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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회의에 쓰는 시간만 33년…회의 공화국 중국

[월드리포트] 회의에 쓰는 시간만 33년…회의 공화국 중국
중국 회의1
 회의와 관련된 유명한 경구가 여럿 있습니다. '회의와 여성의 미니스커트는 짧을수록 좋다.', '회의 많은 조직 치고 잘 되는 곳 없다.', '바보들은 매일 회의만 한다.' 등등….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회의가 필수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효율적인 면도 있는 만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공산주의는 회의하다 망했다'는 속설이 있죠. 망하기는커녕 세계 양강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도 사회주의 국가여서 그런지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어찌나 심각했던지 최근 대표적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이 중국의 회의 실태를 아프게 꼬집는 기사를 냈습니다. 대체 회의가 얼마나 많기에 그럴까요?

신화통신은 지난해 6월 중국 공산당이 군중노선실천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국가와 당 기관이 개최한 회의의 건수를 조사했습니다. 왜 군중노선실천활동 이후냐고요? 이 활동을 통해 회의를 대폭 줄이도록 강력히 조치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활동 이전과 비교해 회의가 4분의 1로 줄었다고 중국 공산당이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신화통신이 조사한 결과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무려 58만 6천 건의 공식 회의가 열렸습니다.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는 기관 내 자체 회의는 제외된 숫자입니다. 회의 한 번에 30분을 썼다고 어림잡으면 (물론 현실적으로 30분 만에 끝나는 회의가 극히 드뭅니다만) 33년 동안 회의만 했다는 뜻입니다.

4분의 1로 줄어서 이 정도니까 활동 이전에는 같은 기간 동안 2백38만여 건의 회의가 있었던 셈입니다. 중국의 공직자들은 어마어마한 시간을 회의에 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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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통신은 대표적 예로 '연근해청'이라는 기관의 회의 실태를 들었습니다. 이 기관은 2012년 한 해 동안 1천68회 회의를 열었습니다.

 하루에도 서너 건씩 회의가 있었던 만큼 참석자를 모으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강제 징발'이나 '회의 참가 순번제' 등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 기관의 한 부서장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어느 날은 출근해서 책상 위를 보니 무려 15장의 회의 참가 통지서가 와 있었습니다."

 이렇게 회의가 많다 보니 회의에 들어가는 예산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광저우 화두구는 2014년 예산에서 '회의비' 항목으로 2천8백50만 위안을 책정했습니다. 1년간의 근무 일수를 2백50일로 잡으면 매일 11만 위안, 우리 돈 약 1천8백70만 원을 회의에 쓰고 있습니다.

 예산을 책정해놓은 계획된 회의도 이렇게 많습니다만, 더 큰 문제는 계획에도 없이 여는 회의입니다. 우리의 감사원과 같은 중국 심계서는 지난해 2012년 예산 집행 상황을 감사하면서 절반 넘는 중앙부처에 계획 이외의 회의 개최에 대해 지적했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 앞서 말한 어마어마한 예산을 회의에 쓰고도 계획에 없는 회의를 하느라 돈을 더 갖다 썼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계획에 없는 회의를 2백여 차례나 연 부서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중국의 공공기관은 왜 이렇게 회의를 많이 할까요? 회의를 특별히 좋아해서일까요?

 중국 언론들은 우선 회의가 회의를 낳는 구조를 지적합니다. 지방의 한 현 간부가 털어놓은 말입니다. "한 사안이 발생해 대책 회의를 열게 되면 기본 4번은 해야 합니다. 우선 상무회의를 열어 '해당 사안에 대한 연구'를 합니다. 이어 확대회의를 열어 '해당 사안을 토론'합니다. 다시 상무회의를 열어 '확대회의에서 거론된 내용을 보고'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체 대회를 열어 '결정된 내용을 전달'합니다."

 형식을 갖추느라 회의의 횟수가 늘어나기도 합니다. 또다른 지방 정부 실무자의 말입니다. "큰 회의를 하나 열려면 그 전후로 관련 회의가 잇따릅니다. 회의 전에는 '준비 회의'와 '소통 회의'를 가집니다. 회의 후에 하는 '정리 회의', '보고 회의' 등도 있습니다."

 책임 회피나 위험 분산을 위해 회의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방 정부의 전인대 대의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회의의 90%는 상급 기관의 지시와 결정의 정신을 전달하기 위해 열린다고 응답했습니다. 문서로만 할 경우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확실하게 전달했는지 추궁 받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관련 회의를 열었다는 기록을 남겨두기 위해 선호합니다.

 거꾸로 하부 기관은 상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방법으로 회의를 사용합니다. 관련 회의를 가졌다는 것은 이제 그 정책을 실시하도록 확실한 지시를 받았다는 증명서의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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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를 부패의 방편으로 삼기도 합니다. 회의라는 명목이 공직자들의 사치와 낭비를 가려주는 가림막이 됩니다. 

 상술한 심계서의 감사 결과 한 공공 기관은 내부 간부 회의를 사흘 동안 열면서 우리 돈 5억 1천6백80만 원을 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회의 참가자 1인당 4백여만 원을 지출한 것입니다. 얼마나 초호화판 회의였을지 짐작됩니다.

 또 다른 학술토론회의 경우 토론은 단 하루만 하고 나머지 나흘을 유명 관광지로 놀러 다닌 사실이 발각됐습니다.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해외 연수라며 벌이는 행태와 사뭇 비슷합니다.

 회의가 촌지 수금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정부 기관의 회의에 관련 민간 업체나 기관이 참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가 나중에 어떤 보복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의에 참가하면서 빈손으로 가지 못합니다. 후원금, 후원 물품 명목으로 뒷돈을 내야 합니다. 이쯤 되면 공공기관이 회의를 빙자해 장사를 하는 셈입니다.

 회의비가 분식회계의 주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베이징 시청구 검찰원은 한 관청이 고급 회의장에 대여비 명목으로 돈을 준 뒤 뒤로 이를 돌려받은 사실을 적발했습니다. 회의비로 쓰였다는 돈은 부서 금고에서 발견됐습니다. 부서의 비자금으로 운영됐습니다.

 회의의 본래 목적은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결정한 뒤 이를 유관 기관에 전달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형식주의에 빠지다 보면 시간을 절약하기는커녕 앞서 본대로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는 부작용만 냅니다.

 회의는 관련 부서 간 교류와 의견 교환, 합리적 결론 도출을 위한 수단과 방편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부조리와 비리를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앞서 쓴 대로 중국 수뇌부도 회의의 이런 폐해를 이미 파악하고 있으며 최소화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비슷한 회의를 통폐합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회의 대신 전자 문서 회람을 권장합니다. 회의가 없는 주, 회의가 없는 달을 지정해 엄격히 지키도록 유도합니다. 회의비에 대한 감독과 관리를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감찰과 감시 활동만으로 회의의 필요성, 합목적성을 모두 확인할 수 없습니다. 회의 참가자들이 합심해 숨기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회의비를 부풀리고 엉터리로 꾸미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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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해결책은 투명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누구나 회의의 내용과 전개, 결과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관련 비리와 부조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회의의 횟수 자체가 크게 감소할 것입니다.

 중국 공공 기관의 문제에 대해 거론하면 해답은 항상 같습니다. 뻔한 길을 놔두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중국의 모습이 답답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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