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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인가? - '성지'가 불러온 갈등

[월드리포트]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인가? - '성지'가 불러온 갈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적습니다.>

가자지구가 피로 물든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잔혹한 여름은 가을의 입구까지 이어졌고 어느덧 계절은 겨울로 향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가 다시 심상치 않습니다. 단지 무대가 가자기구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는 것 빼고는 가자지구 교전이 시작되기 전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청소년이 이스라엘 행인과 군인을 잇따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운전자가 트램 정류장을 덮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경찰은 저항하는 아랍계 청년을 사살했습니다. 시위 도중 14살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격렬한 시위가 매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난 사위대의 함성은 잦아들 줄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정부는 더욱 강경한 진압과 대응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제 3차 인티파다(이슬람어로 ‘봉기’ ‘민란’을 뜻하는 데 우리말로 따로 정해진 대명사가 없기에 ‘팔레스타인 봉기’라고 하겠습니다.)가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연일 외신들은 이들 사건을 전하는 말미에 한 줄도 덧붙입니다. 왜 일까요?
취재파
이번 갈등은 자유와 배고픔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념과 신앙에 대한 충돌입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나 하나의 신을 믿습니다. 아니 같은 신을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개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공유합니다. 그러면서도 신과 계시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갈등을 빚습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도 모두에게 종교는 삶의 근간입니다. 그러기에 엉킨 실타래만큼 지금의 사태는 해결이 어렵고 오래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성지(聖地)’ 때문입니다. ‘평화의 도시’ 란 의미를 가진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나뉘어 불립니다.(그 연유를 설명하려면 A4 용지 한 장은 필요해서 생략합니다.) 보통 역사적 유적이 모여있는 곳이 동예루살렘입니다. 이 동예루살렘의 구시가지에 언덕에 보면 ‘템플 마운트’ 우리말로 억지로 풀이하면 ‘성전(聖殿)산’ 이라고 하겠는데 전 그냥 ‘템플 마운트’라고 부르겠습니다. 왜 템플 마운트로 불리냐면 유대교에서는 이곳이 그 유명한 솔로몬왕의 성전이 있던 자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서기 70년에 로마에 의해 성전은 파괴됐는데 그 성전을 둘러싼 성벽을 ‘통곡의 벽’(이건 많이 들어보셨죠?)이라 부르면서 유대교도가 성지로 받들고 있습니다.
취재파
취재파
또한, 템플 마운트에는 이슬람교에서 중요한 유적도 있습니다. 황금 돔으로 잘 알려진 ‘바위 사원’ 과 ‘알아크사 사원’이 있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서기 621년 메카에서 잠든 사이 날개 달린 말을 타고 알 아크사 사원이 있던 자리까지 날아와 대천사 가브리엘의 인도를 받아 하늘로 승천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곳입니다. 그때 바위를 딛고 올라갔는데 그 바위에 세워진 사원이 ‘바위 사원’입니다. 알아크사 사원은 서기 709년에서 715년 사이 바위사원을 세운 제 5대 칼리프 압드 알마릭의 아들인 왈알리드가 지었다는게 정설인데 제 2대 칼리프인 오마르가 세웠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알아크사 사원은 메카(무함마드가 태어난 곳), 메디나(이슬람의 기틀을 다진 곳)와 함께 이슬람교의 3대 성지로 추앙 받는 곳입니다. 이슬람에선 하루 5번 사우디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데 원래는 알아크사 사원을 향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성지라는 말이겠죠.

취재파
그럼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를 놓고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요? 이스라엘의 침략사?가 근간에 깔려있습니다. 원래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요르단 땅이었습니다. 원래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요르단, 가자지구는 이집트의 땅이었고 그 안에서 팔레스타인은 보호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이 터지면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해 버린 것이죠. 국제사회에선 아직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하지 않는 게 대세입니다. UN도 점령지로 보고 있습니다. (영토냐 점령지냐는 국제법상 거주민에 대한 처우에 있어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 유대인 정착촌 건설과도 관련 있죠.)

