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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목숨 건 고속도로 도보행, 그런데 "헐! 반대로 왔네"

[월드리포트] 목숨 건 고속도로 도보행, 그런데 "헐! 반대로 왔네"
남원북철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수레를 남쪽으로 몰려하는데 정작 바퀴는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과 몸이 따로, 정반대로 논다는 의미죠.

이 사자성어는 전국시대 위나라의 명신 계량이 왕에게 간한 고사에서 비롯됐습니다. 고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신이 이번에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마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목적지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남쪽의 초나라로 가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어처구니가 없어, '아니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북쪽이지 어디가 남쪽이란 말이오.' 하고 주의를 줬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픽 웃으며 '그게 뭐 어때서요. 내 마차를 끄는 말은 품종이 아주 좋은 말인데요.' 그래서 '말이 아무리 좋아도 방향이 틀렸으니 초나라로 갈 수 없습니다.'라고 지적했죠.

마차 주인은 그러자 '마부의 말몰이 솜씨가 아주 뛰어나니까 괜찮습니다.'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마부의 솜씨와 상관없이 길을 거꾸로 가고 있다니까요.'라고 재삼 충고했는데도 그는 '나는 노자가 많아요. 길을 가다보면 초나라가 나오겠죠.'라며 계속 북쪽으로 가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과연 초나라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계량은 이웃 조나라와 전쟁을 벌이려는 위왕을 말리기 위해 이 고사를 들었습니다. 천하의 패자가 되기 위해 전쟁을 벌이려는 것인데 오히려 막대한 국력을 소모해 약소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습니다. 아무리 다른 조건들이 훌륭해도 방향을 잘못 잡으면 의도와 정반대로 갈 수 있다고 꼬집은 것이죠.

그런데 이 고사에 서술된 사건이 중국의 현실에 진짜 나타났습니다. 고사 속 마차 주인보다 훨씬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
고속도로 도보행3

지난 4일 오전 11시쯤, 후난 고속도로 순찰대가 상하이~쿤밍간 고속도로를 돌아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웃 장시성에 거의 도달한 지점에 고속도로 갓길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성을 발견했습니다. 남성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비틀거리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대단히 오래 걸어 피곤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를 내며 시속 100km 넘게 달리는 차량들 바로 옆에서 걷는 모습이 극히 위험해보였습니다.

순찰대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 남성을 불러 세웠습니다. 남성은 쩡모씨로 50세가 넘었습니다. 구이저우 런후아이현 출신이었습니다. 쩡씨는 수 년 전 고향을 떠나 광시성에서 농민공으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폐품을 모아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했습니다.

보름전 쯤 쩡씨는 불현듯 고향으로 되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서 농사를 지어도 이보다는 살 만 하겠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주머니에 땡전 한 푼도 없었습니다. 고향까지 돌아갈 차비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쩡씨는 그래서 걸어가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일반 도로로는 제대로 찾아갈 자신이 없어 고속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 도보행2
광시 허저우에서 출발한 쩡씨는 우선 얼광 고속도로로 올라갔습니다. 처음에는 제대로 서쪽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상하이~쿤밍간 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서북쪽 구이저우(지도상 C 지점)로 향하는 대신 반대편 동북쪽(지도상 A 지점)으로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돈이 없어 한 끼는 먹고 한 끼는 건너뛰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밥 한 톨, 물 한 모금 못 얻어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생고생 무려 500km나 걸었습니다. 목적지와 정반대쪽으로 말이죠. 열심히 걸으면 걸을수록 가려던 고향과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렇게 후난성 주저우에 도착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후난을 관통해 장시에 접어들기 직전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겠다며 길을 떠나 신의주에 도착한 셈입니다. 그곳에서 고속도로 순찰대에 발견됐습니다.

어이없고 황당한 사연에 고속도로 순찰대는 쩡씨를 우선 순찰본부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밥과 음료수를 제공했습니다. 완전히 지친 쩡씨가 자고 쉴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결말은 비교적 해피엔딩입니다. 고속도로 순찰대는 순찰차에 쩡씨를 태우고 구이저우 고향까지 데려다줬습니다. 쩡씨는 본의 아니게 남원북철을 몸소 실천할 뻔 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서원동철이네요.

이 소식을 접하면서 남원북철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된 것은 쩡씨의 모습이 우리나라 처지와 매우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남북 간의 신뢰 회복과 대화, 평화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현실 속 남북 관계는 갈수록 살벌해지고 있습니다.

경제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는 계속 심각해지고 갑의 횡포와 을의 고통은 커지기만 합니다.

원활한 소통을 강조합니다. 반면 대화의 단절, 계층·세대·지역 간 분열, 상호 이해의 실종은 도를 더해 갑니다.

지향하는 목적지는 남쪽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북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딱 떨어지는 남원북철 아닌가요?
아니면 혹시 표리부동이 더 적합한 사자성어인가요? 속으로는 북쪽을 가려고 하면서 겉으로만 남쪽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지 슬슬 의심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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