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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연의 썸풋볼] 잉글랜드 축구, 벼랑 끝에서 장고 뒤 악수를 두다

[한범연의 썸풋볼] 잉글랜드 축구, 벼랑 끝에서 장고 뒤 악수를 두다
축구는 영국에서 만들어졌다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피파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면서도 정작 대표팀은 세계 무대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탓에 종주국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린 느낌까지 들 정도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현재의 성적에 부끄러웠던 잉글랜드 축구 협회(FA)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몇 년 전부터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11년, 그들이 야심 차게 들고 나온 것은 유소년 시스템의 변화였다.

Elite Player Performance Plan (EPPP). 엘리트 선수 경기력 향상 계획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동안 클럽들은 훈련시설과 가까운 곳에 사는 18세 이하 선수들만 데려올 수 있었으며, 그들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훈련 시간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EPPP는 이를 대폭 완화했다. 또한, 각 클럽의 유소년 시설 등에 따라 네 개의 등급으로 분류해 각자에게 주어지는 지원금 등에 차별화를 두었으며 영입 보상금 개정을 통해 타 클럽의 유소년 선수 빼오기를 한층 쉽게 만들었다.

그러나 EPPP는 축구 협회가 원했던 만큼의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었을 뿐 아니라, 대형 클럽만을 위한 개정이라는 반발까지 불러일으켰다. 사실 본래의 규정은 소규모 클럽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이 컸는데, 실제로 EPPP의 발표 후 하위 리그의 몇 개 팀은 아예 유소년 팀을 폐쇄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자신들의 안방,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에 패했고, 성인 대표팀의 경기력 또한 스페인과 독일 등 최강팀과의 수준과는 더욱 멀어져만 갔다.

결국 FA는 새로운 칼을 빼 들었다.
협회장 그레그 다이크는 지난 5월 84장에 달하는 보고서를 공개하며 잉글랜드 축구의 대대적인 개혁을 천명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 잉글랜드는 자체의 문제점으로 성인 레벨에서 뛰는 잉글랜드 선수의 부족한 숫자를 지적했다. 그 결과 FA는 네 가지 변화를 내세웠는데, 선수 임대의 활성화와 2군 팀의 정식 리그 합류, 그리고 두 개의 외국 선수 제한의 강화가 그것이다.

첫 번째 계획은, 1부와 2부 리그 팀은 각각 3부 이하의 두 팀과 손을 잡고 팀 당 최고 여덟 명의 선수를 임대시킬 수 있으며 그중 한 경기당 다섯 명을 명단에 넣을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의 선수 임대 규정보다는 다소 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잉글랜드 내에서도 가장 많은 반발이 우려되는 대목은 2군 팀의 리그 합류이다. 스페인에서는 이미 정착이 되어있는 이 시스템은, 프리미어 리그 각 클럽의 2군 팀을 5부 리그에 합류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4부 리그인 리그2와 5부 리그인 컨퍼런스 리그 사이에 새롭게 리그3을 신설, 프리미어 리그의 10개 팀과 컨퍼런스 리그 10개 팀을 합쳐 20개 팀으로 경기를 치르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팀은 여타 팀과 다를 바 없이 승격과 강등의 대상이 되지만, 리그1이 승격할 수 있는 한계로 설정되며 FA컵에는 참여할 수가 없다.

프리미어 리그를 지켜보는 해외 팬들이 우려할 대목은 바로 강화되는 외국 선수의 제한 규정이다. 현재 21세 생일이 되기 전까지 잉글랜드에서 3년 이상을 훈련받은, 이른바 ‘홈그로운’ 선수를 25명의 1군 명단 가운데 최소 8명 이상을 보유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FA는 이를 5년으로 늘리고, 13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나아가 클럽에서 직접 육성한 선수 4명을 포함하는 규정을 2020년까지 도입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이는 해외에서 프리미어 리그를 도전하는 선수들에게는 직접적인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제안은 유럽연합 국적이 아닌 선수들(Non-EU players)에게는 한층 더 충격적인 소식이다. FA는 현행 취업비자의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기를 원하고 있는데, Non-EU를 팀당 두 명까지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만을 받기 위해 Non-EU 선수로서 취업비자를 받은 경우 프리미어 리그에서만 뛸 수 있으며 하위리그 팀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잉글랜드 내의 어떤 클럽으로도 임대가 금지된다. 나아가 이적료의 하한선을 정해 이를 충족시키는 Non-EU 선수만 영입 가능하다는 조항까지 넣으려 하고 있다.

여전히 합의의 과정까지는 먼 여정이 예상되지만, FA의 다이크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과 토트넘이 강한 지지의 의사를 전달해왔다는 점을 밝혔다. 빠르면 2015-16시즌부터 적용할 예정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이 새로운 정책은 그러나 여전히 상위 리그, 그중에서도 큰 규모를 갖춘 클럽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반발에 마땅한 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최상위층에 대한 집중 투자가 대표팀의 성과를 더 빠르게 낼 수 있기는 하다. 잉글랜드 축구 협회 역시 더 빠른 효과가 나타나는 처방을 들고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굳이 프리미어 리그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작은 고향 팀과 함께해온 영국인들에게는 마치 자신들의 팀이 대형 클럽들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취급을 받는 느낌이 달가울 리 없다. 자신들이 오랜 기간 응원해온 클럽이 2군 팀과의 경기에서 과연 본래의 치열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유소년 강화 정책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울타리를 쌓아 올려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정책은 과연 최선의 방안일까? 분명 많은 출전 시간은 선수들의 수준을 올려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너무 많은 외국인’일 수도 있지만 ‘너무 국내에서만 머무르는 내국인’일 수도 있다.
또 그들의 가장 시급한 해결책 중 하나인 심판에게서는 시선을 회피하고 있다. 오심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몸싸움에 지나치게 관대한 판정 기준은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발전하기 어렵게 만들고, 그들을 부상에 노출된다. 국가 대항전에서 자국 리그의 판정 기준에 익숙한 선수들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플레이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프리미어 리그 특유의 빠른 축구는 수준 높은 선수들이 만드는 것이지 관대한 판정 기준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축구 종주국이라 하지만, 잉글랜드 국가 대표팀 팬이 아닌 이상에야 그들 걱정을 해줄 필요까지는 없다. 물론 한국 선수들의 진출이 어려워질 것이 우려되고, 수준 높은 외국 선수들이 한 축을 맡아온 프리미어 리그 특유의 경쟁력이 사라질까 불안하기는 하다. 하지만 FA의 변화에 관심이 가는 더 큰 이유는 아마도 자신들의 문제점을 쉽게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그 해결책으로 대문을 걸어 잠그는 쪽을 택하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너무 자주 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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