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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825년 만에 등장한 '십상시'

[취재파일] 1825년 만에 등장한 '십상시'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내부 문건 보도 파문이 연말 정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십상시 게이트’입니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8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의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이 달린 문건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문건에는 현 정부 비선실세로 항간에 회자되어온 정윤회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비서 3명이 청와대 내부 인사와 외부에서 만나 국정정보를 교류하고 김기춘 비서실장 등을 포함한 청와대 인사에 영향력을 미치려 했다는 주장이 담겨있습니다.

문제의 문건은 올해 1월 6일 작성됐고, 당시 증권가 찌라시(정보지)와 정치권에 떠돌던 `김기춘 비서실장 중병설 및 교체설' 등의 루머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파악하려는 '감찰'의 목적이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특히 이 문건에는 정 씨와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을 포함한 10명의 인사가 정기적으로 만났고, 청와대 내부 사정과 인사 문제를 논의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문건은 3명의 실명을 적시하고 있으며, 10명에 대해선 ‘십상시’라는 표현까지 동원했습니다.

지난 주말 제가 만난 지인들 상당수는 ‘십상시’(十常侍)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중국 지역 연구를 해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5천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에서는 악명 높은 환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진나라의 승상 조고는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해 맏아들 ‘부소’를 자결하게 만든 뒤 어리석은 ‘호해’를 황제에 등극시켜 국정을 농단했습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의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당나라 현종 때는 ‘고력사’란 환관이 득세했고 명나라 영종 때는 ‘왕진’이란 내시가 60개의 창고에 보물을 쌓을 만큼 치부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영종이 몽골과의 전투에서 생포되는 ‘호목의 변’을 당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시대를 어지럽힌 이런 환관들의 악행도 ‘십상시’ 앞에 서면 작게 보일 정도로 ‘십상시’는 중국 역사에서 최악의 환관, 최악의 간신을 뜻하는 대명사입니다. ‘십상시’는 이미 공식 역사책인 <후한서>는 물론 소설 <삼국지연의>에도 자세히 언급될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럼 후한 시대에 환관이 유난히 득세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권력은 최고 권력자와의 물리적 거리에 비례합니다. 내시들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황제를 모실 뿐만 아니라 황제의 내적인 비밀, 특히 성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후한 황제들은 대체로 어린 나이에 즉위해 외척에 많이 휘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척의 발호를 견제하는데 환관만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외척의 입장에서도 환관들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황제의 어머니인 태후가 섭정할 때 자신의 방에서 주요 대신들과 은밀히 국정을 의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진시황의 어머니인 조희가 국정을 상의한다는 명분으로 당시 승상이었던 여불위를 궁내에 불러놓고 간통한 것이 밝혀진 뒤로는 이른바 ‘내외의 법도’가 엄격히 지켜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하는 환관이 중간에서 ‘사자’(使者)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후한을 망친 10명의 내시 즉 ‘십상시’는 ‘당고의 화’를 일으켜 유생 수 천 명을 학살했습니다. 하태후의 오빠 하진을 살해하는 ‘십상시의 난’ 여파로 원소의 공격을 받아 장락궁이 피로 물드는 참극을 빚었습니다. 수염 없는 사람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져 실제로 환관이 아닌데도 수염이 없다는 이유로 죽은 사람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온갖 전횡을 일삼다 자신들도 비참한 최후를 맞은 ‘십상시’의 죄목을 중국 역사서와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1. 범상작란(犯上作亂) 윗사람을 해치고 난을 일으켰다.

2. 기군망상(欺君罔上) 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우롱했다.

3. 호가호위(狐假虎威) 황제의 권위를 이용해 횡포를 부렸다.

4. 매관매작(賣官賣爵) 가렴주구(苛斂誅求) 관직과 작위를 팔아 사리사욕을 채웠고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다.

5.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謀其政) 공식적인 지위에 있지 않은 사람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어겼다.


‘십상시’의 농간을 그 시대에 체험했던 제갈량은 <출사표>에서 후한이 망한 이유로 ‘친소인. 원현신’(親小人, 遠賢臣) 즉 소인을 가까이 하고 현명한 신하를 멀리한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환제, 영제의 무능함을 탄식하며 통탄했습니다.(未嘗不嘆息痛恨於桓靈也). 중국 역사를 보면 요순 임금이 ‘성군’의 대표라면 하나라 걸 임금과 은나라 주 임금은 ‘폭군’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후한의 환제와 영제 즉 ‘환령’(桓靈) 두 황제는 ‘암군’의 대명사입니다. ‘혼군’(昏君)이 글자 그대로 사리에 어두운 임금이라면 ‘암군’(暗君)은 아예 사리에 캄캄한 군주입니다. 특히 ‘십상시’의 농락에 놀아나 정치는 게을리 한 채 주색에만 빠져버린 ‘영제’는 지금까지도 가장 멍청한 군주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습니다.
검찰 정윤회 캡쳐_

‘십상시의 난’은 서기 189년 8월에 일어났습니다. 그로부터 무려 1825년이 지난 2014년에 ‘십상시’란 말이 우리나라 권력 심장부인 청와대 내부 문건에 등장했습니다. ‘십상시’로 지목된 인물들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이를 보도한 신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건 유출을 국기 문란 행위로 규정하고 일벌백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야당은 이 사건을 ‘십상시 게이트’로 명명하고 상설 특검과 국정조사까지 촉구하며 정치 쟁점으로 삼겠다는 방침입니다.

박 모 경정이 작성했다는 문건의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와 누가 문서를 유출했는지는 검찰의 고강도 조사로 조만간 밝혀질 전망입니다. 만약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박대통령과 당사자들에게 돌이키기 힘든 명예훼손을 한 것이고 반대로 사실로 드러난다면 현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됐든 21세기 첨단 IT 시대에 후한말의 ‘십상시’란 표현이 언급되며 대한민국 최대 이슈로 떠오른 것을 보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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