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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술을 마신 의사가 어떻게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나요?"

[취재파일] "술을 마신 의사가 어떻게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나요?"
한밤 중 병원 응급실을 가본 사람들은 한번쯤 경험했을 겁니다. ‘아비규환’ 아픈 사람은 많고, 의사는 적고. 밀려들어오는 환자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의사들 틈에서 도대체 내 차례가 오기는 할까, 기다리는 게 아픈 것보다 더 힘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야간 병원 응급실에서는 1차적으로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환자들을 돌봅니다. 하지만 모든 진료를 다 도맡아 할 수 없기 때문에 각 과 별로 당직자가 병원에 상주하면서 대기합니다. 큰 대형 병원을 제외한 대부분 병원의 당직 의사는 과 별로 한두 명 정도입니다. 간단한 질환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진료할 수 있지만, 정밀한 진료가 필요할 때는 이 당직 의사들이 밤새 환자를 봐야 합니다. 환자 입장에서야 야간 당직 의사가 많으면 좋겠지만, 여건이 되는 병원이 많지 않습니다.

‘음주 수술 의사’ 사건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서라도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병원 측이 설명한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그날 밤 이 병원의 성형외과 당직은 레지던트 2년차 의사였습니다. 금요일 밤이라 환자가 많았는지 정신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늦은 밤 레지던트 1년차인 문제의 의사가 선배들과 저녁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병원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 응급실에서 턱이 찢어진 환자의 수술을 위해 성형외과 당직 의사를 찾는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직이었던 2년차 의사는 야식을 먹고 있었는데, 1년차 의사가 ‘자신이 하겠다’며 자진해서 수술실에 갔다고 합니다.

환자는 3살 난 어린 아이었습니다. 한 밤중에 집에서 미끄러져 턱이 찢어진 바람에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응급실에 왔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수술하러 온 의사가 위생장갑도 끼지 않았고, 실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냄새가 나진 않았지만, 눈은 풀려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부모가 이 의사에게 항의를 하고, 급기야 경찰을 불렀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가세했습니다. 응급실 앞에서 의사가 음주 측정기에 입김을 불었는데, 알코올을 섭취했다는 신호가 울렸습니다. 그제서야 병원에서는 다른 의사가 재수술을 하도록 해줬다고 합니다. 턱이 찢어져 피를 흘리는 아이를 앞에 두고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인지, 환자 부모가 촬영한 영상을 보니 저도 화가 나더군요. 환자들도 다 압니다. 환자 한명에게 1분 이상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의사, 자다 내려와서 겨우 눈만 뜨고 있는 의사, 이번엔 술까지 마신 의사...환자들은 줄곧 의사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은 응급실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야간 응급실이라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한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아무도 그 의사에게 수술하지 말라고 하지 않은 걸까요. 당직이었던 2년차 선배도 알았을 텐데, 동료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그 의사가 술을 마신걸 알았을 텐데요. 환자 가족들은 이렇게 따져 물었습니다. ‘의사가 술을 마시고 수술을 하는 게 말이 되냐’고요. 저는 하나 더 묻고 싶었습니다. ‘술을 마신 의사가 어떻게 수술실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거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날 술을 마신 의사가 환자를 진료해도 제지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의료진이 스스로 그를 제지하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의사는 품위를 손상했다며, 1년 미만의 자격 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음주 운전을 하다 걸릴 때처럼 면허가 취소되진 않습니다. 그나마도 의료사고가 날 경우에 이런 처분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의료사고가 의료진의 실수로 일어난 것이라는 걸 누가 인정해 줄까요. 환자가 밝혀내야지, 병원 측에서 먼저 나서서 책임지려 하지 않죠. 의사가 술을 마시고 의료 행위를 해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으면 그냥 그걸로 끝인 겁니다. 이번 사건으로 문제의 의사는 파면됐고, 관련자 10여 명은 보직 해임됐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직업 윤리에만 기대기엔, 환자들은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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