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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한민국은 복지 국가입니까?

헌법 제35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취재파일] 대한민국은 복지 국가입니까?
● 도심 주거취약지역 354곳...복지국가로 질주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요즘 복지가 화두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복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거론되는 복지는 보편적 복지의 성향이 강합니다. 일반적으로 보수진영은 선택적 복지를 주장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현실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안보와 안정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복지도 안정적인 틀에서 추진하고 싶어 합니다. 국가의 재정 상태에 따라 최대한 빚을 줄이고 필요한 곳에 선택적으로 국가의 재정을 투입해 복지를 실현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해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것이 선택적 복지의 하나의 예입니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변화를 추구합니다. 현실은 기득권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는 현실을 유지하기 보다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복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선택적인 복지가 아닌 보편적인 복지를 추구합니다. 빚을 내서라도, 아니면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지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복지정책을 추구합니다. 노인에게는 누구나 일정금액을 지원한다는 ‘국민연금’, 아이들의 보육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무상보육’과 같은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복지 포퓰리즘(populism)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복지국가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도 복지가 화두였습니다. 그리고 여야,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보편적 복지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에서는 복지비용이 없어서 지방자치단체 재정이 파산에 이르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대중을 향한 복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주거환경조차 갖추지 못한 주거 취약지역이 도심에만 354곳에 달합니다. 이는 지난해 6월 각 기초자치단체별로 실시한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국토부가 주거환경개선사업 대상지를 선정한 수치입니다. 국토부는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3단계 주거환경개선사업 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주거 취약지역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이 지역이 화재나 산사태를 비롯해 안전에 취약하고, 상하수도 미설치, 도시가스 미공급 등 최소한의 주거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 “하수 시설도 없고 큰 비나 눈이 오면 대피해요”

 대통령 직속기관인 지역발전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공공기관 이전을 비롯해 전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기관입니다. 지역발전위원회에서는 이런 주거환경 취약 지역에 대한 개선 사업의 필요성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국토부의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발전위원회의 박장원 언론담당관이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박 담당관과의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실태를 알아보겠습니다.

 대전시 대덕구 장동 욕골마을입니다. 이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슬레이트 판잣집입니다. 이곳은 예전 주한미군 부지였습니다. 현재도 군부대와 인접해 있습니다. 미군이 있었을 당시 미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기지촌’이었습니다. 간판만 덩그러니 남은 상점들이 옛날 이 마을의 풍경을 품고 있습니다. 미군이 떠나고 황폐해지면서 이제는 이 마을에는 공식적으로 259가구, 659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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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마을은 산을 둘러싸고 조성된 마을이라 사람 하나 지나다니기도 힘든 골목길이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겨울에 눈이 오거나 길이 얼면 어르신들은 오르내리다 다치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아 LPG가스통들은 집집마다 얼기설기 설치돼 있습니다. 불이라도 나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로 옮겨 붙기 쉽고, 가파르고 좁은 골목으로 소방차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마을은 산에 있지만, 제대로 된 산사태 방지 시설도 없습니다. 큰 비라도 내리면 주민들은 인근 보건소로 대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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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을 다녀온 박 담당관은 하수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집들 사이에는 하수가 개울처럼 흐르는데 그 주위로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고 합니다.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그나마 개량된 집은 분뇨차가 와서 퍼가지만, 그렇지 못한 집은 분뇨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체 하수가 흐르는 개울로 그냥 흐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박 담당관은 “배설물이 그대로 나와서 흐르는 게 보인다”고 태연하게 이야기 하는 주민들을 보며 이곳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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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담당관이 다녀온 곳 한 곳을 더 소개하겠습니다. 박 담당관은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 있는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인 10가구 15명의 주민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이 분들은 넝마주이, 넝마꾼입니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 까지 버려진 헌 옷이나 고물을 주워 팔며 생계를 유지한 우리 사회의 가장 하층구조에 속했던 넝마주이가 아직도 도심에 있었습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 주변에는 대형마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층 아파트들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도심의 발전 속에 아직도 1970년으로 시계가 멈춰진 소외된 이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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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전형적인 무허가 판자촌입니다. 제 몸 하나 뉠 곳이 없어 범법자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판잣집은 거리에서 버려진 것들을 모아 주민들이 얼기설기 덧대서 만든 집들입니다. 박 담당관은 집이라고 보다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살고 있는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지역의 특징상 눈이라도 내리면 모두 인근 노인 회관으로 대피하고 있습니다. 상하수도 시설이 없습니다. 인근에 있는 한 건물에서 수돗물을 받아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오폐수는 그냥 바닥에 버립니다. 오폐수가 흐르던 물길은 자연스럽게 개울이 됐습니다. 이 하수 개울은 집 사이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끔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분뇨를 처리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 국가가 가난을 구제해야 하나?

 박 담당관이 다녀와 소개해 준 곳들은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환경에 놓인 곳이 행정력이 바로 미치는 도심지역에만 350곳이 넘는다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항상 이런 문제에는 이견이 있습니다. 국가가, 아니 내 세금으로 다른 사람의 가난까지 구제해야 하냐는 논란입니다.

