서를 유출했느냐’,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가’를 밝히는 선에서 그친다면 앞으로 청와대에서는 이 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사건은 권력을 둘러싼 파워게임의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어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그 동안 공식 라인을 제치고 막후에서 비선 라인과 주요 결정을 해 왔다는 것(또는 그런 소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박 정권은 근래 어느 정권보다 투명하지 않고 예측이 어려우며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다.

이 사건은 검찰 수사로만 풀릴 문제가 아니다. 박 대통령이 주요국정 사안을 비선이 아닌 공식 라인과 상의해 결정하고 언론 등 외부와 자유로이 소통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이른바 ‘국정농단세력’ 논란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길이자 박 대통령 본인도 위태롭게 만들지 않는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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