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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풍년인데…배추밭 갈아엎어 쑥대밭, 왜?

<앵커>

올해는 기상 상황이 좋아서 농산물이 풍년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크게 떨어져서 농민들은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특히 김장철을 앞두고 가격 폭락 때문에 배추밭을 갈아엎는 농가가 많습니다.

풍년이지만, 전혀 풍요롭지 못한 배추 농가를 박현석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트랙터 한 대가 배추밭으로 들어섭니다.

한 켠의 깃발에는 함부로 내다 팔수 없다는 뜻의 '시장 격리'라고 쓰여 있습니다.

배추가 나빠서가 아니라, 대풍에 따른 가격폭락을 막기 위해 따로 격리시켜놓고 갈아엎는 겁니다.

[이만순/배추 재배 농민 : 잠 한숨도 못 잤어요, 어젯밤에는. 농사를 잘못 지어서 그런가, 어째서 그런가, 남우세스럽고. 어디에다 말을 할 수도 없어요.]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는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합니다.

모종을 옮겨심고 꼬박 70일간 정성껏 기른 이 배추 1만 2천여 포기를 갈아 엎는 데는 불과 20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밭떼기' 계약을 했던 산지 중개인 역시 손해가 크지만, 인건비도 못 건질 게 뻔해 얼마 안 되는 정부 보상비라도 챙겨야 할 상황입니다.

[여상덕/산지 중개인 : 시세가 워낙 안 좋으니까 최소한으로 이제 먹고 살라고 이렇게 보조를 해 주는데 (그것에 대한 부분은) 고맙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배추와 무 가격 하락으로 올해 4인 가족 기준 김장 비용은 평년 대비 15%가량 저렴한 19만 9천 원으로 예상됩니다.   

그나마 무려 15만 톤이나 되는 양을 산지 폐기한다는 정부 발표 이후 안정을 되찾은 가격입니다.

[진태훈/대리,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수급관리처 : 주산지인 전라도에서 가을 배추가 출하되면 좀 더 가격 불안이 예상돼서 추가로 13만 톤을 산지 격리를 할 예상에 있습니다.]  

중국산 저가 김치의 공세 아래, 거듭된 풍작과 가격하락으로 손해가 누적된 산지 중개인들은 더 이상 배추 농가와 사전 계약을 할 여유도 없습니다.

농민들이 더 불안해지는 이유입니다.

[최성환/산지 중개인 : 우리도 망하고 농가도 망하고. 무·배추는 조금만 생산이 많이 되면 폭락하는 거예요.]  

농협 등 생산자단체에서는 벌써부터 김장 할인행사에 들어갔습니다.

기댈 곳은 소비자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김장 두세 포기 더 담기 캠페인을 벌일 계획입니다.

[이원일/홍보실장, 농협유통 : 산지에서는 물량이 많이 남아돌기 때문에 김장소비행사를 전년보다 약 열흘 정도 더 빨리 진행하고 있습니다]  

거듭되는 풍년의 역설 속에 쑥대밭이 된 배추밭만큼이나 농심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신동환, 영상편집 : 박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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