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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홍콩 분열의 씨앗? 발전적 통합 위한 실험 대상

[월드리포트] 홍콩 분열의 씨앗? 발전적 통합 위한 실험 대상
중국의 역사는 분열과 통합을 거듭해왔습니다. 좀 다르게 얘기하면 원심력과 구심력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원심력이 강할 경우 중국 대륙은 군웅이 할거했습니다. 잘 아시는 초한지, 삼국지가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반대로 구심력이 강해지면 통일된 제국을 이뤘습니다. 진-한-당-송-원-명-청이 이런 시기입니다.

현재 중국이 통일된 지배체제를 이루고 있으니(타이완을 제외하고요) 지금까지 원심력보다 구심력이 훨씬 강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실제 중국 역사를 따져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중국이 지금 현재의 권역을 실효적으로 통치한 것은 청나라 이후 81년에 불과합니다. 흔히 중원이라고 불리는 중국 대륙의 핵심 지역에서라도 큰 혼란 없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한 기간은 1천년쯤입니다.(인용 출처:'중국 통일 중국 분열', 거젠슝 푸단대 중국역사지리연구소 소장 저, 1996년 신서원) 문헌을 통해 명확하게 파악되는 중국의 역사를 3천년이라고 친다면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분열이 중국의 통합 사이에 잠시 거쳐 간 짧은 과도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이런 원심력과 구심력은 중국인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인들은(특히 중국의 젊은 층은) 정부의 개별 정책이나 드러나는 특정 상황에 대해서는 상당히 날선 비판을 가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존립에 관련된 문제라면 태도가 돌변합니다. 체제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문제나 정통성을 거론하게 되면 바로 친정부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중국의 언론 자유를 거론하면 정부의 관련 정책에 대해 비난과 조소를 쏟아냅니다. "중국 언론이야 정부에서 불러주는 대로 쓸 뿐이지." "진짜 거물은 감히 거론할 생각도 못하지." 등등. 하지만 그래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통제를 막을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중국 같이 큰 나라에서 언론이 제멋대로 기사를 쓰면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유언비어를 막고, 불필요한 사회적 논쟁을 피하려면 어느 정도의 언론 관리는 필요하다."

한 중국 학자의 말이 이런 성향의 배경을 잘 설명합니다. "나는 현재 중국 정부의 행태가 못마땅하다 못해 몹시 싫다. 하지만 그런 나쁜 정부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낫다. 없으면 천하대란이 날 것이고 이는 인민을 더 고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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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과 중국인들 내부에서는 원심력보다는 구심력이 훨씬 커 보입니다. 그래서 통합된 지배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권력 시스템의 부조리와 불합리가 쌓이고 모여 불만이 커지다보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을 것이고 원심력이 구심력보다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럼 중국은 다시 분열의 시기를 맞을 것입니다.

현재도 원심력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티베트, 위구르의 분리 독립 움직입니다. 역사적 연원을 따집니다. 차별 대우를 지적합니다. 민족 감정을 내세웁니다.

그런데 최근 이와 궤를 달리하는 원심력이 돌출했습니다. 바로 홍콩 사태입니다. 홍콩은 중국인의 92%를 차지하는 한족이 주구성원입니다. 따라서 소수민족과 달리 분리 독립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현재 지배 체제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중국과의 동질화를 반대합니다.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기는 하되 사실상 독립적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홍콩은 근대 이후 중국 본토와 전혀 다른 발전 과정을 겪어왔습니다. 영국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서방의 가치관과 사회 운용 체계를 체득했습니다. 중국이라는 뿌리는 같지만 접붙인 가지가 전혀 다른 품종이다보니 현재 나타난 열매 역시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중국 본토의 모습과 억지로 비슷해져야 한다면 이는 정체성의 훼손으로 이어집니다. 홍콩 시민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중심에서 멀어지려는 원심력입니다.

반면 중국은 그런 홍콩의 움직임을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하나의 원심력이 다른 원심력을 유발하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역사적으로 그러했습니다. 하나의 민란이 전국적인 분열을 유발했습니다. 한 말 오두미교의 난, 당 말 황건적의 난, 원 말 홍건적의 난, 청 말 태평천국의 난 등 사례를 들자면 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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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홍콩이 원심력을 키우면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운동을 자극할 수 있다고 걱정합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진 동부 연안 도시들의 민주화 욕구가 거세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현재 공산당의 1당 지배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질까 고민합니다.

그러니 되도록 홍콩을 중국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구심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분화되는 현실 속에서 중국은 현재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중국의 계층은 끊임없이 분화되고 사회는 다원화의 길을 밟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처지와 상황이 다르고 원하는 바도 제각각입니다. 부를 비롯한 각종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원심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요소들입니다.

반면 구심력은 약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중국의 발전을 선도해온 관료 사회는 부패에 발목을 잡혔습니다. 공기업들은 점차 비효율의 상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의 조치들은 각 지방이나 부문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내기 힘들어집니다. 사실 14억 인구의 거대한 영역을 하나의 지배체제가 일률적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대의 불가사의입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의 분열이 꼭 나쁜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닙니다. 거꾸로 중국이 기존 체제의 모순과 퇴행, 불합리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분열의 시기를 이용해 중국 문화의 권역을 끊임없이 확대해왔습니다. 중국 본토에 들어온 이민족을 수용해 '중국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중국은 이런 분열의 긍정적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사회, 계층, 지역 욕구의 다변화로 원심력이 커지고 내부적 모순으로 구심력이 약해져 분열을 강요당하기 전에 그 역동성을 제도 내로 끌어들여 발전의 추동력으로 쓰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결국 중국이 직면한 각종 모순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각 지역, 부문의 자치권, 자율성을 확대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미국처럼, EU처럼 말입니다.

물론 서방의 체제를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습니다. 진화의 경로와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알맞은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점이 어디인지, 황금률이 어느 선인지 부단히 고민하고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콩은 절호의 실험 대상입니다. 중국 본토와 비교해 상당한 폭의 자율성을 허용하고 자치의 적정한 선과 방법을 연구해볼만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중국 정부의 홍콩에 대한 대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양강으로 성장한 중국이 스스로의 힘과 크기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인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좀 더 홍콩에 원심력을 허용해줘도 현재 중국의 구심력으로는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중국의 미래를 담보할 체제 진화의 실험과 연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홍콩이 특유의 활력을 발휘하도록 유도해 중국 경제에 최대치의 도움을 주도록 만드는 것은 부록일 뿐입니다.

이번에 홍콩 시위대가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고 홍콩의 내부적 불안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2017년까지 끊임없이 재연될 것입니다.

설사 이를 힘으로 억눌러 꺼버린다고 무슨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홍콩을 또 하나의 상하이, 선전으로 만든다고 중국에 무슨 득이 되나요?

중국이 더 자신감을 갖고 미래지향적으로, 더 대국적인 견지에서 홍콩 사태를 처리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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