당연히 동예루살렘의 템플 마운트도 이스라엘의 손안에 들어옵니다. 성지를 빼앗긴 아랍계의 불만과 반발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요르단과 협약을 맺습니다. 이슬람 3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알아크사 사원’에는 유대인 출입을 금하기로 약속합니다. 반대로 유대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발했습니다. 왜냐하면 알 아크사 사원의 자리는 유대교에선 엄연한 솔로몬의 성전이 있던 자리기 때문입니다. 땅 밑에 유대의 고귀한 유적이 파묻혀 있을 텐데 그 땅을 후손들이 밟을 수 없다니…. 이후 유대인과 아랍인은 이 성지의 권리를 놓고 숱하게 갈등을 빚게 됩니다.
취재파
<2000년 2차 인티파다>

 갈등이 표출된 대표적인 사건이 2000년 9월 터진 2차 인티파다 (팔레스타인 봉기) 입니다. 당시 야권 대표이자 강경보수론자인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이스라엘에서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 ‘이스라엘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였습니다. 극우파였지만 정권을 잡은 뒤엔 가자지구 철수 단행과 중도우파 창당 등 아랍계와 소통을 시도했죠.)가 무려 1천 명의 경비원을 대동하고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참지 못했습니다.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3년간 이어진 투쟁으로 2천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이 숨졌습니다. 팔레스타인 최초의 자살폭탄테러가 벌어진 것도 2차 인티파다 때입니다. 그만큼 아랍은 물론 팔레스타인에게 알아크사 사원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하는 성지입니다.

 유대교 입장에선 이런 팔레스타인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겠죠. 원래 팔레스타인이 성지라고 부르기 전에 유대인의 성지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유대교 안에서는 극우 강경론자를 중심으로 ‘성지 권리 회복 운동’이 벌어집니다. 이번 사태도 이 운동이 빌미가 됐습니다.

지난 달말 템플 마운트에서 유대인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창하던 유대교 강경론자인 예후다 글릭이 팔레스타인 30대 남성에게 총격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찰이 암살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 용의자를 검거하던 중 사살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정부의 조치입니다. 템플 마운트를 폐쇄한 겁니다. 폭동과 유적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슬람만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여기저기서 팔레스타인의 반발이 터졌습니다. 국제사회도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아예 유대인도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평등한 조치 같지만 오히려 갈등의 소용돌이가 유대인까지 덮치게 만들었습니다. 국제사회는 더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템플 마운트를 다시 개방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슬람교도는 여성과 50세 이상 남성만 출입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이스라엘은 약고 똑똑한 줄 알았는데 전쟁만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너무 오래 권좌에 앉아서 판단이 흐려진 것인지… 울고 싶던 차에 뺨 때려 준 격이 됐습니다.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선 템플 마운트의 차별출입 조치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 때까지만도 시위자는 하고 싶은 말을 평화적으로 하고 진압대는 넘지 못할 선을 준수하도록 저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꽃에 기름을 쏟아붓는 일이 벌어집니다. 팔레스타인에게 총상을 입은 유대 강경활동가인 예후다 글릭의 추종자들이 11월 5일 작정하고 알 아크사 사원 방문을 계획한 것입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팔레스타인이 템플 마운트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까지 다수 포함됐습니다. 이스라엘 경찰은 강경 진압에 나섰습니다. 섬광수류탄과 최루탄을 시위대를 직접 겨냥해 던졌습니다. 고무총탄을 발사하고 진압봉을 휘둘렀습니다. 시위에 나선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울었고 힘없는 여성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성지 템플 마운트는 한 순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심지어 진압대는 알크사 사원 내부까지 쳐들어와와 섬광수류탄과 최루탄을 터트렸습니다.
취재파
 팔레스타인은 더 분노했습니다. 급기야 같은 날 오후 팔레스타인 운전자가 승합차로 트램 정류장에 돌진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시위는 더욱 과격한 양상을 띠게 됐었고 진압의 수위도 높아지게 됐습니다. 예루살렘과 서안지구는 연일 팔레스타인의 시위대가 거리를 뒤덮고 있습니다. 삶의 가치관과 행동 양식, 심지어 쓰는 언어조차 신앙으로 가득 채워진 이슬람문화 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랍계 이스라엘인조차 팔레스타인의 시위를 지지하는 상황이 됐습니다.(이스라엘이 유대인 단일 민족 국가로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인구의 20%가 아랍민족입니다.) 요르단은 주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했습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시위 선동자들의 집을 밀어버리겠다고 흥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이면서 팔레스타인에 동조하는 세력을 불순분자라고까지 평하고 있습니다. 사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넘어 유대인과 아랍인의 대립으로 확산되는 양상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분노를 키우던 표면적으론 성지겠지만 그 내면엔 이스라엘이 강행하는 유대인 정착촌 확대 건설도 무관하지 않습니다.(유대인 정착촌 문제는 시간이 되면 자세하게 한 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수백,수천 년 동안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았던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긴 이들의 분노가 가슴속에 응어리졌고 성지 갈등을 통해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는 겁니다.

이번 사태는 쉽게 안 끝날 겁니다. 오래 갈 겁니다. 더 크게 번질 수 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의 가슴엔 새로운 불길이 치솟고 있는지 모릅니다. 

▶ 이스라엘 군경-팔레스타인 시위대 충돌…'아수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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