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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김성주 총재님! 이게 국익을 위한 겁니까?

- 김성주 총재 베이징 취재기

[월드리포트] 김성주 총재님! 이게 국익을 위한 겁니까?
국감을 사실상 보이콧하고 도피하듯 베이징으로 날아온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신임 총재가 사흘째 중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김 총재는 예정됐던 그제 오후 항공편을 오전으로 바꿔 (베이징 시간으로)오전 9시40분경 베이징 서우두 공항으로 들어온 뒤 그 길로 차를 달려 11시쯤 시내 한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짐작 가는 호텔을 찾아 김 총재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던 기자 눈에 서둘러 호텔을 나서던 김 총재의 모습이 잡혔습니다.

호텔 로비서 무작정 기다려야 했던 기자의 수고를 덜어줬던 건 다름 아닌 김 총재의 빼어난 패션 감각이었습니다. 패션업계에서 크게 성공한 CEO 출신답게 김 총재는 세련된 스카프와 안경에 트레이드마크가 된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서 일면식도 없던 기자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국제회의(제9차 적십자 아태회의) 참석을 핑계로 국감장에서 뺑소니쳤다는 비난에 대한 입장을 묻자 김 총재는 절대 뺑소니가 아니라면서 항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 국감에 출석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감보다 훨씬 더 국익에 중요한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다음은 기자 질문 등을 빼고 김 총재 답변 내용만 추려 옮긴 것입니다.

“4년에 한 번 하는 적십자총재회의이기 때문에 특히 동아시아 대표들이 다시 만나는 거라 제가 3년 임기 동안 이번에 참석하지 못하면 다시 못 만날 중요한 회의죠. 총재회의에 신임총재가 온다는 것을 지금 제네바 본사부터 다들 지금 굉장히 관심을 갖고, 더우기 아시아의 중국이나 일본, 남북한 모두 기다리고 있었어요.

국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뭔가... 제가 할 일은 봉사하러 왔기 때문에 정말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에서 세계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준비하는, 공조해 주는 그것을 하러 왔습니다. 이제야말로 대한적십자사가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세계 중심축이 되는 대한적십자사가 되서 우리 염원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뛸 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로벌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공헌하러 왔습니다."

준비한 듯 한 답변이었지만 이번 회의 참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거듭 설명하는 과정에서 김 총재는 자기 모순에 빠졌습니다. 김 총재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예년에 총재님이 참석한 경우가 거의 없었고, 다만 전 총재 유종근 총재 (전임 총재인 유종하 씨를 전 전북지사였던 유종근 씨와 혼동한 듯)께서 참석하셨더라구요. 많은 분들이 부총재와 사무총장 보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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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열린다는 이 회의에 대한적십자는 예전에는 대부분 부총재와 사무총장을 참석시켰는데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김 총재가 부득부득 기어이 왔다는 얘기가 됩니다. 굳이 총재가 오지 않아도 될 회의에 참석을 강행한 진짜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국제회의는 참석하고 국감에는 불출석하는 것에 대한 따가운 여론을 전하자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져야죠. 제가 취임한 지 며칠이 안됐기 때문에 사실은 제가 업무에 대한 파악도...나중에 충분히 설명드릴 기회가 있겠습니다.”

자신을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임명한 대통령의 인사가 ‘보은인사’라며 국감장에서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던 야당의 공세가 적잖이 부담스럽다는 뉘앙스였습니다. 바빠서 더 얘기할 시간이 없다며 김 총재가 차를 타고 총총 사라지면서 번개 인터뷰는 순식간에 끝나버렸습니다. 적십자회의와 관련해 이날 예정된 일정은 등록과 오리엔테이션 등이 전부였습니다. 

사실상 회의가 시작되는 이튿날 오전 개회식 이후 오후에는 각국 대표단이 참석해 의견을 교환하는 다양한 워크숍들이 이어졌습니다. 김 총재 측이 제시한 일정표에는 김 총재가 참석할 예정이라는 워크숍과 김 총재가 발언할 내용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워크숍이 열리는 회의장을 가봤지만 김 총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장 진행 요원은 한국 대표단을 보지 못했다고 답했고 주최 측에 문의하자 한국 대표단이 워크숍에 참석했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 왔습니다. 워크숍 참석이 의무 사항은 아니라는 추가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김 총재의 활동을 취재하는데 실패하고 현장을 떠난 기자에게 김 총재 측으로 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베이징 주재 특파원 몇 사람과 김 총재가 티타임을 갖고 이런 저런 협조를 요청하려고 했었는데 상황이 바뀌었으니 취소하기로 했다는 통보였습니다. 김 총재가 26일 귀국 이후에 국회가 정하는 시간에 국감에 출석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직후였습니다. ‘상황 변화’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온 김 총재 측 인사가 적십자사 관계자가 아닌 김 총재가 회장으로 있는 성주그룹의 관계자라는 사실입니다. 베이징에 출장와 있다고 밝힌 성주그룹의 이 인사가 궁지에 몰린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참모, 혹은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직이 설사 법적으로 겸직 금지 규정에 해당 되는 자리가 아니라하더라도 엄연히 공직자가 된 마당에 자기가 사적으로 운영하는 회사에서 데리고 있던 직원을 내세워 적십자사 총재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모습은 결코 사리에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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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재의 국감 출석 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여야 모두 김 총재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당초 예정된 오후 3시까지 불출석하면 동행명령서를 발부해야 한다는 격앙된 반응도 나왔습니다. 아마도 김 총재 측은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이런 새로운 ‘상황 변화’에 대한 김 총재의 반응을 듣기 위해 기자는 다시 회의장으로 김 총재를 찾아 나섰습니다.

어제까지 입장이 자유롭던 회의장에 무슨 일인지 간이 바리게이트가 생겼습니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김 총재의 모습을 회의장 근처에서 발견했지만 기자는 보안 요원들에 의해 회의장 출입이 저지됐습니다. 김 총재를 기다리며 회의장 부근에서 대기하던 취재팀에게 이번에는 베이징 공안국 공안들이 다가왔습니다.

현장에서는 난데없이 취재팀의 신분증 검사와 신원 조회가 장시간 까다롭게 진행됐습니다. 이들로부터 한국 대표단의(김 총재를 단장으로 한 대한적십자사 대표단)의 요청을 받고 출동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중국 공안들과 옥신각신하는 사이 김 총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취재진을 따돌리고 사라졌습니다. 별 수 없이 돌아서 나오는 데 영 입 맛이 썼습니다. 

국내 시청자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된 국감 불출석 사태의 당사자인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대한 취재가 사기업 직원과 중국 공안들에 의해 차례로 원천 봉쇄된 겁니다. 본인 회사 사람과 외국 공권력을 방패막이 삼아 김 총재가 추구하려던 것은 뭐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취재진이 달갑지 않았을 김 총재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이런 식의 회피는 김 총재 본인의 말처럼 “국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신임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처신으로는 결코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기자가 내일 또 다시 회의장으로 김 총재를 만나러 가게 될 지 알 수 없습니다만 베이징이 됐건 서울이 됐건 조만간 김 총재에게서 진짜 국익을 위한 생산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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