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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행 중 시동꺼짐…소비자는 여전히 '봉'

[취재파일] 주행 중 시동꺼짐…소비자는 여전히 '봉'

2010년 4월 윤 모 씨는 지인의 결혼식을 참석하기 위해 영동고속도로 하행선을 시속 100km의 속도로 주행하다 차선을 바꾸던 중 시동이 꺼져 중앙선 가드레일과 부딪쳤습니다. 지난 8월에는 산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신차가 부산의 한 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다가 시동이 꺼져 뒤로 밀려 내려가 벽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주행 중 시동이 꺼지면 가속페달을 밟아도 차가 가속되지 않습니다. 핸들 조작도 어려워지고 브레이크도 한두 번 밖에 작동되지 않지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시동이 꺼지면 대형사고로 직결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시동꺼짐 현상은 차량마다 원인이 다르고 불규칙하게 발생되기 때문에 수리를 해도 원인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수리를 반복할 뿐 교환이나 환불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최근 4년간 접수된 시동꺼짐 신고자 702명을 조사했습니다. 수리 이력이 있는 483명의 운전자 가운데 128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지요.

판매량이 많은 현대 기아 자동차가 전체의 61%를 차지했습니다. 차종별로는 현대의 싼타페가 52건, YF 소나타 26건, NF 소나타 23건, 투싼과 뉴싼타페가 16건의 시동꺼짐이 접수됐습니다. 기아차의 경우도 쏘렌토R이 69건, 모닝 31건, 올 뉴 스포티지 29건, 올 뉴 모닝이 22건 신고가 됐지요. 지엠의 알페온도 18건, 토스카 17건이 접수됐고 르노삼성에서도  SM3 39건, SM5와 뉴 SM5가 각각 13건씩 시동꺼짐 신고가 있었습니다.

국산차보다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적은 해외차도 시동꺼짐 사례가 있었습니다. 폭스바겐의 파사트 6건, 페이튼 3건, 벤츠의 ML280CDI도 3건의 시동꺼짐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시동꺼짐 발생 장소별로는 시내도로가 50.8%로 가장 많았고 고속도로와 시외곽도로 등 도로 주행과정 중 일어난 시동꺼짐이 79%에 달했습니다. 시동꺼짐 당시 상황을 보면 60.2%가 가속할 때 일어났지요. 시동꺼짐 현상으로 4회 이상 수리를 받았다고 응답한 사례가 39.1%였는데 수리 후에도 계속 시동이 꺼지거나 아예 차를 팔거나 폐차해버린 경우가 전체의 60%에 달했습니다.

교환이나 환불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조사 대상 128명 중 6명, 겨우 4.7%의 운전자가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개는 무상수리를 받았고 심지어 유상수리를 받은 운전자도 30%에 달했습니다. 소비자원은 동일 현상이 반복되는 점으로 볼 때 운전자의 차량 유지보수나 사용환경의 문제만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제조사가 핵심 부품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고 엔진제어장치, 즉 ECU에 블랙박스를 장착해 데이터를 계속 감시해 정확한 원인규명을 해야 한다고 보고서에 밝혀놨지요.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현행 법과 규정이 소비자보다는 제조사에게 유리한 쪽으로 설계됐다고 지적합니다. 우선 제조 회사가 아닌 소비자가 제품의 결함을 입증해야 하는 제조물 책임법으로 인해 소비자 보호가 근본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자동차의 교환이나 환급을 결정하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현행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교환 환불 조건으로 ‘차령이 12개월 이내에 주행 및 안전도 등과 관련한 중대한 결함이 발생하여 동일 하자에 대해 3회까지 수리하였으나 4번째 발생할 경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단 차를 구매한 지 1년이 넘으면 교환이나 환불은 어렵고 결함도 동일한 부품에서 결함이 계속 발견되지 않으면 교환이나 환불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 운동본부 소장은 “차량 변속기만 해도 1000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이 1000개의 부품 중 똑같은 게 세 번 고장 나야 교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데 누가 교환 환불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소비자원도 이러한 규정의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보고서에 적어뒀습니다. 현행 ‘동일하자 3회’ 부분을 그냥 ‘하자 3회’로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해 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방안에 대해서도 블랙컨슈머가 늘어 자칫 차 값이 올라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지만 소비자원이 현행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문제는 소비자원이 이미 지난 9월 자동차 시동꺼짐에 대한 안전 실태를 조사하고도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료를 입수한 새정치민주연합 박병석 의원실에 따르면 소비자원은 자동차 업계와의 간담회 이후 언론 공개를 결정하는 홍보위원회의 개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합니다. 소비자원의 권고 사항이 업계에 불리한 내용인데다 앞서 지적했듯 블랙 컨슈머의 문제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원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조사 결과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평가 절차가 남아 있었을 뿐 고의로 공개를 늦추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국회에서 개정 작업 중인 제조물책임법 역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 법을 발의한 한 국회의원은 “제조업체의 반발로 입법화 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소비자를 검색해보면 ‘분통’, ‘호갱’ 등의 단어가 같이 나타납니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소비자 보호에 다시 한 번 관심을 쏟아야 할 이유입니다. 

▶위험한 주행 중 시동 꺼짐…교환·환불은 '별 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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