 극한의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막노동까지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 극한의 빈곤, 그로인해 극한의 주거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들까지 국가가 나서서 세금으로 구제하자는 주장에 감정적으로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가는 최소한 국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합니다. 헌법에서도 국민은 최소한의 주거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국가가 이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35조
1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화를 권리는 가지며....
3항 국가는 주택개발정책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환경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노숙자들이 겨울을 날 수 있게 노숙자들을 위한 온돌방과 시설이 서울의 중심인 서울역에 있는 것도 인간으로서 가지는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하나의 노력입니다. 이원종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은 기고문을 통해 왜 이들을 우리가 보듬고 지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내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것이야 말로 끔찍한 빈곤입니다”
 테레사 수녀의 말이다. 산업 발전의 이면에서 수십 년을 견딘 농어촌 오지마을, 달동네와 쪽방촌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가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위원장이 기고문을 통해 밝힌 부분이 바로 우리가 감내해야 할 책임을 강조한 것이라 짐작됩니다. “잘 살아보자”라는 산업 발전, 경제 성장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그동안 기본권이 묵살되고 소외된 계층은 방치됐습니다. 현재 주거취약지역에 놓인 이들도 소외 받은 사람들입니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에 삶의 터전을 잃은 소시민들이 하나 둘 모인 곳이 달동네입니다. 산업화 초기 근간을 이뤘던 노동자들의 삶의 공간이기도 했던 곳입니다.

 이들은 그동안 살기 위해 몸부림 쳤지만, 극빈의 환경에서,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 없어 극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가 잊어버린 과거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건 어쩌면 우리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개발도상국이나 아프리카에 있는 극한의 환경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에서 단 돈 얼마를 꺼내어 주는 작은 마음을 이들에게 돌리는 게 시작일겁니다.    

● 내년 550억 원 투자 “자구 노력과 의지에 따라 지원”

 지역발전위원회는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내년에 550억 원을 지원하기로 의결했습니다. 전국 56개 생활권 별로 취약지역을 선정해, 부처와 관할 지자체와 협업을 통해 예산은 지원됩니다. 고령자 공동홈 같은 공동시설 마련과 상하수도 확충, 소형 LPG 저장소 설치, 슬레이트 지붕 개량, 재해 취약지대 보강과 안전시설 설치 등의 사업이 추진됩니다. 우선, 지역발전위원회에서는 우선 공공재 차원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중심을 둔다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국가가 상하수도를 놔주면 허물기 직전의 집을 가지고 있는 소유주는 자신의 돈 한 푼 안들이고 자신의 집에 상하수도 시설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러면 소유주의 재산 가치를 국민의 세금으로 올려주는 셈이 되고, 소유주는 어려운 세입자들에게 더 많은 월세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사적 재산 영역에 포함될 수 있는 상하수도 시설과 같은 인프라는 최대한 배제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주민들의 자구 노력과 의지입니다. 이원종 위원장은 취재팀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선을 그었습니다.

“양보다 질이다. 무조건 많이 지원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특히 주민들의 자구 노력과 의지가 있느냐, 이게 있어야 지원할 수 있다. 현대식 화장실을 만들어줬는데 청소하고 관리까지 하라고 하는 곳은 지원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특성에 따라 몇 개 마을을 엄밀하게 골라서 지원해 줘야 한다”

● 표가 안 되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복지가 ‘우선’

 대통령부터 기초지방자치단체장까지 선출직입니다. 선거를 통해서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다 보니 정책을 추진하고 결정하는 책임자들은 모두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대의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 속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더 소외되는 양상이 빚어집니다. 속된 말로 표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주거 취약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그것도 정말 아무런 힘없는 소수입니다. 선거조차 잘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선거를 통해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표가 되는 사람들을 위한 복지를 선택하느냐와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복지를 선택하느냐는 책임자의 몫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의 선출직 책임자들의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최소한의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내버려 둔 채 모든 노인들에게 수십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모든 아이들에게 무상보육을 지원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원하는 복지국가의 모습은 분명 아닐겁니다. 
 
 오랜 만에 국가가 나섰습니다. 더 정확히 공무원들이 나섰습니다. 중앙정부의 예산까지 확보됐습니다. 확보된 550억 원은 지방교부금입니다.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게 예산을 내리면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에서 받은 금액의 일정비율만큼 지방자치 예산에서 추가해서 예산을 집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비율이 50%라면 한 지방자치단체가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2억 원을 중앙정부에게 받았으면 1억 원은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서 3억 원의 사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만약 지자체에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중앙정부에서 내려온 예산은 사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들은 지금 돈이 없습니다. 현재 감당해야 할 복지 사업만으로도 파산 직전입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중앙정부에서 확보된 예산이 불용처리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판단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지켜보겠습니다.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책정된 550억 원이라는 국민의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돼 구석에 방치된 그늘진 곳에 어떤 복지 혜택이 미치는지, 이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지 하나하나 확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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