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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거인' 김태용 감독 "성장 영화, 왜 청소년이 못 보죠?"

[인터뷰] '거인' 김태용 감독 "성장 영화, 왜 청소년이 못 보죠?"
감독의 머릿속엔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단순한 스케치 차원이 아닌 정밀 묘사에 가까운 꽉 찬 그림으로 말이다. 하지만 어떤 감독에게 영화란 머리가 아닌 마음속 그림과 같다.

김태용 감독의 '거인'은 마음으로 쓰고, 만든 영화다. 불우한 상황에 놓인 한 고교생의 '버티는 삶'을 너무도 정밀하게 묘사해냈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실화다. 

감독은 "10대를 다룬 영화들의 공통된 소재인 왕따, 학교 폭력, 강간이 등장하지 않는 차별된 성장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무엇보다 그런 영화는 정작 10대가 볼 수 없다. 청소년 영화 속 10대들은 순응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아이들이 생각만큼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거인'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올해 28살인 감독은 '거인'을 20대가 지나기 전에 꼭 완성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른의 시선에서 청소년을 바라보지 않고, 20대의 눈높이에서 본인이 겪고 느꼈던 10대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인'은 지난 10월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 평론가상'과 '올해의 배우상' 2관왕을 차지했다. 이 영화는 지난 13일 개봉해 전국 관객 2만 명을 동원했다. 작은 영화의 큰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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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은 내 이야기…그렇게 살았다"

'거인'이 남다른 성장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던 건 시작도 끝도 감독 덕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태용 감독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부모와 떨어져 그룹홈에서 생활한 바 있다. 또 영화 속 '영재'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악다구니에 가까운 발버둥을 쳤다고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이 17살인데, 그 무렵 내 삶을 슬라이스 해 두 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한 것이다. 실제로 그런 곳에 살았고, 집에 돌아가기 싫어서 신부가 되려고 했었다. 여기에 '과연 이 소년이 버티기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상상하며 뒤의 이야기는 추가로 만들었다"

김태용 감독이 가장 잘 알고 잘 만들 수 있는 이야기임이 분명했다. 감독은 20대의 끝자락에서 어두웠던 과거와 작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모가 마련해준 환경이나 혜택을 받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더 이상 부모를 원망할 수 없고 자기가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앞으로 난 어떤 힘으로 살아가야지 싶더라. 이젠 과거의 것들로부터 헤어져야겠다 싶었다.

'거인'은 여느 성장 영화와는 다르다.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그러면서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영악하기까지 한 소년이 어떻게 자신을 지켜나가는지를 살벌하게 보여준다. 

"10대를 드러내는 영화들이 자극적인 소재가 많았다. 난 왕따, 폭력, 강간이 등장하지 않는 성장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영화는 정작 10대는 볼 수 없지 않나. 10대가 가질 수 있는 감정들, 특히 서글픈 영악함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 여러 인물을 보여주는 대신에 한 인물의 여러 가지 감정을 깊이 있게 다루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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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식이 보여준 어떤 10대의 '서글픈 영악함'

역시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재'라는 인물이다. 17살의 이 소년은 무책임한 아빠와 나약한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룹홈에서 생활한다. 시설을 떠날 나이가 된 영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룹홈의 보호자 부부 앞에서는 천사처럼 행동을 하지만, 뒤돌아서서는 절도와 거짓말을 일삼는다.

얼굴은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영락없는 10대지만 마음과 행동은 능구렁이 같은 어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감독이 그리고자 한 것은 나이에 비해 징그러울 정도로 영악해진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 서글픈 영악함은 최우식이라는 배우와 만나 징그럽도록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최)우식이는 내 인생의 최고 걸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은 연기를 해줬다. 영재를 연기했다기보다는 영재로 한 달간을 살아냈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는 마스크 자체는 밝고 선한데 눈에 세상을 향한 불만 같은 것이 많아 보였달까. 그래서 감정의 깊이가 큰 영화를 하면 그 점이 잘 드러나겠다 싶더라. 처음엔 캐스팅 제안을 여러번 거절하더라. 신인 배우인 자신이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홀로 끌고 갈 자신이 없었다더라"

그러나 감독의 끈질긴 구애 끝에 최우식은 영재로 카메라 앞에 섰다. 드라마 연기에 익숙했던 최우식은 영화 현장에 적응하는데 가장 많은 애를 먹었다고.

"영화는 감독과의 소통이 중요한데 그 과정을 힘들어하더라. 또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연기한다는 것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프리 프로덕선 단계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아온 아이라 영재의 삶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 아이 나름대로 해외에서 살 때 이방인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정서라 생각해 그 감정을 많이 반영하라고 했다"

'거인'엔 클로즈업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불안한 영재의 심리를 드러내는 데 있어 이 만큼 적합한 카메라 워킹은 없었을 것이다.

"경험이 적은 연기자들은 감정을 차곡차곡 쌓는데 미숙하다. 그래서 가장 좋은 컷은 1,2번째 테이크에 나온다. 우식이의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카메라를 얼굴 깊숙이 들이댔다. 대신 자유롭게 연기하라고 했다. 그러면 캐치는 우리가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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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를 넘어선 남녀 관계에 관한 작품 준비중"

김태용 감독이 처음부터 영화 연출자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감독보다는 배우를 다루는 매니지먼트나 학원을 운영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다 보니 배우에 대해 어떤 동경 같은게 있었다. 배우는 자기를 벗고 남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지 않나. 연극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연극 영화과에 갔다가 영화에 눈 뜨게 됐다. 영화를 통해 삶을 치유 받는 느낌이었달까"

부산에서 태어난 것이 감독의 작품 세계를 확립하는데 토양이 됐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유럽의 예술 영화는 그에게 훌륭한 레퍼런스(참조)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사회와 소재를 다루는 유럽 영화들을 많이 봤다. 그것을 우리나라 식으로 변주했을때는 어떤 느낌으로 완성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얼어붙은 땅'이란 작품을 만들었다"

김태용 감독은 25살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며 만든 영화 '얼어붙은 땅'이 칸국제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영화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연애', '인생은 새옹지마' 등을 만들며 본격적인 연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유난히 상복이 많았다. 이에 대해 그는 "일종의 보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이 너무 외롭고 배가 고픈 것이라 자기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면 절대 오래갈 수 없다. '얼어붙은 땅'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갓 1편의 장편영화를 발표했기에 미래가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상업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작품이 탄생될지 궁금해진다. 김태용 감독은 현재 선생과 제자의 위험한 사랑을 다룬 '여교사'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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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관심사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극한까지 갈 수 있느냐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치정극이 보통 윤리에서 부딪히는데 '여교사'는 그것을 뛰어넘는 감정을 다루는 영화다"

'거인'의 홍보 활동 막바지에 접어든 김태용 감독은 마음 한켠으론 이 작품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고백했다. 그는 "시나리오 쓸 때도, 영화 찍을 때도 힘들지 않았는데 이런 홍보 과정은 힘들다. 왜냐하면 나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야 하니까. 인터뷰 할 때는 괜찮은데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웬지 모르게 공허하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다른 영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교사'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말하면서도 "김수현 선생님의 드라마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엄마가 뿔났다'를 정주행하면서 한 일주일 정도는 쉬고 싶다. 하지만 창작의 일이라는 건 늘 생계불안을 동반하는 일이라 그런 여유가 허락되지 않을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김태용 감독은 2014년 영화계가 발굴한 거인이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 에너지가 차기작에서도 발산되기를 기대하고 기다려본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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