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人터뷰] 빈민 봉사 48년…파란 눈의 '달동네 친구'

<앵커>

며칠 전 한 민간 재단이 파란 눈의 노(老)신부에게 큰 상을 줬습니다. 한국의 빈민들을 위해 청춘을 바친 뉴질랜드 출신의 이 신부는 표창은커녕 영주권 발급도 거부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분의 삶을 통해서 오늘날 한국과 한국인의 모습을 뒤돌아 봅니다.

이주형 기자의 인터뷰입니다.

<기자>

오늘(29일) 인터뷰의 주인공은 강북의 한 오래된 동네에 삽니다.

안광훈 신부. 이 동네에서만 네 번의 철거를 겪었고, 이 집이 다섯 번째 전셋집입니다.

[안광훈 신부/본명 로버트 존 브레난 : (신부님, 이 집에 사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 집? 한 2년 반. (2년 반이요?) 네.]

평상복을 입고 다세대주택에 사는 이 무뚝뚝한 신부가 한국에 온 건 48년 전, 그가 25살 때 일입니다.

[안광훈 신부/본명 로버트 존 브레난 : 서울역 앞으로 해서 남대문에 갔는데 그 때 남대문에 황소 한 마리가 수레를 끌고 돌아가고 있었어요.]

강원도 정선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병원 세우는 일을 주도하며 70년대를 보낸 안 신부는 80년대 초 서울 목동 성당에 오면서 본격적으로 빈민사목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갈 데 없는 안양천 변 철거 빈민들을 성당 건물에 품는 한편 이주 단지를 마련하는데 힘을 보탰습니다.

[안광훈 신부/삼양주민연대 대표 : 난 재개발 반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 지역 재개발했어야 하는데 단지 그 지역 주민들을 위해 개발했어야 올바른 개발이죠.]

일흔다섯의 노령에도 여전히 지역 빈민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안 신부는 20년 전 점퍼를 아직도 입고 있는 '자발적 빈자'입니다.

[안광훈 신부/삼양주민연대 대표 : 모르겠어요. 한 20년 됐나? (20년이요? 그렇게 오래된 옷인가요.)]

[기자 :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하냐,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하다. 이런 통념이 있는데.]

[안광훈 신부/삼양주민연대 대표 : 두 부부가 나가서 새벽부터 밤까지 장사하거나 일, 노동해서 겨우 겨우 애들 교육시킬 수 있고 살 수 있는데 이거 게을러서 빈곤이라는 것은 사회의 질병으로 봐요. 큰 빈부격차 있고 일부의 사람들이 너무너무 잘 살고 일부의 사람들이 너무 못 산다면 그거 올바른 사회 아니라고.]

안 신부는 지난 화요일 아산재단이 주는 아산상을 받았습니다.

나서길 싫어하는 안 신부가 이 상을 받기로 한 건 3년 전 한국 영주권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일 때문이기도 합니다.

[안광훈 신부/삼양주민연대 대표 : (내가 제출한 서류를 보더니) 오래 한국에 살아서 영주권 받는 게 아니라 신부님 보니까 한국에서 교회 일 밖에 한 게 없다. 자격 없다. 뭐 아무 표창장 받은 것도 없고.]

그를 위로해준 건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이었습니다.

[안광훈 신부/삼양주민연대 대표 : 한국에서 근무하는 외국 선교사들 대표로 내가 뽑힌 거 같은데.]

[기자 : 좀 기대를 하셨었어요?]

[안광훈 신부/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 아뇨, 아뇨 상상도 못 했죠. 악수하면서 교황님이 무슨 일 하냐고 물으셔서 내가 빈민 사목한다고 그래서 "잘한다. 수고한다" 하고 지나갔는데 그날 그런 칭찬 소리 교황님한테 들으니까 가슴이 조금 터질 정도였죠. 인정 받았구나….]

[기자 :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도 하셨더라구요. 오늘날의 가난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심각하다.]

[안광훈 신부/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 지금 (빈민들이) 눈에 안 띄어요. 전엔 (달동네, 산동네) 어디든 다 볼 수 있었지만 이제 반지하 들어가거나 뿔뿔이 흩어지거나, 네, 그래서 문제에요. 더군다나 눈에 안 띄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죠.]

[기자 : 푸른 눈의 달동네 대부 혹은 빈자의 등불 혹은 달동네 신부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던데 신부님 제일 마음에 드시는 별명은 어떤 겁니까?]

[안광훈 신부/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 마지막 뭐에요? 셋째?]

[기자 : 달동네 신부.]

[안광훈 신부/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 달동네 신부? 달동네 친구! 더 나아요. 벗.]

(영상취재 : 최호준·양두원, 영상편집 : 김경연, 화면협조 : 아산재단)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