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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올해 수능, 정말 물(水)수능이었을까

언론이 수능을 다루는 방식

[취재파일] 올해 수능, 정말 물(水)수능이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또 물(水)수능 논란입니다. 올 수능, 너무 쉬워 변별력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 수능 21년사(史)를 돌이켜보면, 수능 난이도는 언제나 언론의 먹잇감이었습니다. 사상 최고 난도로 평가받는 1997학년도 수능 이후, 수능은 조금씩 쉬워지기 시작하더니, ‘물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는 수능 기사의 핵심 키워드가 됐습니다. 매년 11월만 되면 이런 기사, 연례 행사마냥 쏟아졌습니다.

통합형이었던 2001학년도 수능은 물 수능 논란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선택형 수능이 시작되고 2006학년도는 언어영역, 2008학년도는 수리영역, 2012학년도는 외국어영역, 2013학년도는 다시 언어영역 때문에 물 수능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올 수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과 영어가 너무 쉬워 변별력이 없는 물 수능이었다며 수험생 혼란이 가중됐다는 기사,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물 수능 논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정권이든, 모두 수능의 난이도를 낮추는 정책을 펴왔습니다. 수능을 대학 입학을 위한 자격시험으로 만들자는 지적도 여러 차례 제기됐습니다. 시험 한 번으로 대학이 결정되고, 결국 인생이 좌우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습니다. 사교육 절감을 위한 정책적 목표도 있겠지요. 올해는 교육부 장관까지 나서 수능 영어를 절대 평가처럼 만들겠다고, 즉 매우 쉽게 만들겠다고 공표했는데,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만드는 장기적 목표의 첫 단추로 해석됩니다.

사실 쉬운 수능 기조란 정책적 목표 그 자체는 반대 목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다만, 진보 계열 학자나 단체들은 쉬운 수능이 사교육 절감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고, 보수 계열은 수능 시험 하나로 학생을 선발하기보다 입시 제도를 다양화시키는 데 관심을 두는 정도의 차이일 뿐, 쉬운 수능 원칙에 대한 지지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능 국어영역 캡쳐

문제는 변별력입니다. 수능 점수가 비슷한데 누구는 대학에 붙고, 누구는 떨어지는 일이 많아질 테니, 수험생 입장에선 여간 억울하지 않을 겁니다. 이 때문에 교육 당국은 쉬운 수능기조와 더불어 수능 의존도를 조금씩 낮추는 정책을 펴왔습니다. 수시 모집 비중을 늘리고, 수능이 절대적인 정시 모집을 줄이는 식이죠.

1998학년도 입시에 고교장 추천제도와 같은 수시모집이 생겨난 이래 올 대입에는 수시모집 비율이 64%를 넘어섰습니다. 2016학년도에는 66.7%로 더 높아집니다. 정시모집은 어떨까요. 올 대입 수능 위주 정시모집은 31.6%이지만, 2016학년도에는 28.8%로 더 낮아집니다. 수능 의존도는 아직 높은 게 사실이지만, 넓게 보면 조금씩 낮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대입 전형이 다양화되고, 점수에 따라 일괄적으로 줄 세우기가 어려워지면, 객관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연히 학부모와 수험생 불만도 여전합니다. “차라리 학력고사 시절이 나았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능 한 번으로 대학이 결정되는 대입 제도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수능 점수에 따라 일렬로 줄을 세워 누구는 합격, 누구는 불합격, 이런 식의 대입 제도는 불합격자를 쉽게 체념하게 만들어줄 뿐, 인재를 선별해내는 창의적인 방식은 아닙니다. 쉽게 말해 이런 교육제도는 너무 비교육적입니다.

변별력의 몫을 수능에서 다른 전형으로 분산시키는 게 교육 현실이지만, 이상하게도 언론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언론은 보수적인 교육 단체, 보수적인 교육학자들보다 훨씬 '보수적'입니다. 이번 수능이 물수능이라고,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기사가 넘쳐납니다. 왜일까요.

최근에 만난 한 교육 단체 관계자분이 이런 우스개 소리를 하더라고요. 지금 기자들 대부분이 학력고사나 수능처럼 시험 한 번으로 대학 갔던 분들이라 다변화되고 있는 입시 제도를 이해하지 못 해서라고요. 제 경험상, 기자의 관성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수능이 끝나면 과목별 난이도에 따라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테고, 늘 그렇듯 연례행사처럼 기사를 쓰는 거죠. 더 쉽게 말하면, 실제 난이도로 각 잡으면 기자 입장에서 기사 쓰기 참 좋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사가 수험생에게 혼란을 준다는 식으로 논리가 귀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불안감,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요. 사교육 시장입니다. 사교육 시장은 불안을 먹고 삽니다. 물수능이다, 그래서 변별력이 없다, 결국 전략이 중요하다, 이런 식의 논리는 결국 불안감을 조장하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고가의 컨설팅 업체나 학원에 매달리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능 캡쳐_640

보충 설명을 하자면, 사실 올 수능은 물 수능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정확히 영어와 수학B형 정도가 쉬웠다고 볼 수 있는데, 영어는 이미 교육부에서 절대평가 도입의 첫 단계로 쉽게 출제한다고 공표한 바 있습니다. 입시학원가 예측을 보면, 영어 1등급 컷이 원점수 기준으로 98점 정도로 예측되는데, 오히려 예상보다는 좀 어렵게 나왔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습니다.

다만, 수학B형이 쉬웠다는 게 변수인데, 이 또한 그렇게 나쁘게만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수학 B형은 자연계열 상위권 학생들, 특히 1~2등급 컷에 이른바 의대 지망생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수능 여론 형성에 중요한 가늠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수능에서 수학 B형 말고는 그다지 물수능이라 여겨질 만한 게 없었는데도, 물 수능 지적이 잇따르는 걸 보면, 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그 외 학생들은 얼마나 수능 여론에서 소외됐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한 교육 시민단체 관계자 분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번에 수능 수학이 쉽게 나와 중위권 학생들도 ‘나도 수학을 공부하면 시험을 잘 볼 수 있구나’란 기회를 만들어 줬다고요. 이번을 계기로 수능 수학 절대평가도 논의해볼 때라고요.

교육 문제, 정말 어렵습니다. 쉬운 수능 기조, 이걸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우리 대입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쉬운 수능이란 원칙을 지키는 건 어쨌든 복잡한 교육 문제를 푸는 첫 단추입니다. 앞으로 수능은 당분은 쉬울 겁니다. 매년 물수능이라고 기사가 나올지 우려가 됩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입니다. 어떤 수능이, 어떤 교육이 장기적으로 옳은지, 언론도 고민하고 여기에 동참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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